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기에 더욱 아름다운 일탈

입력 2006년12월06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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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전경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지는가. 어제같은 오늘, 변함없는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권태롭다면 낯선 곳에서 아름다운 일탈을 즐겨보라.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그러나 그 곳 과천으로 가는 길은 멀다. 지리적 거리감이 아니라 마음속 거리감 때문이다. 생소함과 익숙지 않음. 때론 그 낯선 공기들을 심호흡해보라. 일상의 삶이 참으로 넉넉하고 아름다워진다.



그 곳은 지금 가을과 겨울의 풍경이 함께하고 있다. 차마 떠나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는 가을과, 먼 길을 걸어와 이제 행장을 풀어놓으려는 겨울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가슴팍을 파고드는 쌀쌀한 겨울바람을 너그럽게 껴안고 먼저 야외 조각전시장을 천천히 둘러보기를.



청계산과 관악산의 수려함을 병풍처럼 두르고, 약 1만평에 이르는 잔디광장에 펼쳐지는 야외조각장은 미술적 안목을 떠나 시야를 활짝 열어준다. 국내외 유명 조각가들의 조각작품 60여점이 전시된 이 곳은 작품이 위치한 지점과 배경뿐만 아니라,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1986년 덕수궁 석조전 시대를 마감하고 현재의 위치로 이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로 과천청사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전통과 현대 감각이 표현되도록 건축된 미술관 건물은 한국의 성곽과 봉화대의 전통양식을 투영시켰다. 미술관은 성곽식의 조각관과 반타원형의 회화관 그리고 이 두 부분을 연결하는 봉화대형 램프코어로 구성돼 있다. 램프코어는 모든 전시실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각 전시실을 잇는 연결통로 구실을 한다.



미술관 가는 길
램프코어 한가운데는 1988년 설치된 작가 백남준의 비디오탑 "다다익선"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우리나라의 개천절인 10월3일을 상징하는 숫자인 1,003대의 TV 수상기가 지름 7.5m의 원형에 18.5m의 높이로 설치돼 장관을 이룬다. 이 첨형 비디오탑은 중앙 현관을 들어설 때 만나는 첫 작품이며, 램프코어의 경사를 따라 오르내리며 감상하게 돼 있다.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의 빛과,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빚어내는 전자예술이 어우러진 램프코어는 단순히 전시실을 잇는 통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다운 전시공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품을 전시하는 상설 전시실에서는 국내의 현대미술을 미술사적인 흐름을 토대로 시기별, 경향별로 정리해 보여준다. 현재 진행중인 기획전시는 "니키 드 생팔"전과 "올해의 작가 정현"전. 2002년 타계한 국제적인 조각가 니키 드 생팔의 전반적인 작품세계를 회고하는 "니키 드 생팔"전에는 뚱뚱한 여체로 유명한 "나나" 연작, 퐁피두센터 광장의 "스트라빈스키 분수", 20여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토스카나 지방에 건립된 "타로공원" 등을 볼 수 있다.



아, 그런데 이 곳에도 마침내 겨울의 점령군이 들이닥쳤다. 느닷없이 침입한 눈발은 그 때까지 안간힘을 쓰며 버티던 가을을 마침내 무릎꿇게 했다. 미술관 뒤 1층 커피숍에서 만난 눈발은 승리의 깃발을 하얗게 나부꼈다.



‘날선 삿대질을 되로 주고 말로 받던 그날밤의 창가에

느닷없는 점령군처럼 함박눈이 내렸것다

가을이 서성이다
서로의 눈이 부딪치고 쨍그랑 겨누던 무기를 놓쳤던가

그랬던가 어둡던 창밖이 우연의 남발처럼 환해지는

저건 대체 누구의 과장된 헛기침이란 말인가

그러자 핸드폰을 귀에 댄 남자가 검은 허공을 향해 입을 벌리고

우산을 옆으로 든 여자가 흔들리는 네온싸인에 사뿐사뿐 제 얼굴을 비춰보고

오토바이를 세운 폭주족 크라운 베이커리 앞에 서서 환한 라이터를 지피고

달리던 자동차가 멈칫 쌓인 눈을 쓸어내리고는 천천히 미끄러져 가고

그렇게 무섭게 굴러가던 것들이 일제히 제 둥근 모서리를 쓰다듬고 있었더란 말인가

야외 뜰
누군가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목소리에 내려앉으며

누군가의 어깨가 누군가의 어깨에 쌓이며

생애 첫눈을 뜬 장님처럼 서로의 눈을 맞추고 말았더란 말인가

염치를 잊고 손을 내밀고 말았더란 말인가, 용서라는

보고 또 보고도 물리지 않는

아 저건 누구의 신파였고

누구의 한물간 낭만적 연출이었던가

그리하여 창밖에 펼쳐진 단막의 해피엔딩이 끝날 즈음

점령군처럼 들이닥친 눈발
뜨겁게 내리는 저 첫눈에게

그리고 또다시 속아넘어가버리고 말았더란 말인가‘



-정끝별의 시 <첫눈> 전문.



*가는 요령

지하철 4호선 서울대공원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가면 20분 간격으로 미술관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또 미술관까지 코끼리열차가 수시로 다닌다(유료).



백남준의 비디오탑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양재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국도 47번을 탄다. 또는 사당 4거리에서 남태령고개를 넘는다. 주말에는 미술관 진입로 교통이 혼잡하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낫다. 또 공공기관 승용차요일제 의무화에 따라 요일제 및 5부제를 실시한다.



*맛집

과천청사 지하철 1번 출구 과천전화국 앞에 있는 토정(02-502-1374)은 무공해 음식을 선보인다. 이 집의 자랑인 "토정 큰상차림"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산 산채를 참기름, 깨소금으로 양념한 후 취나물, 고사리, 제비쑥 등의 나물을 담백하고 깨끗하게 조리해 선보인다.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깨끗한 식당으로 선정됐다.



과천에서 인덕원 방면 500m전 군부대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관악산 끝자락에 보리촌(02-3679-5533)이 자리하고 있다. 황토로 지어진 2층 건물이 눈길을 잡는 이 곳은 보리밥이 주 메뉴. 옛날 춘궁기 보리고개시절을 연상시키는 보리밥의 특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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