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남녀 간의 차이는 심심풀이 농담에서 논리적인 분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돼 왔다. 운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운전은 지난 19세기말 자동차가 대중화된 이후 1세기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운전에 관한 한 남성들은 생물학적 기득권을 가졌다고 판단하고, 그 권리를 여성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했다.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남자들도 운전에서만큼은 남성이 운전을 잘하고, 여성은 운전을 못하므로 여성의 운전을 못마땅해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남성들의 일반적 생각과는 다른 연구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여성들이 호르몬 등 생물학적 특성 덕분에 남성보다 오히려 운전을 잘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5월초 호주의 보험사 AAMI는 운전자 2,38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남성은 운전중 정면충돌이나 전복, 사람이나 자전거 추돌 등의 사고를 여성보다 많이 일으키고, 사고규모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성은 주차하다 정지된 물체를 들이받는 가벼운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남성보다 높았다. 여성이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운전을 잘하고, 남성은 여성보다 운전중 한 부분에 불과한 주차에 능숙하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여성들은 자기인식과 사회적 책임감이 훨씬 강한 반면 남성들은 생물학적으로 더 공격적이고 참을성이 부족하며 자신의 경계를 넘으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AAMI는 분석했다. AAMI는 여성은 일할 때 세심하게 처리하므로 좋은 운전자가 될 수 있다는 종합결론을 내놨다.
2005년 11월 영국에서도 호르몬으로 남녀의 운전성향을 분석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는데, 호주의 AAMI가 조사한 내용과 비슷했다. 영국 브래드포트대학의 한 연구진은 18~35세 남녀 각 43명에게 신경정신과 환자용 테스트를 실시해 공간인지, 주의력, 자동차 통제기술 등을 평가했다. 분석결과 여성 호르몬은 주의력과 교통법규 학습 등의 임무를 맡은 뇌의 전두엽 활동을 강화시켜 여성이 남성보다 안전운전에 유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연구진은 이에 앞서 여성의 경우 남성 호르몬의 일종인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해 공간인지나 주차 등에서는 남성보다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남녀 운전자의 차이를 분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년 전 소비자 리서치기관인 에프인사이드(현 마케팅인사이트)와 오토타임즈가 운전자 6,000여명을 대상으로 남녀 간의 운전차이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남성의 84%가 교통법규를 위반한 적이 있는 반면 여성은 57%만 위반했다. 또 남성은 여성보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경우가 2배 정도 많았다. 호주와 영국에서 나온 남녀 차이에 대한 결과처럼 남성들이 난폭운전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운전을 잘한다는 연구결과에는 남성 입장에서 여성의 안전운전은‘소심운전’이라고 폄훼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 천천히 그리고 교통법규를‘시도 때도 없이’지키는 건 안전운전일 수는 있으나 운전을 잘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여성 입장에서는 생명과 직결되는 운전을 남성들이 마치 원시시대에 사냥할 때처럼 전투적으로 하고, 더 나아가 이를 미화한다고 여길 수 있다.
이 같은 생각의 차이는 서로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번질 수 있다. 에프인사이드 설문조사에서도 남성과 여성 운전자들이 상대방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은 여성 운전자들이 잘못하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거나, 너무 조심하다 교통상황이나 다른 운전자를 배려하는 게 부족하다며 여성 운전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와 달리 여성은 남성 운전자들이 사소한 실수에도 욕하고, 여성 운전자만 보면 일부러 난폭운전을 한다며 남성의 편협함과 공격성을 지적했다.
남녀가 서로에 대해 지닌 피해의식에 상관없이 여성과 남성의 운전차이를 호르몬 등에 따라 달라지는 생물학적 특성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는‘재미있기’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같아지고 있는 만큼 더 이상 남성이 유리하지 않고, 남녀 모두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운전에는 개개인의 운전능력, 지역, 날씨, 도로상태 등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므로 한정된 조건에서 실시된 연구와 리서치 결과만으로는 남녀 간의 운전성향 차이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그래도 이 같은 연구결과는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준다. 남녀 모두 서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거나 왜곡하면 차이는 차별이 되고, 차별은 반발을 불러 온다. 거창한 얘기같지만 인종말살, 지역감정 등도 차이를 인정하지 않아 생겼다는 걸 역사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 차이는 차별이나 피해의식이 아니라 배려로 거듭날 수 있다. 운전할 때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차별은 상대방은 물론 자신까지 죽일 수 있으나 순간의 배려는 상대방은 물론 자신까지 살릴 수 있다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잠시 잊고 있을 뿐.
최기성 기자
gistar@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