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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로... |
조선의 가을이 그 곳에 있다. 주변에서 예사로 만나는 그런 가을이 아니다. 한 점 흐트러짐없는 절정의 가을, 조선의 풍광과 어우러져 더욱 깊은 멋과 운치를 자아내는 가을이 그 곳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민속촌’하면 사람들은 식상하게 생각한다. 외국인 손님이 오면 ‘보여줘야’ 하는 의무적인 관광코스이거나, 학생들이 단체로 찾아가는 판박이 관광지쯤으로만 여긴다. 한 마디로 너무 이름난 관광지라 감흥이 사라진 까닭이다.
하지만 한국민속촌의 이 가을을 만나 보라. 비처럼 날리는 낙엽을 맞으며, 수북수북 쌓인 나뭇잎을 밟으며, 청사초롱 이끄는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거기 조선의 가을이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때마침 어디선가 낙엽 태우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기라도 하면 마음은 보자기처럼 헤, 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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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독대 위에도 가을 |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코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그 때 이효석의 유명한 수필 <낙엽을 태우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정현종의 시 <가을, 원수같은>도 절로 읊조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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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공연은 뭘까 |
가을이구나! 빌어먹을 가을
우리의 정신을 고문하는
우리를 무한 쓸쓸함으로 고문하는
가을, 원수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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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반가 |
나는 이를 깨물며
정신을 깨물며, 감각을 깨물며
너에게 살의를 느낀다
가을이여, 원수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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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뜰 풍경 |
초가지붕 위에 멋스럽게 쌓인 낙엽들, 알몸으로 처마 끝에 매달려 곶감이 되어가는 주황빛 감들, 장독대 위에 드러누운 낙엽들의 흔적, 수숫대가 매달린 뒤뜰 처마 아래에는 똥장군이 지게에 여태껏 올려져 있다. 마을 한쪽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그 위로 나무다리가 운치있게 가로질러 놓인 곳을 지나면 갑자기 사람들로 붐빈다. 역시 장터다. 혁필, 유기, 탈, 악기, 부채, 담뱃대 등을 직접 만들어 파는 공방거리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 국밥냄새가 구수한 흰 차양 아래에는 시장기를 달래려는 사람들이 주모를 부른다. 국밥을 말아먹는 이, 동동주에 녹두전을 곁들이는 이, 도토리묵 한 그릇을 초장에 결딴내고도 엿장수 가위질에 엿판으로 눈길을 보내는 이도 있다.
어느 농가 흙벽에 걸린 이 것은 무엇일까. 새끼를 꼬아서 밑둥을 둥글게 말아 놓은 것 같다.
“주인장을 찾을 때 두드리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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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들도 가을속에 |
“바람이 문을 닫지 못하도록 눌러주는 것?”
그건 다름 아니라 문을 열고 닫을 때 문고리가 흙벽에 부딪혀 홈을 파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보호장치. 이렇듯 우리 조상의 세심한 생활의 지혜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민속촌이 만들어진 건 1974년. 조선시대 후기의 한 시기를 택해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했다. 특히 당대 사농공상의 계층별 문화와 무속신앙, 세시풍속 등을 고스란히 살려내고자 애썼고, 또 지방별로 특색을 갖춘 농가, 민가, 관가, 관아, 서원, 한약방, 서당, 대장간, 누정, 저자거리 등을 비롯해 99칸 양반주택 등 대토호가도 재현돼 있다. 야외에서 전시하기 어려운 부분은 옥내 민속전시관을 통해 민속생활 전반을 재현해 놓았다. 무엇보다도 항시 계절별 각종 민속놀이가 공연장에서 벌어진다. 농악, 줄타기, 전통혼례식도 치러지고 중요무형문화재 공연 및 기타 특별한 이벤트 행사도 절기별로 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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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터 |
*가는 요령
경부고속도로 수원 인터체인지에서 빠진다. 신갈 5거리에서 우회전해 오산 방향으로 5분 정도 가면 민속촌 주차장에 이른다. 수원역에서 민속촌까지 무료순회버스가 수시 운행된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