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과 청량한 바람이 느껴지는 곳으로 나들이를 떠나고 싶은 때다.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무량사는 가을 나들이에 어울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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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스며든 무량사. |
무량사가 자리한 만수산은 우거진 소나무숲과 아름다운 계곡으로 이름나 있다. 휴양림이 조성될 만큼 천연림이 무성하고,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호젓한 등산로는 좋은 사람과 함께 한없이 걷고 싶어지는 길이다. 그 기슭에 자리한 무량사의 분위기도 깊고 그윽하다. 아득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천년고찰과 마주하면 "아!" 하는 깊은 한숨이 절로 내뱉어진다.
무량사는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가 창건해 고려 때 크게 융성했던 절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후 조선 인조 때 재건됐는데, 극락전을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무량사의 본전인 극락전은 조선 중기 건축의 장중한 멋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불전 안에는 흙으로 빚어 만든 동양 최대의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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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그윽한 분위기. |
그러나 이 보다도 무량사를 더 유명하게 만든 건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과 부도가 있다는 점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작가인 매월당은 세종 때 태어난 사상가로, 문학자로 당대를 풍미했으나 평생을 떠돌다시피하다가 성종 24년에 59세의 나이로 무량사에서 일생을 마쳤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세상에 자자했던 매월당은 일찍이 세종이 “자라면 뒷날 크게 쓰겠다”는 약조까지 할 정도였으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 세상을 비관해 책을 불사르고 중이 돼 유랑생활을 했다. 서북지방으로부터 만주벌판에 이르렀다가 다시 동으로 금강산을 거쳐 남쪽 경주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금오산에 은거해서 지은 책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다.
매월당의 성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0년이 넘은 오랜 은거 끝에 잠시 서울에 머물렀을 때, 어느 벽에 붙은 한명회(세조의 총신으로 성종대까지 고관요직을 역임했던 인물)의 글을 보게 됐다.
젊어서는 사직을 붙잡고(靑春扶社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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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사 일주문. |
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白首臥江湖).
이 시를 본 매월당은 그 자리에서 붓을 들어 "부"(扶) 자를 "망"(亡)자로, "와"(臥) 자를 "오"(汚) 자로 고쳐버리자 ‘젊어서는 사직을 망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힌다’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매월당이 생을 마감한 곳은 무량사에서였다. 화장을 하지 말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3년동안 시신을 묻어뒀다가 장사를 지내려고 열어 보니 그 모습이 변하지 않고 마치 살아 있는 듯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부처가 됐다고 믿고 화장을 했는데 사리 1과가 나와 부도를 세우고 이 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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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습 영정. |
매월당이 직접 그렸다고 전해지는 영정은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약간 찌푸린 눈매, 꼭 다문 입술, 눈의 총기를 통해 생생히 전달해준다.
절 주변에는 무진암, 도솔암, 태조암 등 여러 암자가 있으며, 무량사에서 도솔암을 거쳐 태조암에 이르는 1.5㎞의 숲길은 두고두고 기억날 만큼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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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 최대 아미타삼존불. |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 대천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보령 - 상주터널 - 석탄박물관 - 보령댐 입구를 지나 무량사에 이른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천안(천안논산고속도로) - 서논산 IC - 부여 - 무량사까지 2시간30분 정도.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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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중기 건축미를 보여주는 극락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