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뉴스) 송병승 특파원 = 동독과 영욕을 함께 한 "국민 자동차" 트라반트 생산 50주년을 맞이해 기념행사가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트라반트가 처음 생산된 츠비카우에서는 지난 주말 트라반트 50주년 기념행사가 시작됐다. 츠비카우에는 독일 뿐 아니라 폴란드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에서 약 2천대의 트라반트가 몰려들었다. 거의 30년 이상 된 트라반트를 몰고 나타난 트라반트 애호가들은 각양 각색으로 꾸민 트라반트를 선보였으며 아직도 도로 위를 쌩쌩 달릴 수 있는 트라반트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츠비카우에서는 트라반트 전시회 뿐 아니라 기념 퍼레이드 등이 열릴 예정이다.
"트라비"라는 애칭으로 더 익숙한 이 자동차는 동서독 통일 이전까지만 해도 동독 공산체제의 경제와 이념의 상징물로 동독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동서독 분단 이전부터 자동차 생산의 메카로 알려진 작센주 츠비카우의 작센링자동차는 1957년부터 통일 이후인 1991년까지 약 330만대의 트라비를 생산했다. 독일 통일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 독일 도로에서 트라비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지만 아직 애호가들의 귀중한 소장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독일 차량관리소에는 아직까지 5만2천여대의 트라비가 등록돼 있다. 또한 82개의 트라비 애호가 클럽들이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매년 트라비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트라비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트라비 생산 50주년을 맞아 트라비 애호가들은 이 차가 처음 생산된 츠비카우에서 트라비 전시회뿐 아니라 트라비 퍼레이드 등 성대한 축하 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동독 초창기 경제는 매우 부진한 상태를 보여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철판을 서방에서 수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작센링은 플라스틱 차체의 트라반트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트라반트는 플라스틱 차체를 채택함으로써 가격을 내릴 수 있었고 무게가 가볍고 2기통, 2행정기관을 사용해 연료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생산 라인도 일부 자동화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연간 10만대를 생산할 수 있었다. 서방 세계에서는 자동차가 일부 부유층의 사치품이었을 때 트라반트는 동독 국민들에게 마이카 시대를 목전에 둔 공산주의 지상낙원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트라반트는 1973년 100만대 생산을 고비로 계획경제의 경직성으로 생산시설 확충과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시기를 놓침으로써 엄청난 공급부족에 직면하게 된다. 공급과 수요로 가격이 형성되는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하고 책정된 트라반트의 가격은 4천마르크였으나 새차를 갖기 위해서는 주문에서 출고까지 12년 이상 걸리자 4-5년된 중고차의 가격이 1만마르크 이상 거래되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때 동독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상징하던 트라반트는 동독 경제체제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지난 1989년 동독인들이 헝가리 국경을 넘어 서방으로 대거 탈출하면서 헝가리 국경지대에 버리고간 트라반트는 국민에게 버림 받은 동독 공산당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통일 후 독일 정부는 안전도에 문제가 있고 유해가스 배출량이 많은 트라반트에 대해 생산 중지 명령을 내렸다. 동독 정권과 함께 탄생하고 성장했던 트라반트는 동독의 소멸과 함께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진 것이다.
songbs@yna.co.kr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