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는 그 동안 운이 작용하는 상품이었다. 소비자는 운이 좋으면 상태가 괜찮은 차를 샀고, 운이 나쁘면 상태가 나쁜 차를 속아 샀다. 중고차업체에 차를 팔 때도 마찬가지였다. 운 좋으면 괜찮은 가격에 넘겼고, 운 나쁘면 헐값에 팔았다. ‘재수 좋았다’, ‘재수 옴붙었다’는 말은 수십년간 중고차를 거래할 때 소비자들의 입 속을 맴돌았다.
‘운’과 ‘재수’가 작용한다는 건 리스크(위험)가 크다는 뜻이다. 이는 ‘도박’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리스크가 크고 도박성을 지닌 상품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 소비자들은 상품을 살 때 자신이 지불한 돈에 걸맞는 가치를 얻기를 바라는데, 도박은 기대가치가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고 대부분 소비자의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필요에 따라 이런 상품을 사더라도 ‘돈이 없어’ 어쩔수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기회만 된다면 다시는 이런 상품을 구입하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은 리스크 관리기법을 도입, 소비자들이 느끼는 상품의 리스크를 줄이려고 애쓴다.
리스크가 컸던 중고차시장에서도 지난 몇 년간 정부와 기업형 업체들이 중심이 돼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그 중 대표적인 게 2001년 4월 시행된 중고차 성능점검제도다. 중고차의 상태를 가능한한 자세히 알려줘 소비자들이 차를 속아 살 리스크를 줄이는 게 이 제도의 핵심이다. 지난해 8월부터는 정부 산하기관인 교통안전공단이 성능점검시장에 본격 진출하면서 그 동안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던 성능점검제도가 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1년이 갓지난 지금 교통안전공단은 성능점검시장에서 철수할 태세다. 공단은 표면적으로는 현재 입법예고 추진중인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중 일부 개정령안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개정령안이 올해말이나 내년쯤 시행되면 공단, 성능점검관련 단체, 정비공장만 성능점검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삭제되고 성능점검업이 영리사업으로 바뀌어 정관 상 영리사업을 할 수 없는 공단은 성능점검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밖에서 바라보는 철수 이유는 다르다. 중고차딜러들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는 딜러들의 입맛에 맞게끔 성능점검기록부를 작성해주지 않으면 딜러들이 오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공단의 성능점검비 3만원보다 낮은 5,000~2만원 정도만 받으면서도 딜러의 입맛에 맞게 성능점검을 해주는 영세 정비공장도 많다.
주로 육안과 간단한 장비만으로 미래의 고장을 예측해야 하므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성능점검의 속성을 악용, 현재는 별다른 이상을 찾을 수 없지만 몇 달 뒤 고장날 가능성이 있는 중고차만 공단에 의뢰하는 등 공단의 대외 공신력과 보상 시스템을 악용하는 딜러들도 늘었다. 게다가 중고차 성능점검을 하지 않거나, 엉터리로 하더라도 매매업체가 ‘재수없어’ 적발됐을 때 과태료 50만원만 내면 되는 등 적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들이 맞물리면서 공단이 성능점검사업에서 철수하게 된 것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이에 따라 중고차 소비자들이 더 이상 속아 사는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겠다던 정부의 원대한(?) 계획은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소비자들의 신뢰회복도 더 이상 나아지지 않고 중고차 거래는 여전히 ‘도박’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수 있다. 성능점검제도를 악용하는 딜러들도 손해를 보게 된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사업은 ‘떳떳치 못한 돈벌이’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건 물론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를 얻고 있는 기업형 업체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현재 국회에는 중고차유통의 도박성이 일으키는 사회적 문제를 없애기 위해 매매업자가 성능점검기록부를 발급하지 않을 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 현행 행정법 처벌을 형사법 처벌로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50만원 이하의 과태료나 30일 영업정지 처벌만으로는 성능점검제도를 정착시킬 수 없다는 지적 때문이다. 공단도 성능점검사업에서 철수하는 대신 성능점검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중고차 성능점검 상태를 인터넷으로 공개하고, 자동차의 보험사고 이력을 알려주는 카히스토리를 결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소비자단체들도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중고차유통의 도박성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 관련 제도 마련을 계속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아무쪼록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중고차정보가 소비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공개돼 중고차유통의 도박성이 줄어들고, 중고차거래가 떳떳한 유통사업으로 대접받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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