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를 시원스레 달려가면 서울 북쪽의 대표적인 명소인 반구정(伴鷗亭)에 이른다. 아주 쉽게, 기분좋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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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구정 |
반구정은 조선 초기의 이름난 재상인 황희 정승(1363~1452)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임진강의 물줄기와 흰 갈매기를 벗삼아 거닐었던 정자다. 야트막한 언덕 소나무숲에 자리잡은 정자에 오르면 임진강 물줄기가 유장하게 흐른다.
북쪽에 고향을 둔 실향민의 긴 한숨이 풀어진 때문일까. 반구정을 휘감고 흐르는 임진강의 물줄기는 유난히 탁하고 흐리다.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해 연천에서 한탄강과 어우러져 내려오다 파주를 가로질러 한강 하류로, 다시 서해로 흘러드는 임진강. 반구정에 올라 임진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옛날 노구를 이끌고 이 곳에 서서 갈매기를 노닐었던 황희 정승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흐린 강줄기를 바라보며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남북으로 갈라진 오늘의 우리 현실과 달리 그는 조선의 백성을 걱정하며 사직의 앞날을 염려했으리라.
조선왕조 500여년에 걸쳐 가장 어질고 슬기로운 재상으로 손꼽히는 황희 정승은 고려말 개성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으나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에 은거했다. 역성혁명으로 개국된 나라에서 관리를 지낼 수 없다는 지조를 가졌던 70여명의 고려조 신하들과 함께였다. 은둔한 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걸 외면할 수 없었던 황희는 벼슬길에 올라 조선의 정사에 합류하게 되고, 여러 차례 좌천되고 복권되기를 되풀이했으나 태종과 세종시대에 걸쳐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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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구정 전경 |
황희의 인품됨은 유명한 두 가지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젊은 시절 황희 정승이 시골길을 가는데 두 마리 소를 데리고 밭을 갈고 있는 농부를 만났다. 황희는 별 생각 없이 농부에게 물었다. “저 두 마리 소 가운데 어떤 소가 일을 더 잘하는지요?” 그러자 농부는 황희의 귀에 입을 대고 낮은 목소리로 “예, 저 누렁소가 일을 더 잘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농부의 조심스런 말투에 황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왜 그러시는지요?” 그러자 농부는 역시 귀엣말로 “아무리 짐승이라도 제 잘못을 이야기하는데 좋아할 리 있습니까? 굳이 잘못을 탓하여 불쾌하게 할 것이야 없지요”라고 말했다. 이에 황희는 크게 깨달음을 얻고 평생 언행을 조심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두 계집종이 말다툼을 하다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 황희를 찾아왔다. 계집종 하나가 자기의 입장을 말하자 이야기를 다 들은 후 황희는 “네 말이 옳구나”라고 했다. 이에 상대방 계집종이 흥분하여 이러쿵저러쿵 자기가 옳음을 늘어놨다. 그 말을 다 들은 황희는 역시 “네 말도 옳다”라고 했다. 그렇게 서로의 입장을 편견없이 봤고, 사사로운 일에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온화한 성품의 인물이었다.
말년에 좌의정 자리를 내놓고 이 곳으로 내려와 갈매기와 벗하며 노닐 무렵 그가 지은 시 한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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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희선생 영당지 |
대초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듯드르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내리는고
술 익자 체장사 지나가니 아니먹고 어이리.
황희는 조정에서 물러난 지 3년 뒤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그의 나이 90이었으니 천수를 누리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한 일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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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희정승 상 |
반구정은 황희가 죽은 후 조상을 추모하는 전국의 선비들이 유적지로 보호해 오다가 6·25 때 모두 불탔다. 그 뒤 이 근처의 후손들이 부분적으로 복구해 오다가 1967년 크게 고쳐 지었다.
반구정과 나란히 자리한 8각 정자는 ‘앙지대’다. 정자에서 내려오면 넓은 마당 오른쪽에 황희 정승 동상이 있고, 그 안쪽에 방촌영당과 영모재가 있다. 방촌영당은 황희 정승의 영정을 봉안했던 곳이고, 영모재는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모두 1967년 후손들이 개축한 건물이다. 이 곳에서 조금 떨어진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에는 황희 정승의 묘가 있다. 부인 청주 양 씨와 합장한 묘로, 문인석과 상석, 묘비가 세워져 있다.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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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당내 경모재 |
문산 4거리에서 적성 - 화석정 가는 길에 있는 임진나루터는 장어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옛날에는 임진강에서 직접 잡은 장어로 요리했으나 요즘은 대부분 양식 장어를 쓴다고 한다. 나루터집(031-952-2723)은 허름한 외관과 달리 대를 이어 손맛을 자랑하는 소문난 맛집. 주말이면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할 만큼 손님들이 많다. 한 번쯤 먹어볼 만하지만 그 가격에 그 서비스를 받으려고 다시 찾아가지는 않을 듯. 반구정 바로 옆에 자리한 반구정나루터집(031-952-3472)도 성업을 이루고 있으나 음식은 모두 비슷비슷한 수준.
*가는 요령
자유로 문산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지선도로로 진입하면 교각 밑을 지나 바로 반구정 주차장에 닿는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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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자에서 내려다본 임진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