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CR-V가 풀체인지를 거쳐 우리 앞에 다시 섰다. 소형 SUV로, 일본보다 미국에서 더 큰 인기를 얻는 모델. 소형 SUV는 일본에서 꽃을 피웠다. 미쓰비시 파제로 미니, 토요타 RAV-4 등 덩치가 작은 SUV들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CR-V는 북미시장을 겨냥해 만든 모델이다. 일본에서는 RAV-4에 판매가 밀린다.
소형 SUV를 논할 때마다 자꾸 아쉬워지는 건 기아 스포티지다. 일본보다 앞서 만든 소형 SUV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스포티지 말고 구형 스포티지 말이다. 90년대 초반에 소형 SUV라는 획기적인 컨셉트를 가진 차를 개발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다. 기아가 몰락하지 않았다면 스포티지는 아마 큰 빛을 발했을 것이다.
한 때 SUV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승용차를 타다가 차를 교체할 때가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SUV를 고려한다. 그러나 비쌌다. 배기량이 비슷한 승용차보다 SUV가 훨씬 비싸다보니 쉽게 살 수 있는 차가 아니었다. 소형 SUV의 등장은 소비자들의 이런 고민을 꿰뚫어본 결과다. 작지만 SUV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동급의 승용차와 비교해 별로 비싸지 않은 가격에 차를 만들었다. SUV가 꿈인 사람들이 소형 SUV로 인해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CR-V는 미국시장에서 소형 SUV의 대명사로 꼽힌다. 국내 수입차시장에서도 가장 많이 팔리는 SUV다. 완전히 새로워진 모습으로 나타난 CR-V를 시승했다.
▲디자인
돌고 돈다고 했다. 작은 걸 추구하다가 어느 순간 작은 게 흠으로 보이고 다시 적당히 커지는 차를 만든다. CR-V가 그렇다. 소형 SUV지만 덩치가 커졌다. 소형이라고 부르기가 조심스럽다.
커졌을 뿐만 아니라 훨씬 세련된 모습으로 변했다. 여기저기 허점이 많이 보이던 구형에 비해 훨씬 완벽해졌다. 뒤에 매달고 다니던 스페어타이어는 대부분의 SUV처럼 트렁크 바닥으로 들어갔다. 덕택에 전체 디자인이 훨씬 멋있어졌다. SUV로서는 강점일 수도 있는 터프한 맛이 좀 떨어졌으나 CR-V는 터프한 맛에 타는 차가 아니다. 앞모습에서 보이는 CR-V의 아이덴티티는 사라지지 않았다. 불독같다. 옆에서 이 차를 보면 투싼이나 싼타페처럼 보인다는 사람도 있다.
헬리콥터 조종간같았던 주차 브레이크 레버는 다른 차들처럼 풋 브레이크 자리에 얌전히 자리잡았다. 내비게이션은 없다. 가격을 내리는 만큼 없어도 되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싼 값이 큰 매력인 차에 내비게이션이 없는 건 큰 흠이 아니다. 인테리어는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정리됐다. 도어트림에 가죽을 덧대는 등 나름대로 신경을 썼지만 인테리어 소재를 조금 더 고급으로 썼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문을 열고 엉덩이를 들이밀면 바로 시트다. 드나들기 편한 구조다. 운전석 도어를 열면 앞펜더 안쪽이 보인다. 여기에 스티로폴을 덧댔다. 방음, 방진을 위한 세심한 조치로 보인다. 그 스티로폴을 제대로 고정했으면 좋겠다.
▲성능
CR-V는 착했다. 강력한 힘을 가진 고성능차를 기대한다면 이 차는 아니다. 170마력의 힘을 내는 2.4ℓ i-VTEC 엔진은 어코드에 올라가는 바로 그 엔진이다. 가속 페달을 꾹 밟아 속도를 올리며 차의 반응을 살폈다. 얌전했다. 억지로 힘쓰느라 요란해지지도 않았고, 넘치는 힘 자랑하느라 오버하지도 않았다. 강력한 힘이라기보다 1.6t의 무게를 끌고 나갈 만큼의 ‘저스트 파워’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힘이다. 그 만큼 효율적이라는 뜻도 된다.
이 차의 슬로건은 ‘스타일리시 어번 비클’이다. 힘이나 기능을 강조하는 다른 SUV들과는 달리 스타일과 도심 지향을 강조하고 있다. 서울깍쟁이라는 말이 있다. 도시(서울) 사람들이 손해 볼 일은 좀처럼 하지 않는 깍쟁이같다고 해서 시골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뒤집으면 그 만큼 알차다는 뜻이다. 같은 차원에서 CR-V를 일본깍쟁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4WD는 상시 4륜구동된다. 로모드는 없다. 네바퀴굴림에 의미가 있지 그 이상 다양한 4WD의 기능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의미다. 네바퀴굴림 덕택에 고속, 코너링에서의 주행안정성은 확실하다. 빗길, 눈길을 만났을 때 4륜구동차의 진가는 빛을 발한다. 눈 내리는 겨울, 장마가 낀 여름 모두 피할 이유가 없다.
속도를 높일수록 차의 탄력은 줄어든다. 시속 180km. 일반도로라면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 때론 차의 능력이, 때론 도로환경이 그 이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환경이 최적화된 상태를 가정한다면 그 보다 훨씬 높은 속도도 가능하겠지만 이 차는 스포츠카가 아니다.
CR-V는 G콘 보디가 적용됐다. ‘기술의 혼다’로 불릴 정도로 앞선 기술력을 자랑하는 혼다가 만든 보디 시스템이다. 차가 충돌했을 때 차체에 전해지는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게 만든 보디다.
▲경제성
풀체인지되면서 CR-V의 판매가격은 100만원 올랐다. 2WD가 3,090만원, 4WD는 3,490만원이다. 단순계산으로는 변화의 가격이 100만원인 셈이다. 그러나 차값을 만드는 공식이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 시장의 변화, 회사의 의지 등 다양한 변수를 녹여 팔릴만한 값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CR-V의 가격을 올리면서 혼다코리아는 2,990만원짜리 시빅을 내놨다. 혼다의 2,990만원짜리 마케팅은 계속되는 것이다.
연비는 4WD 모델이 10km/ℓ, 2WD 모델이 10.4km/ℓ로 배기량에 비해 좋은 편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