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절터를 찾아가는 여행은 여러 상념에 빠져들게 한다. 텅 빈 절터에 깃든 고요와 적막감을 마주하면 세월 너머의 그 무엇이 가슴 밑바닥 저 깊은 곳을 퉁, 울린다. 하물며 봄날에 떠나는 폐사지(廢寺址)로의 여로야 말해 무엇하랴. 주체치 못하고 치밀어 오르는 그 코 끝 찡한 애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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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절터에 살그머니 찾아든 봄날.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고달사지. 인적 끊어진 텅 빈 절터에 봄볕만이 눈부시다. 천 년 전의 그 날도 이 곳엔 오늘처럼 따사로운 봄볕이 넘쳐나고 있었을 터이다. 사방 30리가 모두 절의 땅이었고, 수백 명이 넘는 스님들의 염불 읊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던 곳. 하지만 지금은 휑한 들판에 부서진 석불과 비석들만이 대사찰의 흥망성쇠를 말해주고 있다.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된 절이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곳 석조물들은 모두 ‘고달’이란 이름을 가진 석공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로지 부처님에 대한 마음 하나로 돌을 깎고 다듬었던 고달은 불사가 다 끝난 다음에야 그가 돌보지 못했던 가족들이 모두 굶어죽은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을 안 고달은 스스로 머리를 깎았고, 그 후 큰 스님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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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4호인 고달사지부도. |
그런 사연 때문인 지 천 년 세월을 견뎌낸 이 곳의 석물들은 비범하다. 하나같이 넘치는 힘과 호방한 기상이 느껴지면서도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한 점도 찾아보기 힘든 국보·보물급 문화재가 이 곳에선 줄을 잇는다. 국보 제4호로 지정된 고달사지부도와 보물 제 6·7·8호가 모두 여기에 있다.
빈 절터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잡는 건 원종대사혜진탑비(보물 제6호).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바라보는 용머리와 구름 사이로 몸을 휘감은 정교한 용 문양이 금방이라도 돌을 뚫고 나올 기세다. 당당하고 웅혼한 기세가 텅 빈 절터에서도 주변을 제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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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치는 기상의 원종대사혜진탑비. |
비는 어떤 사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그 내용을 돌 등에 새겨 세운 것으로, 불교에서는 선종이 유행하면서 승려의 행적을 남기기 위해 부도와 함께 건립됐다. 비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귀부-비-몸-이수로 구성된다. 귀부는 비몸과 이수를 지탱하는 부분이고, 비몸은 건립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는 부분으로 가장 중심이 된다. 이수는 비 몸돌을 보호하기 위한 수호적인 의미와 장식적인 효과를 위해 비몸 위에 올려지는 부분이다. 이 비는 통일신라 말에 태어나 고려 광종대까지 활동한 승려 원종대사(869~958)의 탑비 중 일부인 귀부와 이수다. 원래의 탑비는 1916년에 무너져 비 몸돌은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진열돼 있고, 여기에는 현재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조금 내려가면 석불대좌(보물 제8호)가 보인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잘 생겼다는 이 대좌는 그러나 주인인 부처를 잃어버린 채 덩그러니 빈 모습으로 절터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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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8호인 석불대좌. |
숭례문, 원각사지 10층 석탑, 진흥왕 순수비에 이어 국보 제4호로 지정된 고달사지부도는 절터에서 조금 떨어진 산중턱에 있다. 오솔길을 따라 산 뒤편으로 돌아가면 먼저 원종대사 부도(보물 7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더러 이를 고달사지부도로 잘못 알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곳에서 언덕으로 좀더 올라가야 한다. 원감국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고달사지부도는 빼어난 균형미와 아름다움을 인정받았다. 단아하면서 세련된 자태는 격조있는 품격을 느끼게 한다.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몸에 새긴 비석에도 천 년 전의 햇살이 머물고 있다. 빈 절터에 살그머니 봄날이 꽃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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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년 세월을 온몸에 새겼다. |
*맛집
천서리 이포대교 앞 4거리에는 천서리막국수촌이 형성됐다. 원조집인 강계봉진막국수(031-882-8300)를 위시해 여주천서리막국수(883-9799) 등 매스컴에 소개된 막국수집들이 줄을 잇는다.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동치미로 맛을 낸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한방 편육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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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서리막국수촌. |
*가는 요령
영동고속도로 여주 인터체인지를 나와 국도 37번을 타고 여주·양평 방면으로 향한다. 이포 4거리와 용문 방면으로 빠지는 3거리를 지나면 왼편에 고달사지가 있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클럽700’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가도 된다. 새로 뚫린 길을 따라 7km 정도 가다 골프장 지나 언덕을 넘으면 왼쪽에 고달사지가 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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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국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