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국내에서 독일 자동차 4개 업체를 꼽으라면 벤츠와 BMW, 아우디와 폭스바겐을 떠올린다. 독일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언제나 4사 뒤에 오펠을 붙인다. 이미 오래 전 GM이 오펠을 자회사로 편입시켰으나 독일 사람들에게 여전히 오펠은 독일 유전자를 지닌 독일의 자동차회사다.
국내에서 오펠은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펠은 유럽 외 시장의 진출에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다. GM과 시장이 중복되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유럽시장이 먼저라는 생각이 앞서 있어서였다. 물론 덕분에 오펠은 유럽 내에서 강력한 중·소형 브랜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실제 지난해 유럽 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차종이 바로 오펠 아스트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아스트라는 지난해 43만7,673대가 판매돼 2005년에 이어 2년 연속 최다 판매차종에 올랐다. 이는 폭스바겐 골프보다 2만대 많은 수치이며, 2005년 대비 28%나 늘었다는 르노 클리오의 43만1,595대를 넘어서는 실적이다. 그 만큼 아스트라는 유럽 사람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소형차로 꼽힌다.
오펠이 아스트라 3세대 신형을 내놓으며 자신감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탄탄한 제품력과 브랜드를 바탕으로 실용성향이 강한 유럽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경우 지금과 같은 판매 1위 고수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3세대 신형 아스트라를 출시하며 이전보다 다양한 엔진을 얹어 선택폭을 넓힌 점은 아스트라를 유럽의 대표 소형차로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스타일
오펠의 3세대 신형 아스트라는 지난해 12월 볼로냐모터쇼에 처음 등장한 뒤 지난 2월부터 유럽시장에 본격 판매되기 시작했다. 3세대 신형 아스트라는 4도어 세단과 3도어 및 5도어 해치백, 왜건 그리고 카브리올레 등이 있다. 물론 모든 차종의 외양과 실내 등은 비슷하지만 실제 시승이 이뤄졌던 3도어 해치백 GTC는 색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GTC의 앞모양은 매우 공격적이다. 다른 아스트라가 굵고 가느다란 라디에이터 그릴로 조화를 이룬 것과 달리 GTC는 크롬 도금의 굵은 라디에이터 그릴만이 있다. 나머지 부분은 그물무늬로 처리, 역동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범퍼 중간 부분의 에어덕트도 그물형을 채택해 일체감을 살렸다. 옆모양은 벨트라인을 높게 설정해 GTC의 스포티한 성격을 간접적으로 나타냈고, 뒷모양은 트렁크리드를 곡선으로 처리해 단아함을 연출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GTC의 특징은 파노라마 윈드실드다. 최근 파노라마 루프 글라스가 유행처럼 번지는 가운데 오펠은 GTC에 파노라마 윈드실드를 세계 최초로 적용해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파노라마 윈드실드는 앞유리가 운전자 머리 위까지 일체형으로 연결돼 있다. 실내 천장에 가리개가 있어 햇빛 차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성능
시승차종은 GTC 1.6 가솔린 터보로 최고출력은 180마력(5,500rpm), 최대토크는 24.0㎏·m(1,980~5,500rpm)이다. 변속기는 수동이며, 0→100km/h 가속시간은 8.3초다. 최고시속은 221km, 연비는 100㎞를 주행하는 데 7.7ℓ가 소모된다. 물론 위 숫자는 모두 제원표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실제 주행은 이 보다 더 빠르다는 느낌이다. 가속 페달의 답력은 묵직한 편이지만 반응이 즉각적으로 이뤄져 체감성능이 무척 경쾌하다. 이와 더불어 수동변속기는 부드럽지만 변속감만큼은 정확해서 인상에 오래 남는다.
직선도로에서 속도를 높이면 시속 160㎞까지는 무난히 가속된다. 그러나 GTC가 지닌 성능의 특징은 단거리 가속력에 있다. 정지 상태에서 출발한 뒤 고회전 영역에서 변속을 시도하면 속도계 바늘이 순식간에 치솟으며 단거리 스프린터같은 주행성을 자랑한다. 시승코스가 굴곡이 많은 산악도로여서 짧은 가속력을 요구하는 곳이 많았는데, 같은 아스트라 차종이라도 GTC만큼 운전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차종은 없었다는 게 함께 참가한 여러 시승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GTC 1.6 터보가 그렇다는 얘기다.
참고로 아스트라는 엔진 배기량 종류만 13가지다. 가솔린은 90마력의 1.4ℓ부터 240마력의 2.0ℓ 터보까지 7가지가 있으며, 디젤 또한 90마력의 1.3ℓ부터 150마력의 1.9ℓ까지 6가지가 구비돼 있다. 통상 국내에서 판매되는 소형차의 배기량이 3가지 정도임을 감안하면 엔진 선택폭이 너무 넓어 어떤 차를 골라야 할 지 고민이 될 정도다.
▲승차감
독일차답게 스티어링 휠은 다소 묵직한 편이지만 강력한 스포츠 세단의 특징인 송곳같은 핸들링 성능은 보이지 않는다. 제아무리 GTC가 역동성이 강조된 차종이라도 실용성이 중요한 소형차라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핸들링과 승차감의 반비례적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듯 승차감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물론 시승자의 취향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GTC는 튀는 것보다 무난함쪽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았나 싶다. 편안하면서도 약간의 고성능을 원하는 소비자라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다.
▲기타
국내에서 아스트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식 수입이 되지 않는 데다 소형차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GM대우자동차가 올 하반기에 들여올 2인승 로드스터 G2X를 개발한 업체가 바로 오펠이란 점이 알려지면서 최근 오펠을 언급하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다. 특히 오펠의 한국 진출 가능성을 나름대로 점치는 이도 있으나 오펠의 고위 관계자는 “오펠의 한국 진출은 부정적”이라고 잘라말한다. 국내에서의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품력만 놓고 본다면 경쟁력은 충분하다. 소형차지만 ESP와 코너링 시 제동력을 제어하는 CBC를 갖추고 있고, 유로 NCAP 충돌시험에서 최상의 안전도를 기록했을 만큼 충돌안전성도 좋다. 전면은 물론 사이드와 커튼 에어백까지 적용이 가능해 안전을 우선시하는 유럽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언젠가 한국에 들어온다면 브랜드보다 제품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팜스프링스=권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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