중고차=사고차, 사고차≠문제차

입력 2006년08월13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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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소비자들은 ‘사고’에 심한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 ‘사고차=문제차’라고 쉽게 단정한다. 여기에는 사고난 중고차를 속아 산 경험을 했거나, 주위에서 사고차를 잘못 사 낭패를 봤다는 얘기들을 들었던 게 작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고차는 사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말까지 한다.

보험개발원이 지난해 1월1일부터 올 6월30일까지 매매를 위해 자동차 이력정보를 조회한 중고차 42만845대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 중 27만2,585대(전체의 64%)가 차사고로 보험금을 받은 경력이 있었다. 이는 ‘중고차를 사는 건 사고차를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된다. 사실 중고차시장에 나온 대부분의 차는 크고 작은 사고를 겪었다. 10대 중 6대 이상이 아니라 10대 중 9대가 사고경험을 가졌다고도 본다. "중고차=사고차"라는 공식이 성립되도 크게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사고가 나 게 아니라 사고경력을 속이는 것이다. 사고경력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려준다면 그 다음부터는 소비자 개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책임이 소비자에게 넘어간다는 얘기다. 그러나 가격을 좀 더 받기 위해 사고흔적을 알기 힘들다는 점을 악용, 그 동안 폭리를 취해 왔던 중고차 딜러들이 많았다. 인터넷으로 소비자 피해 정보가 확산되면서 중고차 딜러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떨어졌다. ‘중고차=사고차’를 넘어 ‘중고차=문제차’라는 인식에까지 이르렀다. 오죽하면 ‘중고차 딜러는 아버지에게도 차를 속여 판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물론 ‘중고차=사고차=문제차’라는 인식이 확산된 데에는 중고차 딜러의 책임만 있는 건 아니다. 소비자와 중고차 딜러가 생각하는 사고와 무사고에 대한 개념이 다른 것도 한 몫하고 있다. 딜러들은 일반적으로 차의 프레임이나 차체의 주요 부위가 잘라져 용접돼야만 ‘사고차’로, 도어나 보닛 교체, 판금 등은 ‘무사고차’로 본다. 이와 달리 소비자들은 교체는 물론 판금이나 도색 등의 작업이 있었다면 ‘사고차’로 여긴다. 사람을 예로 들면 중고차업계 종사자들은 뼈가 부러져야만 사고로 생각하나 소비자들은 다치면 무조건 사고로 판단하는 셈이다.

이러한 개념의 차이는 결국 소비자들이 중고차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비자단체가 실시하는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개념 차이로 발생한 소비자들의 불쾌감이 진짜 속아 산 사례와 함께 어우러져 중고차매매업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한 소비자와 딜러의 마찰을 없애기 위해 건설교통부는 중고차 성능점검기록부에 사고 유무와 함께 사고차의 정의를 포함한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 지난 5월25일부터 시행중이다.

건교부는 비영리단체인 한국중고차문화포럼의 도움을 얻어 사고로 자동차 주요 골격 부위의 판금, 용접수리, 교환이 있는 차를 사고차로 한정했다. 후드, 앞펜더, 도어 등 외판 부위와 범퍼가 판금 또는 교환됐을 때는 단순수리로 정의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딜러에게 차를 살 때 사고차를 속아 살 가능성이 줄어들 전망이다. 소비자들도 ‘사고차=문제차’라는 선입견에서 좀 벗어나야 한다. 사고차가 모두 문제차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 사고차는 싸고 품질좋은,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도 있다.

보험개발원이 이번 조사에서 2000년 이후 출고된 차 4만7,369대를 대상으로 보험처리된 수리비 내역을 조사한 결과 50만원 미만이 전체의 49.3%에 달했다. 50만~120만원은 30.0%, 120만~200만원은 9.1%, 200만원 이상은 11.5%였다. 중형 승용차 기준으로 보험수리비 50만원은 범퍼가 교환됐거나 도어 한 쪽만 교체됐을 때 나오는 금액으로, 소손상이라 불린다. 120만원은 범퍼, 앞패널, 라이트 등을 모두 교환할 때 들어가는 비용으로, 중손상에 해당한다. 200만원 이상은 차의 성능과 상태에 문제를 일으키는 대손상이다. 이 중 소손상과 중손상은 수리만 제대로 됐다면 차의 성능에 별 문제가 없다. 요즘엔 수리기술이 발달, 웬만한 손상은 원상태에 버금가도록 고칠 수 있다. 이번 조사결과만 놓고 볼 때 중고차 10대 중 8~9대, 최소한 10대 중 5대는 여기에 포함된다.

‘스쳐도 수리비 200만원’이라는 고급차도 늘고 있고, 소비자가 자신의 돈을 들여 차를 고칠 때보다 자동차보험으로 처리할 때 비용이 비싸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능에 지장이 없는 중고차는 더 늘어난다. 게다가 사고경력이 있으면 구입비용을 아낄 수 있다. 도어, 범퍼, 펜더 등이 가벼운 접촉사로 판금 또는 교환된 단순 수리차는 성능에 문제가 없지만 무사고차보다 2~10% 싸게 살 수 있다. 딜러들이 단순 수리차를 무사고차로 간주하거나, 일부 악덕 딜러들이 수리차를 무사고차로 속여 파는 데에는 수리기술이 발달해 웬만한 사고는 흔적도 쉽게 없앨 수 있고 무사고차와 성능에서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을 알아서다. 따라서 소비자들도 사고차를 등한시하지 않는다면 불법호객꾼에게 속을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불법호객꾼들은 무사고차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고차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복덩이가 될 수 있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중고차=사고차=문제차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도록 정부가 사고경력을 정확히 알려주는 법적, 제도적, 사회적 시스템을 강화 또는 새로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또 보험금 지급내역으로 사고가 있다는 것만 주로 알려주는 보험개발원의 자동차 이력정보 서비스를 개선하고, 중고차업계도 자정 노력을 펼쳐야 한다. 소비자들도 ‘사고차=문제차’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사고차의 매력에 관심을 기울릴 필요가 있다.



최기성 기자 gistar@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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