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독일은 상당히 부러운 나라 중 하나다. 간혹 교통정체가 있고, 속도제한구간도 있으나 여전히 속도무제한 아우토반에서 마음껏 스피드를 즐길 수 있어 그렇고, 산업 측면에서 보면 자동차부품 기술이 매우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부품기업 보쉬를 비롯해 독일에는 첨단 부품산업으로 이름을 드높이는 수많은 기업이 존재하고 있다. 그에 비해 국내의 부품산업 기반은 허약하기 그지 없다. 자동차메이커에 종속돼 있어 제대로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하기도 어렵고, 애프터마켓용 제품을 개발해도 여러 관련 법규에 걸려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설령 애프터마켓에서 인정을 받는다 해도 이를 자동차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아 소비자 입장에선 섣불리 사용하기도 쉽지 않다.
사실 독일이 자동차 강국이 된 데에는 자유로운 튜닝시장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부품을 개발하고, 시장에 내놓는 데 전혀 걸림돌이 없다. 심지어 소비자들이 튜닝부품을 사용해도 메이커의 서비스를 받는 데 지장이 없다. 오히려 애프터마켓에서 활성화된 기술을 메이커가 활용, 양산차에 적용하기도 한다.
독일이 이 같은 부품 및 튜닝산업 활성화는 완성차회사의 기술개발 틈새를 막자는 데서 출발한다. 완성차회사에 제 아무리 박사급 인력이 모여 있어도 기술의 출발은 지식뿐 아니라 경험에서도 나오기 마련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어서다. 지식인재들이 새로운 기술원리를 개발하는 데 치중한다면 현장 실무자들은 경험을 통한 새로운 활용기술을 개발하도록 인프라를 지원하는 셈이다. 경험을 통한 기술개발은 인증업체를 통한 뒤 완성차회사에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국가가 구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와는 다르다. 제 아무리 애프터마켓에서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완성차회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독일처럼 검증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지만, 설령 있다 해도 완성차회사가 환영하기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국내 완성차회사는 현장 경험자의 기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서다. 실제 완성차회사의 한 연구원은 "연구원 수백 명이 모여도 개발하지 못한 기술을 현장 경험자가 완성할 수 있다는 건 연구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속내를 털어 놓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편견과 자존심을 고집한다면 한국은 언제까지나 기술의 종속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자동차의 기술수준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커먼레일이나 VGT 시스템 등은 여전히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만일 몇몇 핵심 부품업체, 특히 보쉬나 델파이 또는 덴소 등이 독일, 미국, 일본 자동차회사의 압력으로 현대·기아를 견제하기 위해 시스템 공급을 중단한다면 생산라인은 바로 정지할 수 밖에 없다. 현장 경험자들의 활용기술을 높이 평가, 언제나 문을 열어 놓는 선진 부품업체와 달리 현대·기아의 매출을 위해서만 현대모비스가 존재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독일 부품업체 관계자는 "튜닝 및 부품산업이 발전하려면 국가가 직접 현장 경험 기술자와 박사급 연구원을 동일하게 평가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며 "독일에선 아무리 뛰어난 이론가라도 수십년 경험이 축적된 기술자(마이스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시각은 완성차회사도 마찬가지"라며 "따라서 인증받은 제품을 사용하다 고장이 나도 완성차회사의 보증수리나 기타 서비스를 받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박사급 연구원 수백 명을 보유한 완성차회사지만 현장 경험자들의 기술개발력을 인정하고, 완성도가 높은 기술에 대해선 고개를 숙일 줄 아는 문화를 갖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완성차회사가 독일의 이런 문화를 조금이라도 닮기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권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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