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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석정 |
서울 북쪽에 있는 명승지들 중에는 조선조의 명재상 황희 정승과 율곡 선생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많다.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花石亭)은, 마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율곡 이이(1536∼1584)의 자취가 서린 곳이다. 하지만 주변 자운서원이나 반구정에 비해 화석정은 찾는 이가 드물다. 규모에 있어서도 잘 단장된 앞서 두 곳에 비해 화석정은 달랑 정자 한 채가 다 일만큼 초라하다. 산등성이 좁은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 일부러 화석정을 찾아간 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종종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실망감은 잠깐 미루어 둘 일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화석정에 오르면 구르듯 내달려와 왈칵 안겨드는 시원한 강바람이 거기에 있고, 낯선 이에게도 두툼한 그늘을 아낌없이 내놓는 늙은 느티나무의 넓은 가슴이 그곳에 있다. 임진강 물줄기를 발아래로 굽어보며 하늘과 바람과 고목을 벗한 화석정의 소박한 모습은 떠들썩한 볼거리는 아니지만 사색의 공간으로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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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이 8세때 지은 시 |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외가가 있는 강릉에서 태어난 율곡은 약관 12세에 진사시에 합격한 것을 필두로 29세에 응시한 문과 전시에 이르기까지 아홉 차례의 장원을 휩쓸어 당대의 천재로 칭송을 받으며 벼슬길에 나갔다. 이황과 더불어 조선시대 양대 산맥을 이루는 유학자로 정치가로 활약했던 율곡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에 이미 왜가 쳐들어올 것을 예견하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지만 오히려 당쟁에 휘말려 관직을 벗어던지고 낙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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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피는 자리 |
낙향 후 시문(詩文)으로 소일했던 율곡은 이곳 화석정에 자주 올랐는데, 그럴 때마다 하인에게 항상 기름걸레로 마루 바닥을 닦도록 시켰다. 하인은 도대체 그 영문을 몰랐으나 율곡은 “이 정자가 훗날 요긴하게 쓰일 것이니 내가 죽고 없더라도 마루바닥에 기름칠하는 것을 하루라도 거르지 말거라”고 할 뿐이었다.
그 후 율곡은 세상을 떠났고, 그가 세상을 뜬 지 8년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파죽지세로 북상해오는 왜군의 침략에 조정은 속수무책이었고, 마침내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쫓아오는 적을 피해 임진강에 이르렀을 때는 칠흑 같은 어둠이 앞을 가로막았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강가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던 일행은 그 순간 산언덕에 환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았다. 이에 선조 일행은 무사히 임진강을 건널 수 있었는데, 어둠을 밝혀 주었던 것은 바로 화석정에 솟구친 불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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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야 가라 |
세상을 뜨기 전 율곡은 유서를 남겼는데, "나라에 변고가 생겼을 때 열어 보라"고 했다. 이에 가족들은 유서를 봉해 두었다가 전쟁이 일어나자 열어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모월 모시 밤에 임진강변 화석정에 불을 질러라”고 적혀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가족들이지만 율곡 선생의 예언은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기에 가족들은 그대로 시행했다. 몽진 길에 올랐던 선조 일행이 우왕좌왕 하던 그 시간, 화석정에 솟구친 불길은 주변을 대낮같이 환히 밝혀 선조와 신하들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이다. 이 때 불타버린 화석정은 80여 년 동안 빈터로 남아 있다가 1673년(현종14년) 율곡의 후손들에 의하여 복원되었으나 6·25 한국전쟁 때 다시 불타 없어졌다. 지금의 건물은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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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강을 바라보며 |
율곡 선생이 수시로 오르내리며 상념에 잠겼던 정자는 비록 흔적 없이 사라졌으나 그 모습을 지켜보았을 느티나무는 지금도 화석정을 지키고 서 있다. 둘레가 12m에 이르는 수령 450년의 고목 느티나무는 어린 율곡이 정자에 올라 시를 짓던 그 모습도 어제인양 기억하며, 바람이 불 때마다 너그러운 손짓을 잊지 않는다.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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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 외관 |
화석정 앞에 화석정이란 음식점이 딱 한 곳 있다. 그러나 주변으로 나가면 임진강나루터의 소문난 장어집과 맛집들이 줄 잇는다. 싸고 실속 있는 맛집을 찾는다면 장단콩마을의 콩요리를 권한다. 장단콩은 민통선 비무장지대 장단에서 직접 재배한 천연 무공해 우리 콩이다. 문산읍 마정2리에 있는 장단콩마을(031-954-9800)에서는 장단콩정식, 두부전골, 되비지, 청국장 등 콩으로 하는 모든 요리를 선보인다.
*가는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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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단콩 정식 |
자유로 문산 IC에서 빠져나와 37번 국도를 타고 적성 방향으로 10분쯤 달리면 화석정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화석정 주차장이다.
이준애(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