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쟁이 재규어, 고집을 버리다

입력 2006년11월06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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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는 시장에서 독특한 향기를 뿜는 차다. 유니크하고 고전적인 디자인으로 개성적인 모습을 지녔고, 럭셔리 세단 중에서도 스포츠카에 가까운 날렵함을 자랑한다. 다른 차들과 섞여 있어도 한눈에 고를 수 있는 몇 안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바로 재규어다.

재규어코리아가 뉴 XK를 조용히 내놨다. 너도나도 조명을 받으려고 화려한 데뷔를 다투는 와중에 별다른 이벤트없이 고객들과 만나고 있다. 많이 파는 볼륨모델이 아니어서 요란하게 주목받기보다 조용히 시장에 젖어드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디자인
10년만의 풀체인지를 단행했다고 재규어측은 소개했다. 애스턴마틴의 디자인을 책임졌던 이안 컬럼이 재규어로 옮긴 뒤 처음 만든 차가 바로 뉴XK다. XK가 애스턴마틴의 차들과 비슷해 보이는 게 꼭 이안 컬럼때문만은 아니다. 영국차에 남아 있는 디자인 DNA같은 게 있다. 갈수록 옅어지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영국차 특유의 모습, 혹은 분위기가 살아난다.

차에는 역동성이 잘 묻어 있다. 뒤에서 이 차를 보면 언뜻 포르쉐를 보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잔뜩 뒤로 누운 C필러와 차창, 떡 벌어진 타이어, 범퍼 아래 자리잡은 트윈머플러 등. 이 차는 뒤에서 보는 게 제맛이다.

긴 코와 짧은 엉덩이에 적당한 근육질 몸매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스포츠 쿠페의 전형이다. 닷지 바이퍼, 시보레 코르벳 등의 체형이 이와 비슷하다. 모양은 제각각 강한 개성을 자랑하지만 긴 코에 짧은 엉덩이는 스포츠 쿠페 디자인의 모범답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예쁘고 성격좋은 여자친구는 최고다. 그러나 그런 여자친구 혹은 애인을 만나는 행운을 거머쥐기는 쉽지 않다. 억수로 재수좋은 사람이나 그런 행운을 누린다. 그 보다 좀 더 현실적인 건 그 중 어느 한 가지를 뺀 경우다. 예쁘지는 않지만 성격이 좋거나, 혹은 예쁘지만 성격이 까칠한 경우다. 채워진 하나에 감사하며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부족한 하나를 아쉬워하며 또 다른 사람을 갈망할 것인지는 각자의 성격 혹은 판단에 따를 일이다.

재규어 XK가 그렇다. 예쁘지만 실용적이지는 않다. 4개의 시트가 마련됐으나 2명만 탈 수 있는데, 그나마 시트에 앉으면 꽉 끼는 기분이다. 선루프도, 내비게이션도 없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예쁘니까 봐주든지, 실용적이지만 덜 예쁜 놈으로 바꾸든지. 돈이 많아서 세컨드카로 쓰려는 사람은 예쁘니까 봐줄 것이고, 차 한 대로 출퇴근도 하고, 여행도 가고, 때로 폼도 잡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차를 고르기에 걸림돌이 많겠다.

라디에이터 그릴 한가운데 자리한 표범이 우리나라의 도깨비를 닮았다. 붉은 악마가 축구를 응원할 때 등장하는 도깨비, 치우천왕 말이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치우천왕과 재규어의 상징은 닮았다. 재규어니 뭐니 남의 나라 얘기 할 것 없이 한국서는 그냥 도깨비 한 마리씩 차에 달고 다닌다고 보면 되겠다.

▲성능
이 차의 보디는 100% 알루미늄이다. 공차중량이 1,690kg으로 준중형차 수준이다. 100% 알루미늄이라면 좀 더 가벼워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하이브리드카를 보면서 기존 대비 절반 이상 연비가 좋아야 하는 걸 기대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이상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조금씩의 개선이 거듭되면서 혁신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300마력에 1,690kg이니 1마력이 5.6kg의 무게를 감당하면 된다. 마력 당 무게비 5.6kg.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마력 당 무게비가 6~7kg만 돼도 훌륭한 스포츠카다. 그런데 그 보다 훨씬 가볍다. 출발해서 6.2초면 시속 100km를 넘긴다. 달리는 맛이 제법인 차다.

운전이 서툰 사람이 이 차를 타면 전진보다 후진이 더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윈드실드에서 길게 뻗어내린 보닛 라인이 독특한 운전감각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차를 보면 운전자의 엉덩이가 자리하는 곳은 차 길이의 3분의 2가 되는 지점이다. 즉 차의 가운데서 한참 뒤로 물러나 앉는다. 스티어링 휠을 조작했을 때 차의 반응을 운전자가 느끼기까지 시간차가 발생하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무척 어색한 감각으로 운전하게 된다. 반대로 고개를 돌려 후진하면 뒤가 바로 코 앞이어서 잘 보이고 핸들에 대한 차체 반응도 훨씬 빠른 편이어서 전진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는다.

V8 엔진은 보닛 안 정중앙에 놓여졌고, 차는 뒷바퀴굴림으로 움직인다. 조향바퀴인 앞타이어는 245/40ZR 19 사이즈가, 구동바퀴인 뒷타이어는 275/35ZR 19를 끼웠다. 강한 구동력과 제동력을 함께 얻을 수 있도록 뒷타이어에 더 넓은 타이어를 쓴 것이다. 스포츠카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배치다.

꾹 밟으면 단단한 서스펜션이 노면을 읽어내는 걸 알게 된다. 4,000~5,000rpm에서 토해내는 숨소리는 귀를 자극하며 가속 페달을 더 깊이 밟게 만든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서스펜션의 단단함은 빛을 발한다. 저속에서는 튀는 맛이 없지 않은데, 고속에서는 차의 안정성을 지키는 보디가드 역할을 한다.

변속레버의 변화를 많은 사람들은 환영할 지 모른다. 그 동안 고집했던 J게이트를 버리고 시퀀셜 시프트 방식을 도입했다. 팁트로닉으로 전향한 것이다. J게이트는 각 레인지별로 고유한 위치가 있어 수동변속이 가능했다. 무엇보다 J게이트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남들이 다 저리로 몰려 갈 때 혼자 남아 제길을 고집하는 그런 우직함. 그렇게 자리를 지키는 줄 알았는데 재규어는 마음이 편치 않았나보다.

재규어로서는 처음으로 패들 시프트 방식의 6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한 것도 눈길을 끈다. 특이할 것 없는 사소한 변화들이지만 재규어의 저 깊은 곳에서부터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닌 지 모르겠다. 고집을 버리고 추세를 따르는 모습이다. 재규어의 다음 모델을 볼 때 이런 경향을 조금 더 유심히 봐야 하는 이유다.

안전장치도 개선됐다. 탑승자뿐 아니라 보행자까지 보호한다는 "보행자 안전 보닛 시스템"이 적용됐다. 보행자와의 충돌 시 18kg의 보닛을 100분의 3초 이내에 들어올려 쿠션 효과를 발생시킴으로써 보행자의 다리 부상 및 여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것. 이 시스템은 주행속도가, 시스템이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면 자동으로 정지되며 에어백 등의 다른 안전장치들과는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경제성
뉴 XK 쿠페의 판매가격은 1억5,200만원. 컨버터블은 1억6,700만원이다. 2인승으로 이 정도의 가격을 지불한다면 SUV나 풀사이즈 세단 정도를 한 대 더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아니면 잠깐 이 차를 즐기고 또 다른 차로 바꿔 타려는 젊은 마니아이거나.

V8 4.2ℓ 엔진의 연비는 7.8km/ℓ다.

과거에는 럭셔리 스포츠카의 위치가 워낙 독특한 자리였다. 비싸고 성능좋은, 그래서 달리는 맛이 압권인데 아무나 탈 수 없는 그런 차였다. 갈수록 럭셔리 스포츠카의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럭셔리 세단 중 이 보다 더 비싼 차들도 많이 나오고 있고, 성능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비슷해지고 있다. 다만 스포츠카에만 남아 있는 것들은 ‘불편함’이다. 시트 위치도, 시끄러운 엔진소리도, 좁은 공간도, 모두 불편하기만 한데 왜 고급 스포츠카를 사는가. 다른 차들은 따라 올 수 없는 이 차만의 독특한 맛도 맛이려니와 나는 이 차를 탄다는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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