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벤츠 뉴 제너제이션 E클래스 발표회장을 나서면서 누군가 한 말이다. 대한항공 격납고에서 국내의 내로라하는 모델 50여명이 총출동해서 유명 의류 브랜드의 협찬까지 받아가며 보란 듯이 신차발표회를 연 걸 두고 한 말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가 빈발하는 시점에 비행기들이 수시로 이착륙하는 공항을 무대로 이벤트를 벌이는 게 쉽지는 않았을 일이다. 더운 여름밤 담배 피면 안된다, 정해진 곳 말고는 가지 못한다, 비행기 근처로 접근하면 안된다… 등등의 제약을 말없이 따르면서 600명에 이르는 초청인사들이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시종일관 얌전히 앉아 있던 이유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벤츠 신형 E클래스는 이 처럼 거하게 한국에 상륙했다. 일본보다 빠르게,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E클래스가 소개된 것. 발표회 며칠 후 시승에 나섰다.
▲디자인
인류 역사의 어느 단계에선가 빗살무늬토기가 등장한다. 아마도 훗날 어느 때쯤 E클래스의 발전단계를 말하면서 빗살무늬 헤드 램프를 말할 지 모른다. 다소 거창한 이름 ‘더 뉴 제너레이션 E클래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이 바로 헤드 램프다. 방향지시등과 일체형인 헤드 램프 윗부분에 빗살무늬처럼 가로무늬를 넣었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 말에서 새 차 디자인에 큰 변화가 없다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어찌 보면 아주 작은 부분인 헤드 램프의 변화가 외관에서 가장 눈길을 끈다면 큰 틀에서의 변화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실루엣이 살아 있는 우아한 모습은 E클래스의 본질을 잘 나타낸다. 넘치지 않는 세련됨이 우아함과 잘 어울리며 격을 갖췄다. 전체적인 디자인 경향은 보수적이다. 고객들의 취향에 맞춘 결과다.
브라운 계통의 천연가죽이 사용된 실내는 검정이나 회색 계열의 가죽에 익숙한 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물론 인테리어 컬러는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지만 브라운 컬러도 나쁘지 않다.
잘 정돈된 실내에 들어서면 운전자는 심적 안정을 찾는다. 가슴 벌렁거리는 흥분보다는 심연으로 가라앉는 차분함이 어울린다. 편리함과 기능을 존중하는 벤츠의 배려는 곳곳에 숨어 있다. 로봇처럼 접혀 있다 부드럽게 펼쳐지며 올라오는 컵홀더, 후방추돌 시 순간적으로 앞으로 밀려 나오며 탑승자의 목을 보호하는 넥프로 헤드레스트, 완전히 접히는 뒷좌석 등이 그렇다.
보닛을 열기 위해 라디에이터 그릴 사이로 손을 넣으면 그릴 안쪽 손이 닿는 곳이 날카롭다. 부드럽게 마감하면 더 좋겠다. 앞뒤 모두 차창을 내리면 유리가 완전히 내려가지 않고 끝부분이 살짝 남는다. LED 브레이크등은 뭔가 환상적인 느낌을 주고, 범퍼 아래 수줍게 숨어 있는 트윈 머플러는 만만치 않은 파워를 암시한다.
▲성능
가속 페달의 감각은 즐겁다. 가볍지 않았고 적당한 답력이 발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특히 킥다운할 때 마지막 순간에 전해지는 반발력은 묘한 매력을 준다. 마지막 저항을 무시하고 마저 페달을 밟음으로써 차는 킥다운이 걸리며 본격적인 가속을 시작한다.
바람을 가르는 쾌속질주는 편안하게 이어진다. 스포츠패키지인 이 차는 타이어가 제각각이다. 앞타이어는 245/40R 18, 뒷타이어는 265/35R 18이다. 구동력이 전달되는 뒷바퀴에 좀 더 큰 광폭타이어를 써서 강한 구동력을 얻고 있다. 스페어타이어는 245/45R 17이다. 템퍼러리 타이어는 아니지만 어쨌든 임시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스포츠패키지가 아니면 앞뒤 모두 245/45R 17 타이어가 장착된다.
변속기는 매뉴얼, 컴포트, 스포츠 등 3개 모드로 사용할 수 있다. 패들 시프트 기능이 있어 운전대를 잡은 채 변속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벤츠가 자랑하는 7단 자동변속기는 부드럽게, 힘있게 동력을 전달한다. S-M-C로 변속모드를 바꿔보는데 C로 세팅하면 경미한 흔들림이 있다. 7단 변속기는 기능적인 우수성도 그렇지만 ‘7단’이 주는 이미지도 무시할 수 없다. 5단이 평균이고 6단이 고수라면 7단은 무림을 평정하는 최고수쯤 되는 게 아닐까. 어쨌든 7단 변속기는 기능보다 상징성이 더 크다. 정지 상태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아도 변속기는 중립과 후진, D모드를 넘나든다. 안전을 위해서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만 변속레버가 움직이는 게 좋다.
언덕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마지막 순간까지 꾹 밟은 뒤 발을 떼도 차는 밀리거나 흐르지 않는다. 어댑티브 브레이크의 홀드 기능이다. 덕분에 언덕길 스트레스는 사라졌다.
크루즈컨트롤 기능도 재미있다. 상한선을 정해 놓으면 가속 페달을 밟아도 더 이상 속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일종의 과속방지 기능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크루즈 컨트롤 본연의 기능보다 더 유용하겠다.
순간적으로 치고 달리는 순발력은 날카롭다기보다 꾸준한 편에 가깝다. 급격하게 속도를 높이지만 엔진의 펀치력은 두꺼운 글러브를 끼고 때리는 듯 때론 부드러웠고, 때론 묵직했다.
차를 타고 달리는 맛은 포근했다. 시속 180km를 넘기는 고속에서는 실내를 덮는 바람소리가 긴장감을 더하며 짜릿한 즐거움을 주고, 시속 120km 전후에서는 엄마품인듯 차에 파묻혀 달리는 편안함을 준다. 신경을 곤두세워 접하는 서스펜션은 노면의 공습을 언제든지 완벽하게 커버했다. 부드러운듯 딱딱한 서스펜션이다.
새 E클래스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 중 하나는 안전장치들이다. E클래스의 안전장치들은 전체적으로 통합돼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사고가 나면 고강도 캐빈과 어댑티브 에어백, 넥프로 헤드레스트 등이 승객을 지킨다. 승객은 물론 보행자 보호를 위해 차체 표면과 범퍼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쉽게 구부러져 가급적 적은 충격이 전해지도록 배려했다. 승객의 안전뿐 아니라 보행자의 안전까지 감안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이 차를 통해 실감한다.
사고가 났을 때 승객을 보호하는 게 수동적 안전성이라면 사고 자체를 회피하게 해주는 건 능동적 안전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ESP, 어댑티브 브레이크, BAS 등은 모두 능동적인 안전장치들이다. 차의 거동을 안정시키고 제동능력을 극대화해 사고 자체를 적극 막아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장치들이 사고회피에 도움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믿고 무리한 주행을 해도 사고가 안나는 건 아니다. 절대적으로 사고를 막아주는 장치는 없다. 그래도 E클래스를 타고 달리다 사고가 났다면 위험경고등이 자동으로 작동하고, 도어잠금장치가 해제되고, 연료공급도 차단된다. 사고 후의 2차 피해를 최대한 줄이려는 조치들이다.
▲경제성
E클래스를 새로 선보이면서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책정한 가격은 E200K 이규제큐티브 5,990만원부터 E350 4매틱 1억590만원까지다. 수입차 가격이 비싸다는 논란이 벌어질 때 꼭 언급되는 브랜드가 바로 벤츠다.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의 판매가격과 비교해 비싸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 때마다 수입사측에서는 관세를 포함하는 세금, 매장 유지관리비, 고급 옵션 등을 들며 그렇지 않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객들을 유인할 필요가 있다. 병행수입업체로 발길을 돌리는 많은 벤츠 수요자들이 있다. 벤츠는 좋지만 가격은 불만인 사람들이다. 거품을 걷어내고 솔직한 가격을 내세우면 벤츠코리아의 입지는 더 굳건해지지 않을까.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