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가 내년부터 본격화될 일본차의 공세에 대비하고 나섰다. 현대는 이를 위해 최근 언론을 대상으로 베라크루즈와 렉서스 RX, 그랜저와 렉서스 ES, 쏘나타와 혼다 어코드 등의 비교시승회를 갖는 등 제품력으로 일본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치중하고 있다.
현대·기아가 위기감을 갖고 있는 건 프리미엄이 아닌 대중적인 일본 브랜드의 공략이 양사의 주력차종 판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서다. 특히 국내에 진출할 일본 대중차 브랜드들은 현대 쏘나타와 그랜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두 모델은 현대의 "캐시카우"로 불릴 만큼 절대적인 비중을 갖고 있다. 쏘나타는 지난 10월까지 9만2,558대가 팔리며 부동의 내수 1위 자리를 지켰고, 그랜저도 7만4,332대로 내수판매 3위에 올라 있다. 오랜 기간 현대의 성장을 이끌었던 견인차가 바로 쏘나타와 그랜저인 셈이다.
일본업체들이 주시하는 부분은 두 차종의 규모와 판매가격이다. 일본업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그랜저가 차지하는 시장규모를 연간 9만대로 볼 때 닛산과 토요타가 가세하면 장기적으로 최소 2만대 정도는 빼앗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가격만 조정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내다봤다. 판매가격을 전략적으로 조정한다면 국내 시장에 깊숙히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
업계의 한 전문가는 "일본 업체들이 국내 시장에서 흥미롭게 보고 있는 건 대중차 브랜드 중 앞서 진출한 혼다의 선전"이라며 "혼다는 수입차임에도 국산차에 비해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조기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혼다 입장에선 닛산과 토요타가 한국에 진출하면 이들과도 가격경쟁을 벌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일본 대중차 브랜드의 가격인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대중차 브랜드의 국내 판매는 같은 일본 브랜드의 가격인하로 이어지고, 이는 곧 국산 중·대형 차종과의 직접적인 가격경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현대·기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이 바로 닛산과 토요타가 한국에 진출할 때 책정할 가격이다. 쏘나타 2.0은 최저 1,793만원에서 최고 2,495만원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쏘나타 2.4는 2,646만원에서 2,953만원이다. 그랜저는 2.4의 2,681만원을 시작으로 3.8 최고급형은 4,077만원이다. 여러 트림 가운데 주력차종은 쏘나타 2.0 2,300만원, 쏘나타 2.4 2,600만원, 그랜저 2.7 3,200만원이다. 혼다가 어코드 2.4를 3,490만원, 3.0을 3,940만원에 판매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아직은 가격경쟁력이 다소 앞서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게 일본업체들의 판단이다. 닛산의 경우 중형 세단 알티마에 기대를 걸고 있으며, 토요타 또한 캠리를 주력으로 띄울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적으로 양사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인피니티와 렉서스에 비해 이들 차종의 가격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인피니티 G35 세단의 가격이 4,750만원인 걸 감안할 때 알티마는 3,000만원 중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2.5와 3.5ℓ 외에 닛산이 전략적으로 2.3ℓ 엔진을 투입할 경우 그야말로 국내 중형 세단과의 전면전은 불가피하다. 물론 닛산으로선 르노삼성자동차를 고려해 2.3은 피하겠지만 필요할 경우 언제든 판매가 가능하다는 점에선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일본 업체 관계자는 "인피니티와 렉서스 등의 프리미엄 브랜드와 달리 닛산과 토요타, 혼다 등은 사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수입차라는 인식이 다소 약하다"며 "이는 소비자들이 손쉽게 국산차를 사듯 구입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쓰비시도 한국에 진출하면 국내 시장에서 현대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북미에서 현대가 쏘나타 및 그랜저로 일본업체들과 경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내에서도 똑같은 양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분석에 대해선 현대도 일부 동의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서 가장 두려운 대상은 혼다가 아니라 혼다를 포함한 일본 3사"라며 "혼다만 있을 때는 가볍게 여길 수 있으나 일본의 대중차 브랜드가 서로 경쟁하면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시장을 크게 잠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내부적으로 대책을 세우고는 있지만 유일한 대책은 일본 대중차 브랜드의 가격정책을 주시, 그에 맞는 새로운 가격을 결정하는 것 외에 특별한 방안이 없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최선의 대책은 수출뿐인데, 내수에서의 이익만큼을 거두려면 수출을 지금보다 훨씬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는 고급차 투입을 시장방어에 활용한다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제네시스를 기반으로 한 스포츠카와 SUV 등을 조기에 투입, 제품력으로 맞선다는 것. 현대 관계자는 "가격경쟁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어서 제품 고급화가 우선 기반돼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국내 시장에서 현대의 입지가 조금씩 흔들릴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제품 고급화로 돌파한다는 방침이다.
권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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