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레전드가 한국에 왔다. 아카디아를 통해 이미 레전드를 경험했던 이들이 많다. 국산화 비율 때문에 국산차냐, 아니냐 논란을 일으켰던 차다. 혼다에서 반조립 상태로 들여와 대우자동차가 국내에서 조립해 판매했던 차다.
대우 아카디아를 시승했던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 서울역 앞 대우센터에서 시승차를 전해 받고 남산 3호 터널을 지나오는 길은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가속 페달을 꾹 밟았을 때 시트 등받이로 전해지는 가속감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또 한 대의 아카디아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다가서니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뒷좌석에 타고 있었다. 두 대의 아카디아는 잠깐동안 함께 달리다가 길이 어긋났다. 어스름 저녁, 아카디아를 타고 퇴근하는 김 회장의 이미지는 그 이후로 오랫동안 기자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 아카디아가 진화를 거듭해 다시 한국에 왔다. 정체도 분명히 했다. 혼다 레전드다. 아카디아의 전설을 오늘 되살려 한국시장에서 대형 사고를 치겠다는 의지다.
아카디아에 대한 평가는 괜찮았다. 부품조달 문제로 애프터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크기는 했지만 힘있고 디자인도 좋아 대형 세단시장에서 인기가 많았다. 국산차 여부를 놓고 정체성 논란은 있었지만 “차는 좋다”는 평가가 많았다.
아카디아의 흔적은 오늘날 레전드에게 그리 나쁠 게 없어 보인다. 호평받았던 차여서 이미지가 좋고, 그 고객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어서다. 실제 혼다코리아는 아카디아 고객들을 레전드의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국산차로 팔렸던 아카디아의 뒤를 이어 오늘의 레전드는 수입차시장에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디자인
디자인만으로 보면 중형 세단급이다. 아카디아의 우람한 크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 차가 그 차 맞아?”라는 질문을 던진다. 차급에 비해 차체가 작아보이지만 그래도 5m에 육박하는 크기는 만만치 않다.
옆에서 보면 보닛과 루프, 트렁크 라인으로 이어지는 면이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앞에서 보면 샤프한 이미지가 옆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부드럽다. 조금 많다 싶을 정도로 선들이 사용됐다. 지붕의 곡선과 보디에 그어진 선이 조화를 이룬다. 단순한 뒷모양에 "혼다", "레전드" , "SH AWD"라는 글자들이 각 귀퉁이에 하나씩 자리잡았다. 글자 배치만 잘 하면 정돈되고 깔끔한 맛이 있겠다.
밤에 도어를 열 때는 도어 손잡이에 은은한 조명이 비친다. 편리할 뿐더러 멋있다. 운전석에 앉으면 깔끔한 계기판에 눈길이 멈춘다. 보기에 편하고 계기판에 뜨는 정보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운전석과 조수석에선 냉풍도 나온다. 물론 시트를 따뜻하게 할 수도 있다. 날씨에 따라 쾌적하게 운전할 수 있는 요소다. BMW의 i드라이브를 연상시키는, 조그셔틀처럼 만들어진 스위치로 오디오와 공조장치를 조절하는데 보기와 달리 번거롭다. 일반적으로 스위치를 한 번만 누르면 끝나는 동작을 두세 단계를 거쳐야 원하는 동작을 지시할 수 있어 운전하는 동안에 작동하기가 부담스럽다.
센터페시아 윗부분에 만들어진 모니터도 그렇다. 컬러 모니터도 아니고 단색으로 나침반 기능과 라디오 주파수, 위도와 경도 등을 표시하는데 지도는 나오지 않는다. 내비게이션 기능이 빠져 있다. 어떤 메이커의 고급 세단은 차에 맞는 제대로 된 내비게이션을 달 수 없어 일본에서 팔지 않는다. 그 만큼 일본시장에서 내비게이션 장착 여부는 차를 파는 데 관건이 된다. 원가를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비게이션없이 고가의 차를 파는 건 이제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더 많은 기능을 뽐낼 수 있는 모니터에 위도, 경도만 숫자로 표시되어 있는 게 안타깝다.
▲성능
레전드를 타기 전 "SH AWD"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글자를 풀어 읽으면 "슈퍼 핸들링 올휠드라이브"가 된다. 앞뒤 구동력 배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좌우로 나누는 문제를 해결한 시스템이다. 앞뒤의 구동력 배분비율이 30대 70에서 70대 30까지 변하고, 뒷바퀴로 전해지는 구동력은 다시 0~100%까지 가변적으로 좌우 배분하는 것. 이를 통해 최대의 구동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게 혼다의 설명이다. 4륜구동의 주행안정성은 기본으로 확보하고 이 처럼 전자식 구동력 배분장치로 위기상황에서의 컨트롤을 한결 쉽고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쪽 타이어를 도로 바깥쪽의 비포장 부분에 걸친 상태로 코너를 돌았으나 차의 거동은 안정적이었다. 타이어 슬립을 느낄 수 없었고 차는 안정된 상태로 코너를 빠져 나갔다.
급가속과 급정거를 반복하며 차의 움직임을 살폈다. 고속주행에서 바람소리는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오디오를 켜 놓으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소음을 보완하도록 음악신호를 보정해 들려주기 때문이다. 소리로 소리를 덮는 셈이다.
압축비는 11.0대 1로 높은 편이어서 엔진 펀치력과 연비에 유리하다. 압축비가 높으면 이론상 소음과 진동면에서는 불리하지만 운전자가 실제 이를 느낄 정도는 아니다. 300마력에서 5마력이 부족한 출력은 힘에 관한 한 아쉬움이 없게 만든다.
공차무게는 1,830kg으로 마력 당 무게비가 6.2kg을 조금 넘는다. 스포츠카 수준이다. 당연히 순발력이 돋보인다. 탱탱한 힘이 운전대로, 시트 엉덩이로, 가속 페달로 전해진다. 차와 닿아 있는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 그 힘을 느낄 수 있다.
▲경제성
6,780만원이란 가격대는 수입차시장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가격대다. 억대를 넘는 고가시장이나 3,000만원 전후의 저가시장이라면 조금 더 편하게 차를 팔 수 있겠으나 7,000만원대 전후의 시장에는 거의 모든 브랜드가 저마다 한두 차종 이상을 내놓고 있어 그 만큼 피튀기는 경쟁이 벌어진다. 모두가 알다시피 혼다는 이미 CR-V와 어코드로 3,000만원대 시장에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레전드는 혼다코리아의 고급시장 공략 첨병이다. 다행히 성적은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혼다의 명성, 레전드의 성능과 품질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덕이다.
혼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항공기다. 시작은 오토바이이고, 지향하는 목표점은 비행기이니 자동차는 그 중간단계쯤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해서 혼다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궁극적으로 기술이 필요한 분야이니만큼 ‘기술의 혼다’라는 명성은 당분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