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걸음 예서 멈추고 목이라도 축여 가소

입력 2008년02월1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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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도, 나루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인적 끊긴 이 곳을 외로이 지켜 왔던 주모마저 세상을 뜬 후, 허물어지는 주막에는 지나가던 바람만이 가끔씩 기웃거릴 뿐이었다. 20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자리에 선 채로 주막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지켜 봤던 고목은 이즈음 요지경같은 세상을 또 한 번 경험하고 있다.

복원된 주막에 구경꾼이 몰린다


적막강산이던 이 곳에 그 옛날 흥청이던 장날처럼 다시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다. 허리를 바로 펴고 설 수 없을 만큼 낮고 비좁은 방에 엉덩이를 비비고 들어앉아 꼬릿꼬릿한 발냄새를 풍기며 육담과 희떠운 소리들을 해대던 장꾼들은 아니지만, 번듯한 차림새에 승용차를 끌고 온 그들은 무슨 희한한 구경거리를 만난 듯하다. 바로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복원된 삼강주막의 요즘 풍경이다.



이제는 이름만 남은 나루터
1,300리 낙동강 물길이 내성천과 금천을 만나 어우러지는 곳이라 해서 삼강(三江)리라 불리는 이 곳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상인이 흥청대는 요충지였다. 대구와 서울을 잇는 단거리 뱃길로,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배와 집산된 농산물이 모두 이 곳으로 모였다. 바로 그 곳에 위치한 주막은 자연 봇짐장수, 방물장수 등이며, 사당패며 시인묵객으로 붐볐다. 때론 그들의 숙식처로, 때론 쉼터로 고단한 몸을 뉘기도 했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했다. 장날이면 강 이 쪽과 저 쪽을 오가는 배가 하루에도 20~30번씩이었고, 점심 때면 주막의 술이 동났다. 배를 기다리던 행인들은 봉당마루에 앉아 이 동네 소문과 저 동네 소식을 풀어 놓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나 1970년대에 도로가 뚫리고 낙동강 물줄기 위로 다리가 가로질러 놓이면서 이 곳은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주막도, 주모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노를 젓던 뱃사공이 어느 날 떠나고, 동네사람들끼리 돌아가면서 사공을 맡아 배를 움직이다가 그 것마저 여의치 않게 되자 나루는 완전히 제기능을 잃고 말았다.

흙벽에 그은 외상 칼금


하지만 주모는 마지막까지 주막을 지켰다. 2005년 90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이 곳을 지킨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머니는 1917년에 태어나 네 살 위인 뱃사공 배소봉 씨와 1932년 혼인해 주막을 맡아 세상을 뜰 때까지 약 70년간 주막과 함께 살았다. 글도, 숫자도 알지 못했던 할머니는 외상을 주면서 부엌 벽에다 칼금을 그었다. 한 잔을 외상하면 짧은 금을, 한 주전자를 외상하면 긴 금을 세로로 그어 놓았다가 외상값을 죄다 갚으면 옆으로 길게 금을 그어 외상을 지운 흔적이 지금도 주막 흙벽에 그을음과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삼강나루터에 복원된 주막
할머니가 세상을 뜬 후 주막은 한동안 방치됐다가 경상북도가 그 문화·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민속자료 134호로 지정한 후 2007년 1억5,000만원의 예산으로 옛모습 그대로 복원시켰다. 허물어지는 슬레이트 지붕 대신 짚단을 얹은 원래 모습에 진흙을 바른 담장, 구들장, 아궁이도 그대로고, 할머니가 쓰던 토끼굴같은 부엌도 고스란히 살렸다. 방 2개와 다락, 툇마루에 원두막(정자) 2채가 더해졌다.



삼강주막의 새 주모는 이 마을 권태순(70) 할머니가 맡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막걸리와 안주거리를 내놓고 있다. 주막이 복원됐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찾아오는 손님을 모두 맞이할 만큼 방이 넓지 않아 주막 앞에는 비닐하우스가 급하게 만들어졌다. 그냥 돌아가기 아쉬운 사람들은 이 곳에서 옛 정취를 되살리며 막걸리잔을 비우기도 한다.

주막을 지키는 수령 200년 넘은 고목


*주막 먹거리

권태순 할머니가 여럿 경쟁자를 물리치고 삼강주막의 새 주모로 뽑힌 이유는 무엇보다 술을 잘 빚어서였다고 한다. 스물한 살에 시집와 술을 빚기 시작해 50년 넘는 세월 손맛이 곰삭은 막걸리는 솔향기가 은은하다. 여기에 경북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배추전을 안주로 마시는 맛이 별미다. 배가 불룩한 술단지가 주말이면 금세 홀쭉해진다. 이 밖에 묵·두부 등은 모두 할머니가 집에서 직접 만들고 쑨 음식들이다.

아궁이부엌과 무쇠솥


*가는 요령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함창IC를 빠져나가 문경시(옛 점촌시)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예천방면으로 가다 보면 산양면 소재지에서 59번 지방도(풍양방면)를 만난다. 지방도로 갈아타서 10분 정도 가면 새로 건설한 큰 다리(삼강교)를 건너자마자 삼강주막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배추전


이준애(여행칼럼니스트)



술독에 그득한 막걸리


흥청이던 옛날 주막모습이 그림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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