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미국 2대 자동차회사 포드가 보잉사의 앨런 멀럴리(61)를 최고경영자(CEO)로 전격 영입한 것을 두고 포드가 "큰 도박"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는 포드가 강력한 새 리더십이 필요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하다는 점을 반증한다. 경영의 심각성은 도요타자동차가 지난 7월 처음으로 미국 내 자동차 판매량에서 포드를 추월한 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영난은 결국 포드가(家)의 직접 경영 전통을 이어온 창업주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빌 포드 주니어(49)를 CEO에서 물러나게 했다. 빌 포드는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포드차의 "얼굴"로만 남고 실질적인 경영회생은 외부인사인 멀럴리가 맡게된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7일 포드가 CEO를 외부 인사에 맡긴 것은 그동안 회사를 이끌어온 포드가의 아픔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빌 포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문의 전통과 유산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큰 좌절감을 느껴온 것으로 알려졌다. 포드가의 자산은 최근 10년간 주가 하락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 아시아판은 그러나 포드차의 CEO 자리를 내놓고 뒷전으로 물러나게된 포드가의 포드차 역사를 소개하면서 포드가가 1903년 창업 이래 회사의 원동력이 돼 왔다고 평가했다.
포드가 사람들은 1979∼1999년을 제외하고 줄곧 회사를 직접 경영해왔다. 창업주 헨리 포드의 아들인 에드셀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1919년부터 1943년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에드셀의 아들 헨리 포드 2세는 2차 대전 참전에서 돌아온 후 사장직을 이어받았다. 그 후 헨리 포드의 손자인 빌 포드 시니어가 포드차 경영에 관심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20년간 전문경영인의 손에 맡겨졌다 그의 아들 빌 포드 주니어가 1999년 CEO 자리에 오르면서 다시 가문의 직접경영이 시작됐다. 창업주 포드는 창업 10년만인 1913년 미시간주 하이랜드 파크에 최초의 이동식 조립라인을 세워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자동차 가격을 대폭 낮췄다. 이후 포드차는 급성장을 거듭해 1921년 자동차 500만대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포드는 1920년대 에드셀 경영체제 하에서 뼈아픈 교훈을 배운다. 자동차 산업은 주기적으로 부침이 있는 산업으로 급속한 기술 발달과 함께 공장 및 근로자의 꾸준한 변화가 요구됐으나 포드는 이를 쫓아가지 못했다. 에드셀은 강력한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자신은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다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후 대공황과 주식시장 붕괴로 자동차 산업은 침체의 길을 걷게 된다. 1929년 500만대에 달했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1933년에 200만대 이하로 급락했다. 포드는 수천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하는 구조조정 끝에 침체의 늪에서 살아남았으며 1930년대 말부터 경영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에드셀의 바통을 이어받은 그의 아들 헨리 포드 2세는 여러가지 면에서 존경받는 경영자였다. 그는 다른 회사에서 리 아이아코카 같은 임원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했으며 1956년에는 기업공개를 통해 6억5천만달러를 조달했다. 그러나 그는 1957년에 미국 역사상 최악의 실패작으로 꼽히는 에드셀 모델을 만들었다가 2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겪기도 했다. 헨리 포드 2세는 어떤 면에서는 다소 오만한 보스라는 평가도 있다. 그는 1969년 아이아코카에게 사장직을 넘기고 자신은 회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사건건 의견충돌을 빚었고 결국 아이아코카가 쫓겨났다. 헨리 포드 2세가 1980년 회장에서 은퇴할 때는 포드가에서 그를 이를 사람이 없었다. 그는 1987년 세상을 떠나고 12년 후 빌 포드가 비로소 회장직에 올랐다.
포드가는 이제 경영에서는 한 발 물러났지만 여전히 회사 의결권 주식의 40% 이상을 보유한 최대 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일부 포드가 사람들은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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