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냐, 자만이냐

입력 2006년10월2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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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개월 전 베라크루즈 개발에 참여한 지인과 만나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자동차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그는 베라크루즈가 국산 최고급 SUV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기대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인 지를 물었더니 "현대에 있어 베라크루즈는 프리미엄시장에 진출하는 신호탄"이라는 말을 했다. ‘프리미엄’, ‘현대자동차’, ‘신호탄’. 이 세 단어만으로도 현대가 베라크루즈에 거는 기대감을 짐작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 뒤로 현대자동차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버릇처럼 "베라크루즈 어떠냐"고 물었고, 드디어 베라크루즈를 만나게 됐다.

▲디자인
베라크루즈의 첫 느낌은 단아하다고 표현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반면 독특함도 빼어 놓을 수 없다. 특히 그물형 라디에이터 그릴이 풍기는 신선함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동안 현대가 추구했던 스타일과는 확연한 차별화를 이루고 있어서다. 물론 사람에 따라 스타일에 대한 평가야 얼마든지 달라지겠으나 개인적으로 앞모양의 독특함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헤드 램프는 좌우보다 위아래가 더 긴 세로형이며, 투톤컬러 와이드 범퍼 좌우 하단에 반원형 안개등이 자리하고 있다.

조금이나마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하기 위해 자동차 디자인 전문가에게 베라크루즈의 전면 스타일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전면 스타일은 사람의 얼굴을 그리듯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만 베라크루즈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 듯한 모습”이라며 “현대로선 첫 느낌부터 베라크루즈가 기존 차종과 다르다는 인식을 주려 한 듯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차별화는 이뤄냈지만 처음 맞닥뜨리는 사람에게는 어색함을 줄 수도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개인적으로 앞모습을 보며 약간의 어색함을 배제하지는 못했다.

현대는 베라크루즈의 독특한 앞모습이 공기저항계수와 연관이 있다는 설명을 했다. 현대에 따르면 베라크루즈의 공기저항계수는 0.35로, 렉서스 RX350과 같다는 것. 종합해보면 공기저항을 줄이고, 싼타페와의 차별화를 이루면서도 고급감을 살렸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어색해 보일 수도 있는 셈이다.

이와 달리 뒷모양은 안정감을 주고 있다. 타원형 듀얼 머플러는 베라크루즈가 고성능 SUV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안쪽에서 바깥으로 커지는 리어 램프는 세련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이미지를 살리면서 곳곳에 베라크루즈만의 고성능과 프리미엄 성격을 심는 데 주력했음을 알 수 있다.

실내에 앉으면 베라크루즈의 고급스러운 특징은 더욱 확실해진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각종 기능 버튼들의 배열은 시각적으로도 안정감과 함께 품격을 물씬 풍긴다. 일반적으로 운전석에 앉으면 사람의 시선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 계기판이다. 그런 다음 센터페시아로 옮겨지고, 이내 변속레버쪽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보는 즉시 영상은 머리로 전달돼 여러 이미지와 단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고급스럽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는 점에서 일단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색다른 블루톤의 계기판과 액정모니터 좌우에 세로형으로 배치된 송풍구 등은 현대가 베라크루즈의 품격을 살리기 위해 세심한 부분에까지 관심을 둔 흔적으로 보였다. 세로형 송풍구가 좌우에 가지런히 배치된 메탈릭 센터페시아는 앞으로도 현대의 대형 고급차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스타일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실내에서의 또 다른 특징은 공간이 무척 넓다는 점이다. 실제 베라크루즈는 렉스턴Ⅱ와 렉서스 RX350보다 폭이 넓다. 현대는 앞바퀴굴림을 채택해 실내공간을 최대한 늘렸고, 3열에 성인이 앉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3열에 앉아 보면 좌우 공간은 충분하지만 레그룸이 좁아 무릎을 세우고 있어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성능
시승차는 베라크루즈 2WD 300VXL AT. 최고출력 240마력의 V6 3,000cc급 VGT 엔진과 일본 아이신이 개발한 6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돼 있다. 우선 시승을 위해 차에 오르면서 문을 여러 번 열고 닫았다. 고급차와 그렇지 않은 차는 문 닫을 때의 소리가 차이나기 마련이다. 묵직하면서도 착 달라붙는 소리가 들렸다. 출발부터 좋은 느낌이다.

시동을 걸었다. 부드럽게 걸리는 시동에 다소 놀랐다. 아무리 최고급 SUV라도 디젤엔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부드러움은 예상밖이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사이 공회전 진동과 소음에 신경을 곧추 세웠다. 전혀 소리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진동의 경우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과 시트에 밀착된 엉덩이에서 매우 약하게 느껴졌다. 엔진소리도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진동 및 소음 감소에 상당한 역점을 뒀다는 현대의 주장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시내 도로에 들어섰다. 도로여건 상 속도를 낼 수 없어 편안하게 운전했다. 시내주행에서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 어느 정도의 힘이 들어가는 지 답력도 느껴보고, 운전할 때 각종 조작버튼의 사용이 얼마나 편리한 지 집중 체험했다. 그런데 후방의 상황을 보기 위해 룸미러를 보면서 독특함이 하나 발견됐다. 바로 컨버세이션 미러다. 일반적으로 룸미러는 차 안에서 후방의 상황을 볼 수 있지만 베라크루즈는 뒷좌석 차내 전체를 볼 수 있는 컨버세이션 미러가 하나 더 있다. 운전하면서 뒷좌석을 보기 위해 룸미러의 각도를 일부러 조절할 필요를 없앤 것. 아이를 뒤에 태운 경우라면 매우 유용한 장비가 아닐 수 없다.

가·감속을 할 때 페달의 느낌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전체적으로 묵직함에 가까운 느낌이다. 스티어링 휠과 시트 및 페달의 높낮이는 모두 전동식으로 조절돼 수많은 체형을 모두 소화해낼 수 있다. 두 명의 운전자까지 시트 포지션과 아웃사이드 미러 그리고 스티어링 휠의 위치를 기억하도록 돼 있다.

신호등이 없는 자동차 전용도로에 접어들었다. 이 때부터 차를 고속으로 몰기 시작했다. 흔히 엔진의 반응을 표현하는 응답성 체감을 위해 액셀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디젤차라는 점에서 순간반응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그러나 일단 반응하면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간다. 특히 시속 80㎞를 넘어서자 거침없이 속도계가 오른쪽으로 꺾인다. 46.0㎏·m의 최대토크를 실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6단 자동변속기가 부드럽게 기어를 바꿔줘 변속충격도 쉽게 감지할 수 없었다.

속도를 시속 160㎞까지 높였다. 풍절음이 들리지만 옆사람과의 대화가 편했다. 내심 조용한 실내소음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동승자도 "차가 정말 조용하다"고 말한다. 고가의 수입 디젤 SUV와 비교해도 정숙성면에선 전혀 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점에도 의견 일치를 보았다. 공회전 소음은 휘발유엔진을 얹은 렉서스 RX350보다 크지만 주행소음은 오히려 작다는 현대의 설명에 수긍이 간다.

승차감은 매우 부드럽다. 달리 적절히 표현할 단어를 찾기 힘든 게 승차감이지만, 한 마디로 세단형 승용차와 비슷하다. 그 만큼 안락하다는 얘기다. 급제동을 할 때도 차가 앞으로 쏠리는, 이른바 노즈다운 현상이 별로 없다. 기술적으로 서스펜션의 각도를 승차석쪽으로 기울여 쏠림현상을 방지한 덕분이라는 게 현대측 설명이다.

잠시 차를 세우고 이번에는 변속기 레버를 잡고 드라이브(D) 모드에서 중립모드(N)로, 또 주차(P) 모드에서 후진(R) 모드로 각각 여러 번 레버를 이동했다. 그 때마다 절도감이 느껴졌다. RX350과 인피니티 FX시리즈 등을 시승했을 때 변속레버의 조작감이 상당히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베라크루즈도 그에 못지 않다. 적어도 고급 SUV로서의 제품력을 가지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운전자가 손이나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부분까지 감성기능을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에선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번에는 운전자를 앞에 두고 뒷좌석에 앉았다. 2열과 3열의 천장에 송풍구가 있어 에어컨을 켜면 시원하다. AV조절 시스템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센터콘솔 뒤에 부착돼 있는데, 조절하려면 몸을 앞으로 조금 숙여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 차는 DVD AV 시스템을 갖췄다. 앞좌석의 경우 7인승 모니터가 장착돼 있고, 뒷좌석도 독립 조절이 가능한 DVD AV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뒷좌석에서 볼 수 있는 8인치 액정화면은 천장에 달렸다. 물론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선택품목이다.

이번에는 급하게 차를 좌우로 비틀었다. 타이어 마찰음이 들리지만 그렇다고 차체가 미끄러지는 건 아니다. VDC 덕분이다. 사실 급회전 또는 급차선변경 등의 위험성은 근래들어 기술의 발전속도로 많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차체자세제어장치의 경우 이제는 필수품목이 되는 추세다. 베라크루즈도 VDC를 끄면 급회전 때 뒷부분이 미끄러지면서 돌아가지만 VDC를 켜면 이런 현상은 크게 줄어들면서 타이어만 비명을 지를 뿐이다. 물론 베라크루즈를 타면서 급회전 등을 수시로 구사할 만큼 역동적인 운전을 즐길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성능과 승차감, 코너링 성능은 만족스럽다.

▲경제성
베라크루즈는 가격이 3,180만원부터 시작한다. 4WD 300VXL 프리미엄은 4,274만원이다. 주력차종인 2WD 300VX 럭셔리급은 3,614만원. 선루프와 DVD 내비게이션을 포함하면 거의 4,000만원에 육박한다. 디젤이라는 점과 연료효율이 ℓ당 10㎞가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명 수입 SUV에 비해선 강점이다.

그러나 수입 SUV와 경쟁하려면 브랜드가 관건이다. 수입차에 버금가는 고급 SUV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한다는 현대의 전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물론 어떤 차를 사든 까다로운 제약이나 조건은 없지만 적어도 베라크루즈가 일본과 독일의 고급 SUV와 비교해 상품성면에선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판단에 비춰보면 성공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베라크루즈의 가격과 상품성이 과연 렉서스나 인피니티, BMW 등의 브랜드 벽을 넘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시승 /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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