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는 다르다. 생김새부터 그렇다. 포르쉐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포르쉐를 모르는 사람도 ‘뭔가 다른 차’로 인식한다. 구조도 마찬가지다. 보닛을 열면 트렁크가 나오고, 트렁크를 열면 그 안에 엔진이 들어가 있다. 흔치 않은 리어엔진의 전형을 포르쉐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또 하나. 엔진도 다르다. 수평대향 엔진은 피스톤이 누워 있는 형태다. 마치 권투선수가 주먹질하는 것처럼 피스톤이 움직인다고 해서 박서엔진이라고도 부른다. 포르쉐 말고는 일본의 스바루 정도만이 이 엔진을 쓰고 있을 만큼 흔치 않다.
포르쉐가 다른 점은 또 있다. 부자다. 과거 비싼 차를 파는 메이커는 가난해서 늘 경영압박에 시달리고 임자가 바뀌는 일이 다반사다. 고객은 부자지만 제작자는 가난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애스턴마틴, 부가티, 롤스로이스, 벤틀리 등등 내로라하는 슈퍼카 혹은 최고급 력셔리카 메이커들이 그렇다. 비싸서 많이 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르쉐는 아니다. 비싼 차를 많이 팔아 여유가 있다. 유럽 최대의 대중차메이커 폭스바겐 인수를 검토할 정도다.
그런 포르쉐가 911 터보 카브리올레를 올 가을 발표한다. 공식 출시에 앞서 기자들을 독일로 불러 차를 탈 기회를 만들었다. 6월의 화창한 독일 하늘 아래 쭉 뻗은 아우토반에서 새 차를 시승했다.
▲디자인
911 터보 카브리올레는 911 쿠페에서 가지친 모델이다. 쿠페와 카브리올레는 지붕만 다를 뿐 다른 부분에서는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 지붕을 닫고 보면 선의 흐름이 쿠페처럼 날렵하면서도 거침없다. 보기만 해도 즐거울 만큼 디자인은 남다르고 다이내믹하며 볼륨감이 넘친다. 헤드 램프를 감싸는 곡면은 부드럽게 측면으로 이어지다가 리어 휠에 이르러 에어 인테이크와 볼륨감있는 휠하우스로 단단한 이미지를 만든다.
뒤로 가면서 떡 벌어진 모습이다. 타이어도 앞보다 뒤가 큰 사이즈다. 앞이 235/35ZR 19, 뒤가 302/30ZR 19 타이어를 장착했다. 30시리즈의 19인치 타이어는 보기만 해도 믿음직하고 안정적이다. 폭발적인 파워를 암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차의 뒷부분은 디자인적으로도 중요하다. 엔진을 품고 있는 뒤쪽에는 스포일러까지 있다.
911 터보 카브리올레는 상대적으로 뒷부분의 비중이 높다. 성능면에서도 엔진이 뒤에 있어 당연히 그렇고, 디자인면에서도 앞보다 뒤에 더 많이 신경썼음을 알 수 있다. 엉덩이가 매력적이다. 물론 앞뒤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키홀더는 역시 운전석 왼편에 만들었고, 뒷좌석은 존재하나 사람이 앉을 수는 없다. 간단한 짐을 싣거나 애완견을 태우는 공간으로 보면 된다. 이른바 2+2 시트다.
지붕을 벗기고 달릴 수 있는 스포츠카인만큼 컬러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빨강, 노랑 등 원색을 쓴 차들이 눈길을 끌지만 은은하게 묻히는 듯 하면서도 튀는 초콜릿색 등 짙은 색도 나름대로 어울렸다.
▲성능
시승은 프랑크푸르트 일대에서 이틀간 진행됐다. 잠깐 비가 내렸고 환한 햇살이 쏟아지는 날씨라 컨버터블 시승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아우토반의 질주는 언제 경험해도 환상적이다. 그런 아우토반에 포르쉐를 타고 오른다는 건 행운이다. 속도무제한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어서다. 아우토반을 달린다는 건 허가받은 일탈이다. 속도제한없이 달릴 수 있다는 건 색다른 경험이다. 카메라 감시에 익숙해 속도 높이기를 주저하는 운전자가 아우토반을 주행하는 건 마치 아내에게 허락받고 멋진 아가씨와 데이트를 즐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것도 포르쉐를 타고 달리는 건, 데이트 상대가 TV에 나오는 주연급 여배우인 셈이다.
심장을 자극하는 엔진소리를 날리며 A63, A66 고속도로를 마음껏 달렸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차선을 이리저리 바꿀 필요는 없다. 빠른 차가 가까이 다가서면 앞차가 알아서 비켜준다. 당장 비켜주지 않아도 잠시 기다리면 어김없이 가로막은 차가 옆으로 물러선다. 아우도반의 문화이자 운전매너다. 차와 길, 운전매너가 모두 최상급이다.
수동 6단 변속기와 5단 팁트로닉 변속기를 두루 경험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시속 200km를 쉽게 넘긴다. 그 속도를 넘기고도 힘은 넘친다.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수동변속기가 4초, 팁트로닉은 3.8초에 불과하다. 시속 200km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2.8초. 최고속도는 시속 310km에 이른다.
수동 4단에서 시속 200km를 경험할 수 있었다. 5단에서는 5,000rpm에서 시속 250km에 이른다. 이 속도에서도 여전히 힘은 남고 탄력은 살아 있다. 차도, 사람도 더 달릴 수 있다. 6단으로 기어를 올려 시속 280km까지 내달릴 수 있었다. 지붕을 벗긴 상태에서였다.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듯 정신없이 달렸다. 그럼에도 고속에서 느껴지는 불안함은 없다. 바람소리에 머리가 멍할 정도이긴 했으나 차의 거동이 안정적이라 심적인 불안은 훨씬 덜했다. 시속 280km의 속도라고는 하지만 이를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체감속도로 따진다면 시속 200km 정도에 불과했다.
불안함이 크면 힘에 여유가 있어도 속도를 높이기 힘들다. 하체는 시속 300km를 향해 고개를 처들고 속도를 높이는 차체를 잘 받쳐줬다. 잔진동은 완벽히 걸렀고, 타이어는 노면을 잘 물고 달렸다.
리어 엔진이지만 4륜구동이어서 안정성은 좋았다. 고속에서도 코너가 두렵지 않을 정도다. 제동력은 확실했다. 시속 200km를 넘는 속도에서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기가 무척 조심스럽다. 시승차는 제동이 확실히 걸리면서도 차의 흔들림은 없었다. 포르쉐 트렉션 매니지먼트 시스템(PTM)과 포르쉐 주행안전장치(PSM), 자동 브레이크 디퍼렌션(ABD) 등이 종합적으로 차의 자세와 제동력을 제어해 신뢰성을 높인다. 전자장치의 세례를 듬뿍 받은 셈이다. 살짝 밀리고, 헛바퀴 돌고,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기계적인 맛은 떨어지지만 종합적인 완성도는 크게 높아졌다.
시승차의 안정성은 전자장치와 구조적, 기계적 특성에서 볼 때 필연적이다. 실시간 정보를 바탕으로 브레이크와 엔진 등을 통합제어하는 전자장치들은 운전자가 세심하지 않아도 차의 자세를 잘 잡아준다. 4륜구동 시스템은 특히 코너에서의 한계속도를 크게 높여 주고, 수평대향 엔진은 마치 책을 펼쳐 놓은 듯 작은 크기여서 좁은 엔진룸에 낮게 배치할 수 있어 무게중심을 낮추는 데도 한 몫한다.
리어 스포일러도 효과적이다. 시속 120km를 넘기면 스포일러가 올라와 차체를 밑으로 내려 누르는 힘을 얻게 해준다. 스포일러는 시속 60km가 되면 다시 내려간다. 윈드 디플렉터는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효과가 확실했다. 디플렉터를 제거하고 고속주행을 계속하자 뒷좌석에 벗어놨던 점퍼가 시트에서 10cm 정도 높이로 떠서 앞좌석으로 흘러왔다. 디플렉터를 달면 이 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 뿐더러 머리가 날리는 정도도 훨씬 덜했다.
3,600cc의 엔진이 480마력이라는 힘을 낼 수 있는 건 2개의 터보장치가 있어서다. 차의 무게는 수동변속기차가 1,655kg, 팁트로닉차가 1,690kg에 불과해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엔진에는 가변밸브 타이밍 시스템인 배리오캠이 적용됐다. 이 역시 엔진효율을 높여준다.
소프트톱을 여는 데는 20초면 된다.
아우토반을 벗어난 뒤 독일 농촌의 그림같은 풍경과 함께 달렸다. 보리와 밀이 바다처럼 펼쳐지고, 간간이 나타나는 마을은 아무렇게나 찍어도 작품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컨버터블은 그런 풍경을 즐기며 달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쨍한 하늘에 먼지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는 컨버터블과 환상궁합이었다.
▲경제성
유럽에서의 판매가격은 12만6,600유로. 국내 시판가격은 미정이다. 911 터보 쿠페의 판매가격은 2억원을 넘긴다. 컨버터블은 이 보더 더 비쌀 전망이다. 포르쉐 911은 가격에 크게 민감한 시장이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비싸서 더 잘 팔릴 수도 있는 묘한 특성이 있다. 제일 비싼 것, 가장 고급품을 찾는 이들에게 좋은 상품이 될 수도 있겠다. 연비는 수동이 7.8km/ℓ, 팁트로닉이 7.3km/ℓ다.
9월 세계시장 데뷔 이후 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본다.
프랑크푸르트=오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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