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딜러들은 마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바로 중고차 회전율이다. 딜러들이 회전율에 목메는 이유는 대부분 자금이 부족한데다 돈 빌리기도 만만치 않고 회전율이 길어질수록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차를 빨리 처분해야 돈을 마련해 치열한 매입경쟁에서 다른 딜러들보다 좋은 차를 먼저 구입할 수 있고, 돈 빌리는 데 들어간 이자부담도 줄일 수 있다. 딜러들은 365일 내내 매입자금과 이자 때문에 발생하는 ‘쩐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돈이 부족한 딜러가 금융권에서 매입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딜러들이 속해 있는 매매상사 역시 영세해 금융권에서 신용으로 빌리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이런 딜러들이 의지하는 곳은 바로 ‘쩐주’(錢主)로 불리는 사채업자들이다. 사채라고 하지만 이자율은 다른 사채와 비교할 때 매우 싼 편이다. 이자율은 첫 달은 2부(2%), 그 다음 달부터는 1부5리(1.5%)가 일반적이다. 연 금리로 따지면 18.5% 수준이다. 1,000만원을 빌렸을 때 첫 달 이자는 20만원이다. 법으로 정해진 대부업체 최고 이자율이 연 66%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 된다.
불법 사채는 물론 대부업체 이자율보다 훨씬 싸지만 중고차시장에는 5,000억원을 굴리는 쩐주가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큰 손들이 많다. 쩐주 1명은 국산차 기준으로 월 3억~5억원 정도를 2~5개 매매상사 소속 딜러들에게 빌려준다. 수입차의 경우 쩐주 1명이 한 달에 운영하는 자금이 20억원 이상 된다는 얘기도 있다. 쩐주가 전업인 경우도 있지만 매매상사 대표를 겸하는 쩐주도 있다. 현재 딜러들이 중고차를 매입하는 데 쓰는 자금의 90%는 쩐주에게서 나온다.
쩐주들이 사채 시장보다 이자율이 매우 적은 중고차시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바로 ‘안전성’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는 방법은 모두 안전성에 초점을 맞췄지만 쩐주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은 친분 있는 매매상사 대표를 통해 딜러에게 돈을 빌려준 뒤 매입한 차의 자동차등록증, 인감증명서, 위임장 등을 받고 차는 상사 명의로 매입해 두는 것이다. 딜러가 보유하고 있는 차를 담보로 설정해두는 쩐주도 있다.
딜러의 신뢰도가 높다면 상사 명의로 매입하지 않고, 관련 서류만 받은 채 대출해주기도 한다. 빌려주는 금액은 차의 가치를 평가해 필요한 매입 자금의 80% 수준이다. 차를 가지고 도망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차 값을 부풀려 나중에 빌려준 돈 대신 차를 가져왔을 때 생길 수 있는 손실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2000년 이후 설립된 중고차시장은 대부분 입·출고를 한 곳으로 통일시키는 등 통제시스템을 갖춰 더욱 안전하다.
물론 돈을 떼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쩐주는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 시장에 진출한 상호저축은행 등 몇몇 금융기관은 돈 떼먹고 도망치는 딜러들 때문에 막대한 적자를 안고 철수했다. 이들은 차의 가치를 평가하는 노하우를 가지지 못했고 중고차 평균 가격이라 볼 수 있는 시세에 의존, 차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지 못한 채 딜러가 요구하는 액수대로 돈을 빌려줬다. 차의 가치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아 손해율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중고차시장의 생리와 쩐주의 대출 시스템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채 비교적 높은 이자와 성장 가능성만 보고 뛰어든 금융기관들은 결국 손해만 보고 쩐주 체제만 더욱 공고히 만들고 말았다.
쩐주 대출 시스템의 안전성과 규모를 감안하면 중고차 사채 이자는 결코 싸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사채 부담은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현재 회전율이 한 달 이내일 정도로 비교적 잘 나가는 인기차를 팔았을 때 딜러들이 가져가는 마진은 평균 4~5%. 예전에는 5~15% 정도 됐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가격정보를 미리 알아보는 등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 마진율이 크게 줄었다.
1,000만원짜리 중고차를 팔았을 때 딜러 마진은 40만~50만원이고 이 중 이자로 나가는 돈이 20만원(첫 달 2%)이라는 뜻이다. 회전율이 한 달을 넘길 경우 15만원(1.5%)을 더 부담해야 해 남는 돈이 거의 없게 된다. 따라서 해당 차를 보유한 딜러는 마진율을 더욱 높이게 되고 소비자들의 구입부담은 그 만큼 더 많아진다. 비인기차일 수록 회전이 잘 안돼 마진율은 더욱 높아진다. 소비자에게 바가지를 씌우기도 한다. 마진율 증가가 모두 이자 때문이라고 단정지울 수는 없지만, 이자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 또한 사실이다.
쩐주 중심의 딜러 대상 매입자금 대출시장에 지난해부터 작지만 의미있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고차 입·출고 관리가 철저한 대형 중고차시장을 중심으로 상사를 통해 딜러에게 매입자금을 대출해주는 금융상품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서울오토갤러리와 대우캐피탈이 만든 매매상사 전문 대출상품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6월 등장한 이 상품의 금리는 연리 12% 수준으로 쩐주 사채보다 저렴한데다 차 매입을 위한 선 대출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판매 1년만에 대출금액 300억원을 넘어섰다. 게다가 사고율은 ‘0%’였다. 상호저축은행 등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중고차 입·출고 통제 및 대출금액 산출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였다. 서울오토갤러리는 리스크 제로를 내세워 이자 부담을 현재보다 더욱 낮출 방침이다. 새로 등장하거나 입출고 통제 시스템이 가능한 중고차시장에서도 서울오토갤러리처럼 금융기관과 제휴를 통해 중고차 사채보다 저렴한 대출 상품을 개발·판매하려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쩐주 체제는 중고차 매입자금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금융기관들도 보다 저렴하고 편리한 상품들을 다양하게 개발, 이자 때문에 발생하는 딜러와 소비자의 손해를 줄여주길 바란다.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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