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X5의 풀체인지모델이 한국에 출시된 날은 공교롭게도 서울모터쇼 개막 하루 전이었다. 절묘하게도 또는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날짜였다. 2년에 한 차례 오는 모터쇼에 이목이 쏠릴 때 한 발짝 먼저 치고 나가는 순발력이 절묘했다. 반면 모터쇼 때 발표하면 될 걸 굳이 더 많은 비용을 써가면서 따로 행사를 하는 게 무모했다.
“X5는 특별하니까”라는 게 BMW의 택일 이유다. 특별한 내 자식이 다른 아이들하고 파묻혀 빛이 바래는 걸 눈뜨고 못보는 애틋한 부모의 마음이 읽힌다. 모두가 사용하는 SUV라는 말을 두고 스포츠 액티비티 비클이라는 ‘SAV’로 따로 차종을 구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내 새끼"같은 자동차를 어떻게든 돋보이게 해서 잘 팔아야 하는 마케터의 입장이라면 치맛바람 아니라 그 보다 더한 일을 해도 탓할 수 없다. 강한 치맛바람에 쌓여 한국에 상륙한 X5를 만났다.
X5는 풀체인지모델이다. "메이드 인 어메리카"여서 향후 FTA가 발효되면 미국산차로 대우받을 수도 있는 차종이다.
▲디자인
X5를 보면 군대에 있을 때 휴가복이 생각난다. 평소에 입는 후즐근한 복장이 아니라 깨긋이 빨아 칼같이 주름잡은 휴가복은 손이 베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휴가복을 갈아입고 광낸 군화를 신고 휴가를 갈 때의 기분이란.
X5가 그랬다. 보닛에, 사이드의 숄더라인에 칼같은 주름이 날카롭다. 잘 다려 놓은 주름처럼 선이 차체를 가르고, 이를 중심으로 굴곡진 면이 잘 배치된 디자인이다. 보닛과 옆면의 굴곡이 미묘한 착시현상을 일으키며 자세히 볼수록 안보이던 면들이 보인다. 볼수록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되는 것. 뒷모양은 간결하다. 글자라고는 X5만 보인다. 255/55R 18 사이즈의 타이어는 그대로도 좋지만 19인치나 20인치로 한두 단계 키우면 더 좋겠다.
스페어타이어는 없다. 런플랫 타이어를 달아서다. 이 타이어는 바람이 완전히 빠져도 타이어 스스로 차체를 지탱하며 움직일 수 있다. 안전할 뿐 아니라 편하다. 연비절감 효과는 세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런플랫 타이어의 무게가 얼마나 늘어나느냐에 따라 연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다.
X5는 차체 크기가 길이 4,854mm, 너비 1,933mm, 휠베이스 2,933mm로 구형에 비해 각각 187mm, 61mm, 113mm 커졌다. 공기저항계수는 0.33. 휠베이스가 길어져 실내공간도 넓어졌다. 트렁크공간도 15% 커져 최대 1,750ℓ까지 짐을 실을 수 있다.
BMW가 만드는 X5의 인테리어는 흠잡을 데가 있어선 안된다. 프리미엄 SUV인만큼 절반가격 전후의 SUV들과는 달라야 한다. 깔끔한 마무리가 "역시 BMW"라는 말을 하게 만들지만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 전동시트를 누일 때 버튼을 그냥 막 누르면 시트가 안움직일 때가 있다. 버튼을 살짝 올려서 누른다는 기분으로 조작해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센터콘솔 덮개를 열 때도 비슷하다. 편하게 버튼을 눌러 열려고 하면 잘 안된다. 덮개를 뒤로 밀듯이 하고 버튼을 눌러야 한다. 관절이 뻑뻑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편하게, 쉽게, 부드럽게 만들 필요가 있다.
실내공간은 넉넉하다. 게다가 뒷좌석 바닥도 평평해 훨씬 편하다. 트렁크공간에는 고무밴드, 가방고리 등 편리하게 수납할 수 있는 장치들을 배치했다. 별것 아니지만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눈을 들어 지붕을 보면 시원한 선루프가 반긴다. 지붕의 좌우 폭을 거의 다 사용한 선루프는 그 만큼 넓은 하늘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성능
운전석에 앉으면 가장 먼저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눈에 띈다. 가만히 앞을 보고 있으면 앞창에 자연스럽게 보이는 속도계. 양산차에 적용되기 전에는 대단한 기술로 평가받았으나 양산차에 달린 모습은 단촐하다. 차창에 글자를 투영시키는 기술이 놀랄만한 신기술이라기보다는 상상력을 구현한 참신한 아이디어 정도로 보인다. 어쨌든 앞을 보는 채로 계기판을 읽는 효과가 있으니 편하다. 모든 게 보인다고 좌우로 눈을 돌려 시야를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된다.
스티어링 휠은 무거운 편이다. 운전을 하는 데 지장을 주지는 않지만 가벼운 스티어링 휠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낯선 느낌이다.
변속기 레버는 디자이너의 상상력이 잘 발휘된 모양이다. 손에 쏙 들어와 작동하기 쉽고 편햇다. P나 R의 경우 버튼을 누르고 레버를 움직여 변속을 하는데 느낌이 좋다. 변속 시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BMW의 자랑인 i드라이브는 간편해졌다. 메뉴를 띄워 필요한 기능을 바로 찾을 수 있게 단순해져 사용하기가 수월하다.
직렬 6기통 디젤엔진은 세로로 놓였다. 여덟 팔자(八)자 앞에 한 일(一)자 형으로 스트럿 바가 자리잡았다. 차의 뒤틀림 강성을 높이는 장치다. 고속과 코너, 오프로드에서 차의 자세를 좀더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X5의 강성은 구형보다 15% 높아졌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엔진은 BMW의 3세대 커먼레일 기술이 적용된 3.0ℓ의 신형 디젤엔진이다. 최고출력 235마력으로 0→100km/h 도달시간 8.3초다. 최고속도는 210km/h. 디젤엔진이지만 가솔린엔진에 밀리지 않는 고성능을 확보했다. 디젤엔진답지 않다는 구구절절한 수식이 이제는 의미가 없다. 디젤이나 가솔린이나 큰 차이 없는 성능을 보일 만큼 디젤엔진의 성능 개선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2t이 넘는 거구가 묵직한 무게감을 주며 탄력을 붙여 나간다. 보어×스트로크가 90.0×84.0mm인 숏 스트로크 엔진이다. 디젤엔진으로는 드물게 스프린터 타입이다. 치고 달리는 성능을 뒷받침해주는 부분이다.
빠른 속도로 달려도 운전자가 느끼는 불안감은 크지 않다. 차체의 강성이 엔진의 성능을 충분히 커버하고 있고, 여기에 더해 네바퀴굴림 방식이 주는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덕이다. 특히 코너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은 차에 대한 운전자의 신뢰감을 키워준다. 높은 속도로 급한 코너링에서 차가 순간적으로 흔들릴 때는 있지만 금방 균형을 되찾는 모습을 보였다.
급하게 제동하면 안전띠가 몸을 확실히 조여준다. 안전띠가 몸을 조이면서 시트에 밀착시킨다. 불편할 정도로 몸을 조이지만 그 만큼 안전하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오프로드에서도 안정되고 힘있게 움직였다. 미끄럽고, 좌우바퀴 간 회전차이가 생길 수 있는 길에서도 무리없이 움직였다. 그러나 이 차를 오프로드용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렇게 멋있고, 샤프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비싼 차를 타고 험로에 들어설 사람이 있을까. 하체가 부딪치고, 옆구리가 찢어지고, 타이어가 펑크날 수도 있는 험한 오프로드에는 조금 다치고, 깨지고, 고장나도 부담없는 차가 제격이다.
▲경제성
X5 3.0d의 판매가격은 8,890만원이다. 가솔린엔진을 얹었던 구형 X5 3.0i 가격이 9,230만원이었다. 신형이 구형보다 싸고, 디젤엔진차지만 가솔린엔진차보다 싼 가격을 책정한 점이 주목할만하다. 메이커의 의지에 따라 가격은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음을 X5는 보여주고 있다.
연비는 10.5km/ℓ 수준. 엔진 배기량, 차의 무게 등을 고려하면 매력적인 연비다. 디젤 가격이 오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솔린보다 싸고, 연비도 디젤엔진이 동급 가솔린엔진에 비해 훨씬 우수하다는 게 정설이다. 경제적이라는 말이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