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번호판에 관한 넋두리

입력 2007년05월20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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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그룹 회장의 보복폭행이 화제다. 그룹 회장인 아버지가 아들을 때린 사람들을 직접 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것.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당사자와 관련자들이 검찰과 경찰을 오가며 연일 언론에 노출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 회장은 벤츠 S클래스 리무진을 타고 경찰에 출두했다. 그런데 정작 이슈가 된 건 보기 드문 벤츠 리무진이 아니라 그 자동차의 번호판이었다. 경찰서를 쏜살같이 빠져나가는 자동차는 1001번을 달고 있었다. 별이 달린 모자를 쓰고 지휘봉을 들고 아들의 보복폭행을 지휘했다는 의혹을 받는 회장의 자동차가 1001번이라는 건 이상하게 연결이 된다. 그 이유는 자동차 번호판이 권위를 상징하던 시절이 있어서였다.

한 때 그 지역 최고위직 공무원 관용차 번호가 1000번으로 배정됐었다. 가령 서울시장 관용차 번호판은 서울1 가 1000번이었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자동차 번호판은 특정 일련번호가 있었다. 육군본부, 안전기획부 등 국가 기관의 번호와 표식 방법 또한 달랐다.

지난 90년대초 의경 생활을 한 이상경 씨는 이와 관련해 의미있는 일화를 들려줬다. 교통경찰들이 가장 꺼리는 지역이 종로라는데, 그 이유가 엄청난 번호판을 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청와대를 비롯해 여러 기관이 이 지역에 집중돼 있어 상주하는 인사들뿐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까지 기본적으로 300개 이상의 번호판을 외워야 했던 것. 그는 “지금이야 그런 일이 없겠지만 혹시 몰라보고 딱지라도 끊는 날이면 바로 집합이었다. 그 분들이 어디 시시한데다 얘기하겠는가. 내무부장관실에서 직접 서장한테 연락온 경우도 있다”고 회상했다.

시대도, 인식도 바뀌어 권위의 상징이던 번호판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번호를 통해 소유자나 기관을 알리는 일도 많이 사라졌고, 누가 탔다고 편의를 봐주는 일이 점점 더 어렵게 되면서 더 이상 번호판이 권위의 상징이 아닌 듯 보인다. 그러나 국회의원 차량 번호판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4개의 숫자가 동일하거나 천 단위로 딱 떨어지는, 일명 골든번호가 5배나 많았다.

자동차등록사업소 관계자는 “자동차 번호는 접수 순서대로 공정하게 부여한다. 일반인 중에서도 좋은 번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는가”라며 색안경이라는 주장이지만 구체적 증거 앞에서 무기력해 보인다.

이제는 특정 번호가 서열을 나타내던 시대에서, 일명 골든 번호가 능력을 나타내는 시대로 변질되고 있다. 그러나 달리기만 하면 알아서 신호가 열리고, 경찰에 걸려도 큰소리 치던 권위를 자동차에 부여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번호판이라도 좀 남달라 보이려는 자기과시가 존재할 뿐이다.


김민규 객원기자 min138@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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