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의 환상 드라이브

입력 2006년12월13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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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를 탔다. 다른 차를 시승할 때와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시승을 자주 하는 기자라고는 해도 3억원이 넘는 값비싼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자주 있는 게 아니다.

벤틀리가 신차발표를 할 때만 해도 시승은 기대하지 않았다. 차 도어를 열려고만 해도 옆에 있던 안내자가 막아서며 대신 문을 열어주고, 내린 뒤에는 닦고 쓸며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기만 해도 이러니 차를 타보자고 하면 까무러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는 하면서도 좀 심하다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랬던 벤틀리가 선뜻 시승기회를 만들었다. 행여 마음이 변할까 서둘러 약속된 시승장소로 달려갔다.

컨티넨털 GT와 플라잉스퍼 2대를 한꺼번에 만났다. 황홀한 만남이었다.

▲디자인
벤틀리는 영국차다. 한 때 롤스로이스가 벤틀리를 소유해 두 차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폭스바겐그룹이 벤틀리의 주인이다. 한 눈에 알아볼 만큼 아이덴티티도 확실해졌다.

컨티넨털 GT는 쿠페다. 2개의 뒷좌석을 가진 4인승으로 유려한 스타일링이 자랑이다. 보닛에서 트렁크까지 이어지는 선이 부드럽다. 단순한 외관에 적절하게 멋을 부린 선들이 잘 어우러졌다. 쿠페지만 가볍지 않고 격조있는 모습이다. 하긴 아무리 가볍게 디자인했다고 해도 ‘벤틀리’ 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더해지면 가볍게 보일 리가 없겠다.

보다 젊은 취향의 디자인이지만, 여기서 젊음은 단순히 물리적인 게 아니다.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어도 젊음을 즐기고 소화해낼 수 있으며 멋을 안다면 컨티넨털 GT와 잘 어울릴 수 있다. 아니, 그래야 잘 어울린다. 스무 살의 젊음은 오히려 어색하다.

헤드 램프와 리어 램프, 그릴 등은 단순해서 눈길이 간다. 필요한 부분에만 적절히 멋을 낸 디자인이다. 쿠페인 GT에는 리어 스포일러가 있다. 시속 145km를 넘기면 자동으로 올라오고, 그 이하의 속도에서도 원한다면 스위치를 눌러 스포일러를 올릴 수 있다.

GT의 뒷좌석은 넉넉하지 않지만 앞좌석의 등받이 형상을 뒷좌석 탑승자가 편하게 앉을 수 있게 만들었다. 같은 공간이어도 좀 더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 셈이다.

4도어 세단인 플라잉스퍼는 격조있는 디자인이다. 쿠페보다 정형화됐고 고급 세단의 전형을 보여준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위압감이라기보다, 부드럽지만 품격 있는 모습이다. 쉽게 다가서기에는 멈칫거려지는 위엄은 살아있다.

밝은 색 가죽으로 만든 시트는 거기에 앉는 사람의 기분까지 밝게 만들어준다. 송풍구에 손잡이로 만들어 놓은 밸브는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호화스런 생활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벤틀리의 실내가 어색할 지도 모른다. 부자집 화려한 응접실에서 느끼는 어색함과 비슷한 불편함이다. 그런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라야 이 차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

▲성능
키박스는 포르쉐처럼 스티어링 휠 왼편에 마련됐다. 시동키를 돌리면 심장을 울리는 엔진소리가 터져 나온다. 낮고 굵은 엔진음은 마치 영혼의 울림처럼 들린다.

차체가 움직이는 순간 묵직함이 느껴진다. 가볍지 않은 움직임. 그러나 거짓말처럼 사뿐거리는 동작이 이어진다. 5,998cc 552마력 엔진이 2.4t에 달하는 무게를 경쾌하게 만들어준다. 무거운 차가 가볍게 움직이는 묘한 느낌이 온다. 시속 100km를 GT는 4.8초만에, 플라잉스퍼는 5.2초만에 도달할 만큼 빠르다. 그 처럼 빠르게 달리면서도 육중한 차의 무게는 사라지지 않는다. 헤비급 복서의 펀치같은 순발력이다.

W12 트윈터보 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 그리고 상시 4륜구동장치로 무장한 파워트레인에서 폭스바겐 산하로 들어온 이 차의 정체성은 드러난다. W12 엔진은 폭스바겐이 만들었고 아우디의 콰트로 기술이 적용됐다. 서스펜션은 4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역시 폭스바겐에서 가져왔다.

속도를 높이면서 함께 커지는 건 바람소리다. 최고급 럭셔리 세단이라면 좀 더 조용해야 할 것 같은데 벤틀리는 엔진소리며 바람소리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룸미러로 보이는 뒷시야는 좁다. 미러가 작아서다.

벤틀리 관계자를 옆에 태우고 도로에 올라섰다. 조수석에 차주인, 혹은 회사 관계자를 태우고 나서는 시승은 사실 편치 않다. 이 경우 대개 값비싼 차를 탈 때인데, "조심해라, 빨리 달리지 마라" 등등 잔소리를 계속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벤틀리 관계자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질문에 답할 뿐 잔소리는 아예 할 생각조차 않았다. 의외였다.

쭉 뻗은 직선로에서 작정하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옆에서 참견해도 못들은 척 끝까지 달릴 작정을 했다. 손 안에 착 감기는 변속레버는 수동모드지만 rpm 6,000을 고비로 변속이 숨가쁘게 이뤄졌다. 1단에서 시속 40km, 2단 100km, 3단 150km를 순식간에 넘겼다. 시속 200km를 달릴 때만 해도 차는 편안했다. 다른 차들은 이 쯤되면 가속 페달에 여유가 없거나, 있다 해도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그러나 벤틀리의 시속 200km는 시작에 불과했다. 270km/h에 도달했는데도 가속 페달에는 여유가 있었다. 저속에서 조금 무겁게 느껴졌던 차체는 도로에 가라앉으며 놀라운 안정감을 보여줬다. GT는 더 달릴 자세가 돼 있었으나 운전자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플라잉스퍼로 바꿔 타서는 좀 더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 사이 적응이 돼서였을까. 마음도 안정이 됐고, 차도 편안했다. 놀라운 건 그 같은 고속에서 오히려 차가 차분함을 보였다는 것이다. 차의 힘과, 무게 그리고 4륜구동장치가 완벽하게 어울리는 환상의 드라이브를 맛볼 수 있었다.

▲경제성
경제성이란 게 작은 차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지만 이 처럼 수억원을 호가하는 차에서는 그 중요성이 반감된다. 쉽게 범접하기 힘든 비싼 가격이 오히려 매력일수도 있는 역설이 작용하는 시장이다. 플라잉스퍼와 GT 두 차종 모두 2억9,500만원으로 동일하다. 유럽에서 측정한 연비는 5.6km/ℓ 수준.

시승중 앞유리에 살짝 금이 간 게 눈에 띄었다. 앞서 달리는 트럭에서 튄 돌에 맞아 생긴 상처다. 가슴이 짠했다. 수리비가 얼마일까. 알아맞춰 보시라.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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