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카, 이제는 문화재로 여겨야

입력 2008년01월09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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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잘 맞는 음악은 아무래도 클래식 고전이다. 물론 개인적 취향에 따라 아침부터 요란한 랩이나 댄스곡 혹은 트롯트로 시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롱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들려오는 타이스의 명상곡이나 마스카니의 카바렐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은 차분하게 맑은 하루를 시작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54년형 벤츠 300SL 쿠페.


사실 "클래식(classic)"이라는 단어는 음악이나 미술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자동차란 공산품에도 클래식이란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이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닌 유럽의 자동차선진국에서의 이야기다. 오래된 자동차를 부를 때 클래식카라고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올드타이머(Old Timer)" 혹은 "클래식커(Klassiker)"로 부르길 더 좋아한다.



독일의 올드타이머시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시장 시스템도 잘 정비돼 있다. 보험사도 30년 이상된 자동차는 올드타이머로 인정해 올드타이머 보험료를 따로 적용한다. 차종 및 보험사에 따라 그리고 개인적인 보험요율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올드타이머의 연간 보험료가 일반 자동차보험료보다 현저하게 저렴하고, 정부도 올드타이머에 대해서는 유로4 또는 유로5 등의 까다로운 배출가스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나아가 연간 자동차세도 면제해주거나 매우 저렴하게 책정하는 편의를 제공한다. 한 마디로 법적·사회적 인프라가 오래된 차를 더욱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제다. 이는 올드타이머가 자동차가 아닌 문화재라는 인식이 큰 힘이 됐다.



올드타이머가 있으니 당연 "영타이머(Young Timer)"도 존재한다. 영타이머란 20년 혹은 25년 이상이되 아직 30년이 채 안된 차를 말한다. 말하자면 영타이머는 준비된 올드타이머라 할 수 있다. 영타이머는 아직 독일 클래식시장에서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공식 인정을 받지는 못하지만 업자들 사이에선 차종에 따라 이미 시장이 형성돼 있다.



지난 연말 재래식 벤츠 모델만을 전문으로 복원해주는 업체인 K사의 후계자인 M을 에센모터쇼에서 만났다. 그는 올드타이머 수집을 위해 모터쇼을 방문했다고 하는데, 요즘 부쩍 가격이 오르는 50년대 벤츠 300SL 걸윙도어 모델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300SL은 잘 복원됐거나 상태가 양호할 경우 20만유로(현재 환율로 약 2억8,000만원) 정도에 판매됐다. 그러나 지금은 북미와 남미, 중동과 홍콩, 일본 등 아시아지역 올드타이머 애호가와 미국 등지에서 수요가 급증해 60만유로가 넘는 가격에 판매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오히려 공급이 부족해 가격은 계속 치솟고 있다는 말도 귀띔해줬다. M은 조만간 300SL 가격이 100만유로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말하자면 고흐의 미술품이나 골동품 문화재는 물론 한국의 부동산을 훨씬 뛰어넘는 고수익의 투자대상으로 클래식카가 부상한 셈이다.



63년형 페라리 250 GTO.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전(戰前) 모델(2차 세계대전 이전)인 30년대나 40년대 차종은 현재 우리 돈으로 수십억원대를 호가한다. 이 중 희귀차종이나 유명 엔지니어의 작품이라면 박물관용이거나 박물관의 한 자리를 예약했다고 봐야 한다. 이 쯤되면 자동차를 단지 공산품 또는 소모품이 아닌, 당당한 예술품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에센에서 만난 M도 이런 차종은 소위 "쿤스트베르크(Kunstwerk, 예술작품)"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흔히 단시간 내에 가치가 뛰고 가격이 상승한다면 투자가치가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이유로 독일은 이미 일반 사람들조차 클래식카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 클래식이나 올드타이머 개념이 없는 아시아에서도 클래식카를 현금지불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게다가 클래식카 거래는 주식이나 증권과 달리 세금도 없을 뿐더러 차익에 대한 추적도 어려워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국내에 클래식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클래식카가 존재해야 한다. 번쩍인다고 모두가 금강석이 아니듯, 무조건 오래됐다고 올드타이머가 되는 건 아니다. 가치부여가 될만한 요소가 존재해야 하는데, 이는 제작 당시의 기술적 혁신성, 디자인의 예술적 독창성, 희귀성과 개별 역사성이 그 것이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가치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



클래식카에 대한 여러 법적·사회적 인프라도 중요하다. 클래식카를 현재의 소음과 배출가스 기준에만 맞추려 한다면 시장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첫째 조건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오래된 자동차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다. 오래된 건 무조건 ‘타파해야 할 그 무엇’으로 치부하고, 전통 유교사상과 초가집을 불태우며 앞만 보며 전진해야 했던 각박한 개발시대의 우리에겐 새 것만이 최고의 선이었다. 이제 오래된 것에서 가치를 찾고 부여하는 일, 자동차에서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경섭 베를린 특파원 kyungsuplee@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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