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업체여, 독립을 선언하라"

입력 2007년11월08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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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서 환경과 관련된 기술이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유해한 또는 환경이나 기후에 직간접 영향을 주는 배출가스를 정화시켜 주는 기술이 있다. 두 번째는 연료소비 감축을 통해 오염물질을 줄이려는, 이른바 에너지 효율 증대의 기술이다. 마지막으로 에너지를 재사용하거나 새로운 에너지원을 이용한 대체엔진 및 대체에너지기술이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소비자들이 지불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와야 비로소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즉 모든 기술은 경제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친환경기술 가운데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선호하는 대표적인 기술이 바로 연료소비를 줄여주는 기술이다.

최근 앞다퉈 등장하는 연료전지나 하이브리드는 환경오염과 연료소비를 줄여주는 동시에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아울러 경제 및 환경적인 측면을 모두 충족시키는 매우 만족스러운 컨셉트다. 하지만 이들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기술 가운데 대체엔진 및 대체에너지 기술로 분류할 수 있다. 아직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미래지향적인 컨셉트여서 당장 실생활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다. 쉽게 보면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다. 따라서 제조사들은 환경친화적이면서 동시에 소비자들에게 연료비 절감이라는 경제적인 이익을 확보해줄 수 있는 연료소비율 향상 기술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도 여러 친환경 기술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많이 등장했다. 오펠의 에코플렉스(Ecoflex), 포드의 에코네틱(Econetic), BMW의 이피션시 다이내믹스(Efficient Dynamics),폭스바겐의 블루모션(Blue motion) 등이 대표적이다. 메이커마다 고유의 마케팅전략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으나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연료소비를 줄일 수 있는 여러 기술과 옵션을 묶어 하나의 시스템으로 개발했다는 것이다. 제조사 입장에선 브랜드 안의 또 다른 기술 브랜드를 드러낸 셈이다. 그런데 이들 패키지 형태의 에너지 절약 컨셉트의 로고나 글자 바탕은 한결같이 물을 상징한다는 파란색이나, 숲과 나뭇잎을 표현하는 초록색을 썼다. 게다가 바이오연료, 랍스오일 등 친환경 식물성 연료는 노란색을 사용해 전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초록과 노란, 파란색으로 넘쳐났다.

물(H2O)의 주성분인 수소는 주로 파란색으로 표현했는데, 모터쇼에서는 연료절약과 배기가스 저감장치들도 파란색을 쓰는 바람에 유난히 파란색이 많았다. 게다가 벤츠가 소개한 블루텍(BlueTec)은 디젤엔진에서 배출되는 질소화합물을 줄이는 최신 정화장치의 이름이어서 다른 메이커가 사용하는 연료절약의 블루 컨셉트와 혼동할 여지도 남겼다.

소비자들에게 패키지상품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가격과 편리함 그리고 다양함이다. 물론 제조사에게 패키지는 비교적 적은 투자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효율 좋은 상품이다. 연료의 에너지효율을 높여 연료소비를 낮춘다는 확실한 목표를 두고, 가능한 모든 기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집적해 체계화시킨 것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이제 자동차의 연료소비를 줄이는 기술도 특정 한 가지 기술만으로는 분명한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연료소비를 줄이는 기술은 피스톤 왕복운동기관인 엔진기술에 집중됐다. 이와 함께 변속기를 비롯한 동력전달부분에 국한해 개발돼 왔다. 물론 비슷한 무게에 동급 배기량인 경우 연소최적화 기술이나 엔진의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기술이 연료소비를 줄이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으나 동력변환 및 전달장치에서 에너지 전달과 변환에 따른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도 중요한 변수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울러 자동차의 전체 무게를 줄이는, 소위 경량화기술도 적용돼 왔다. 뿐만 아니라 식물성 연료나 알코올, 천연가스, 전기, 바이오디젤 등 기존 석유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것도 기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으로 등장했다. 하이브리드카 역시 도로가 정체돼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시내주행 때 "스톱&고" 모드를 활용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톱&고" 기능을 잠시 언급하면, 최근 앞다퉈 등장하는 이 기술은 80년대 중반 독일 폭스바겐이 골프에 적용했다가 실용화에 실패했던 "SNA(Schwung-Nutz-Automatik)"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플라이 휠의 회전관성력을 이용해 엔진을 다시 돌리는 "SNA" 골프는 시작품으로 2,000여대가 독일 베스트팔렌주 경찰차로 시범 운용됐으나 아쉽게 상용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운전자들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곧바로 시동이 꺼지는 기능에 익숙치 않아서였다. 그러나 최근 하이브리드카에 적용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물론 현재 하이브리드카에 쓰인 "스톱&고"의 세세한 원리와 기능은 "SNA"의 그 것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용도와 목적은 같으니 폭스바겐의 "SNA" 기술은 당시 시장상황에 비춰보면 채 봄이 시작되기도 전에 성급히 날아든 제비였던 셈이다.

동력구동 시스템에 전기모터가 장착된 하이브리드나 전기, 연료전지차는 브레이크 에너지의 재활용을 통해 연료소비를 줄일 수 있는 훌륭한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이번 모터쇼에 소개된 여러 제조사들의 하이브리드에는 이러한 브레이크 에너지 재생장치와 "스톱&고" 기능을 복합적으로 적용,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기능이 집중 부각되기도 했다. 원래 하이브리드 구동 시스템은 지난 칼럼에서 밝혔듯이 에너지 절약을 위한 컨셉트라기보다는 인구밀집지역 내에서의 배기가스를 줄이자는 게 처음의 주목적이었으니 그나마 여러 기술을 조합해 에너지 절약 컨셉트로도 변형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연료소비를 낮추려는 선진 제조사들의 목표는 이제 다양한 기술을 접목해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추세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레고산업의 레고 시스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어린이 장난감 레고는 똑같은 여러 개의 레고로 다양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같은 엔진기술, 같은 변속기, 같은 연소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상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쉽게 보면 같은 재료로 양식과 한식, 중식 등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요리사가 바로 제조사라는 얘기다. 연료소비를 줄인다는 궁극적인 목적 아래 다양한 컨셉트와 슬로건을 정하고, 엇비슷한 기술을 누가 먼저 창조적으로 변형해 집적시킬 줄 아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소위 트랜스 엔지니어가 바야흐로 자동차산업에서도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부품에 해당하는 레고라는 요소의 연구개발과 생산은 이제 부품업체의 몫이 돼야 한다. 반면 자동차제작사는 수많은 부품이라는 요소의 레고를 이용해 자동차 또는 다른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소위 트랜스 테크놀러지의 노하우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모델 개발을 위해선 새로운 부품, 즉 새로운 레고도 같이 개발해야 하기에 부품업체도 제작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처음 모델 구상단계부터 개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타이어에서 첨단 ECU, ESP까지 소위 계열화라는 미명 아래 한 그룹 내에서 모든 해당 부품을 제작·조립하던 대규모 투자의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다품종 소량생산시대는 서서히 도래하고 있다. 이미 같은 플랫폼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 모델을 생산하는 플랫폼 공유생산 시스템은 더 이상 낯설고 신기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대세로 여겨지는 트랜스 기술을 바탕으로 한 레고 시스템의 미래도 그리 멀지는 않다.

전략전문가인 버겔만 교수는 "과거의 성공공식을 새로운 환경에 맞도록 변형할 줄 모르면 자유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도태하는 건 자명한 일"이라고 했다. 미국의 저명한 경영학자는 한국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위계와 서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미 세계 유수의 완성차업체들은 부품업체와의 관계를 "종속"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여전히 "상하관계"로 묶여 있는 국내 부품산업은 독립운동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독립된 주체만이 유행과 때를 감지하고 스스로 대처해 나갈 수 있어서다. 막차마저 놓치는 딱한(?) 여인이 되지도 말아야 하고, 초봄에 너무 일찍 날아들어 꽃샘추위에 얼어죽는 제비도 되지 말아야 한다.


이경섭 베를린 특파원 kyungsup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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