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를 사러 갔던 정준영 씨는 중고차딜러로부터 알 수 없는 말을 들었다. 마음에 드는 자동차가 ‘1호 라인 자동차’여서 같은 연식의 차보다 50만원이나 더 비쌌던 것이다. 딜러는 “1호 라인 차는 일단 타는 사람이 다르고, 겉모양은 같지만 절대 같은 차가 아니다”라며 가격흥정 자체를 거부했다. 그렇다면 과연 1호 라인 자동차란 게 과연 있는 걸까.
대학에서 자동차관련 과목을 강의중인 전모 씨는 “자동차는 차종별로 생산공장과 라인이 따로 있다"며 "라인 번호는 작업순서에 따라 붙여지므로 기술적 구분일 뿐인데 1호 라인을 안거치는 자동차가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즉 자동차 생산과정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모든 자동차는 1호 라인을 통과해야만 만들어 질 수 있으므로 별도의 1호 라인 차가 있다는 건 넌센스라는 얘기다.
그러나 국내 A자동차회사의 부사장을 지낸 박모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명 ‘1호 라인 자동차’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홍보실과 회장실에서 25년을 보낸 그는 ‘1호 라인 차’는 기술적 의미가 아닌 상징적 의미의 차라고 전제하고, 어느 자동차회사에서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시끄러운 사람들이나 힘을 가진 사람들은 다르게 대접받기를 바라는 속성이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1호 라인 차를 타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 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내친 김에 ‘1호 라인 자동차’를 타는 사람은 누가 관리하는 지 물었다. 그는 “주요 영업소에 본사 중간급 간부가 상주한다”며 이 사람을 통해 주문에서 출고까지 원스톱 서비스가 이뤄진다고 했다.
하지만 ‘1호 라인 자동차’가 타는 사람 외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놀라웠다. 그는 “지금은 우리의 자동차 기술이 세계 상위 수준이지만 예전에는 주요 부품을 외국에서 수입해 별도로 수작업하기도 했다”며 “지금도 바람막이 고무 등의 부품은 별도로 신경쓰는 회사가 있을 것”이라는 말로 현재도 ‘1호 라인 자동차’가 진행형임을 시사했다. 그는 또 “수출용 차는 철판두께와 엔진 등이 국내 시판차와 다르다는 소문 때문에 수출용 차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실내 소재나 모양을 바꿔달라는 주문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만일 이렇게 제작된 ‘1호 라인 자동차’가 출고됐다면 공공연히 불법을 자행한 셈이다.
그는 “기업이 권력에 밉보이면 하루 아침에 공중분해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완전히 변했다. 따라서 기업의 홍보수단도 급변했고, 1호 라인도 변했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1호 라인을 통한 홍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힘있는 이들의 자동차를 만드는 대신 유명인들에게 1호차를 제공하고, 의전용 차를 협찬하는 등 대중을 통해 최대의 홍보효과를 기대한다. 의전용으로 제공한 양산차에 외국 수상이 탔다는 사인이 붙는 정도가 탔던 사람을 구별해줄 뿐이다. 음습하게 진행되던 권력과의 거래가 대중권력이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찾은 것이다.
한국 자동차 기술의 발전으로 완성도 높은 자동차가 양산되면서 1호 라인 자동차의 의미도 빛을 잃고 있다. 별도의 손질없이 만족할만한 자동차를 탈 수 있고, 심지어 옵션이 넘쳐 마이너스 옵션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1호 라인 자동차’를 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그 옛날 ‘1호 라인 자동차’를 고집할 명사는 없지 않을까.
김민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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