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고찰에도 대책없는 봄날이…

입력 2007년03월23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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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게 멍든 동백이 발 아래 뚝뚝 꽃송이를 떨구고, 목련이 연등을 켜듯 환히 불밝힌 불갑산 기슭. 그 곳에 자리한 오래된 절집 풍경도 이 맘 때면 덩달아 화사해진다. 전남 영광읍에 있는 백제 고찰 불갑사의 봄날 풍경은 임영조 시인의 시 <대책 없는 봄날>을 절로 떠오르게 한다.

불갑사의 봄


‘무엇이나 오래 들면 무겁겠지요/ 앞뜰의 목련이 애써 켜든 연등을/ 간밤엔 죄다 땅바닥에 던졌더군요/ 고작 사나흘 들고도 지루했던지/ 파업하듯 일제히 손을 털었더군요/ 막상 손 털고 나니 심심했던지/ 가늘고 긴 팔을 높이 뻗어서 저런!/ 하느님의 괴춤을 냅다 잡아챕니다/ 파랗게 질려 난처하신 하느님/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았지만/ 마을 온통 웃음소리 낭자합니다/ 들불 같은 소문까지 세상에 번져/ 바야흐로 낯 뜨거운 시절입니다/ 누구 짓일까. 거명해서 무엇하지만/ 맨 처음 발설한 건 매화년이고/ 진달래 복숭아꽃 살구꽃이 덩달아/ 희희낙락 나불댄 게 아니겠어요/ 싹수 노란 민들레가 망보는 뒤꼍/ 자꾸만 수상쩍어 가보니 이런/ 겁 없이 멋대로 발랑 까진 십대들/ 냉이 꽃다지 제비꽃 환하더군요/ 몰래 숨어 꼬나문 담뱃불처럼/ 참 발찍하고 앙증맞은 시절입니다/ 나로서는 대책 없는 봄날입니다’(임영조의 시 <대책없는 봄날> 전문)



‘하느님의 괴춤을 냅다 잡아채’는 대신 불갑사의 봄날은 ‘부처님의 괴춤을 냅다 잡아채’는 바람에 ‘파랗게 질려 난처하신 부처님’을 뵈옵는 듯해‘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아야 한다. 정말로 대책없는 봄날이 그 곳에 펼쳐진다.



대웅전
불갑사(佛甲寺)의 이름을 가만 뜯어보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삼국시대 백제 때 불교를 처음 전한 인도스님 마라난타존자가 백제 침류왕 1년(384)에 영광땅 법성포로 들어와 지은 첫 절이다. 그래서 절 이름도 갑, 을, 병, 정… 의 첫 ‘갑’자를 따 ‘제일 처음 지은 불법도량’이라는 뜻이다.



마라난타존자가 최초 상륙했다는 법성포의 옛 지명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阿無浦)에서 고려시대 부용포(芙蓉浦), 고려말 이후 법성포(法聲浦)가 됐다. 아무포는 나무아미타불의 음을 함축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지명으로 보인다.



보물(제830호)로 지정된 불갑사 대웅전은 남방불교의 요소를 풍긴다.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인도불교를 직수입한 탓에 대웅전 용마루 한가운데 세워진 작은 석탑(스투파)의 상륜부와, 보리수를 새긴 삼존불대가 그 것을 말해준다. 이는 남방불교에서 부처가 열반 후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하는 것이다. 또 다른 특이사항은 남향 건물인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이 동쪽을 향해 앉아 계신 점이다. 이는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국내서는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다.

보기 드문 동향 부처님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매우 화려하다. 특히 정면과 측면 모두 가운데 칸의 문살은 삼분합 소슬 빗살문으로 연꽃, 국화꽃, 보리수나무 무늬를 섬세하게 조각해 분위기가 매우 화사하다.



이 밖에도 경내에는 만세루, 명부전, 일광당, 팔상전, 칠성각, 향로전 그리고 요사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일광당은 정유재란 때 소실된 후 1620년에 중건된 건물로서 본래 선당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승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구부러진 목재들을 꾸밈없이 다듬어 세움으로써 자연미를 살려낸 훌륭한 건축물이다.



목련과 화사함 다투는 굴뚝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참식나무가 이 곳에서 유명하지만 그 보다 명물은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피는 꽃무릇. 꽃이 먼저 피었다 지고나면 그 자리에 잎이 나와, 평생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는 꽃이라 해서 일명 "상사화"라고 불리는데, 9월초순이면 절 주변을 온통 빨갛게 물들인다.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영광IC에서 나와 23번 국도에 올라 영광·목포 방향으로 달린다. 불갑면 소재지 불갑초등학교 앞에서 좌회전해 900m 남짓 가면 왼쪽으로 내산서원에 이르는 작은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2.5km 달리면 불갑사에 이른다.



일광당
*별미

‘영광굴비’의 본고장을 찾은 만큼 굴비맛을 놓친다면 어디 가서 “영광에 다녀왔노라”는 말은 하지 말 것이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진상품으로 유명한 이 참조기는 석수어(石首魚: 머릿속에 단단한 뼈가 있기 때문)라고도 한다. 산란을 위해 동지나 해역에서부터 추자도와 흑산도 해역을 거쳐 서해안으로 회유를 하는 참조기가 3월(음력)중순 곡우 사리경 칠산 앞바다를 지날 때 가장 알이 충실하고 황금빛 윤기가 돈다. 이 때 잡은 참조기를 잡아 건조한 걸 영광굴비라 하는데, 잡히는 시기에 따라 육질이 다르고 잡는 배에 따라 신선도가 다르며 가공하는 방법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고려 예종 때 이자겸이 영광으로 귀양 와서 굴비를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한 나머지 임금에게 진상하게 됐는데 아부를 위한 진상이 아니라 앞으로 절대 불의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굴비(屈非)"라고 이름 지었다는 설이다.



영광읍내 수협 뒤편에 있는 ‘국일관(061-352-2423)’이 굴비정식으로 유명하다. 법성포에는 ‘일번지식당(061-356-2268)’, ‘007식당(061-356-2216)’ 등이 있다.



꽃무릇이 피는 진입로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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