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서 전해오는 꽃소식이 봄바람을 타고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섬진강가에 매화꽃 향기 가득하고,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축제며 하동·진해 벚꽃도 곧 벙글어질 기세다. 이 기세대로라면 조만간 영덕군의 오십천변도 연분홍 복숭아꽃으로 화사하게 물들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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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등성이에 핀 복숭아꽃 |
복사꽃이 만개해 도원경을 이룰 때면 영덕군에서는 복사꽃축제가 열린다. 때를 같이해 유명한 대게축제도 함께 개최돼 바닷가 마을은 온통 흥겨운 축제분위기에 휩싸인다.
국도 34번을 따라 이어지는 황장리, 지품리, 복곡리, 수암리, 낙평리, 신안리 등 영덕군 지품면 일대는 온마을이 복사꽃 더미에 파묻힌다. 특히 삼화리 삼협마을은 산자락 전체가 복숭아밭이다.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광활한 복숭아밭이 펼쳐지는데,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예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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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의사 |
복사꽃 피는 영덕에 가면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 조선말 기울어가는 나라를 구하려 왜군과 싸웠던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장군(1878~1908)이다. 역사에 기록된 많은 의병장들이 있으나 특히나 그를 기억해야 하는 건 약관의 나이에 평민으로서 의병대장이 돼 활약한 경우는 일찍이 찾아보기 어려워서다. 그는 을사보호조약 다음해인 1906년 의병을 일으켜 영해, 영덕, 평해에서부터 삼척, 양양, 강릉, 원주, 안동, 영양 등 경북 북동부와 강원도 일대까지 신출귀몰하며 왜군에 저항했던 위대한 의병장이다.
신돌석은 1878년(고종 5년) 11월3일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당시는 영해군 남면 복평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태호이고, 돌석은 그의 아호다. 그는 타고난 장사로, 태어난 날부터 골격이 튼튼했고 점점 자라면서는 장대한 체구와 그에 걸맞게 용력이 비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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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가터 |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국민들의 대일감정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해 항쟁을 벌이자 신돌석도 19세의 젊은 나이로 100명의 의병을 이끌고 경북 영해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1896). 1905년 국가의 외교권이 박탈당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또다시 각지에서 의병항쟁이 발발했다. 이 때 신돌석은 의병 100명을 모아 영릉의병장의 이름으로 출발(1906)해, 4월에는 울진 장흥관에서 일본군선 9척을 파괴하고 6월에는 원주에서 일군들을 습격했다. 이어서 삼척, 강릉, 양양, 간성 등지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하면서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의병을 자청하는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이후 전국 13도 의병이 양주에서 연합해 재편되는 과정에서 신돌석은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외됐다. 당시 의병은 양반이나 유생 출신이 주로 지휘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병장보다 농민들을 잘 규합하고, 뛰어난 전술로 일본군을 혼비백산케 했던 신돌석의 출출한 능력도 결국 신분차별의 견고한 벽을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영해로 다시 돌아와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다가 현상금에 눈이 먼 부하 의병 김상열 형제에게 그만 살해되고 말았다(1908). 그의 나이 3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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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관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됐으며, 1971년 장군의 유해가 국립묘지 유공자묘역으로 이장됐다. 1995년 도곡리에 생가가 복원됐고 1999년 장군의 혼이 어린 자리에 장군의 항일정신을 길이 후대에 남기고 빛내기 위해 성역화공원과 기념관이 세워졌다. 이 곳에는 신돌석 장군에 대한 각종 자료들이 보전, 전시돼 있어 10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그의 피끓는 의분을 느끼게 한다.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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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돌석장군 흉상 |
강구항 대게거리에 영덕대게 전문집 100여 곳이 성업중이다. 죽도산(054-733-4148), 대게종가(054-733-4147), 대게궁(054-784-5001), 대게타운(054-733-4599) 등이 매스컴과 사람들 입소문이 난 곳. 신돌석 장군 생가마을 안에 있는 도곡멧돼지가든(054-732-2990)은 상호 그대로 멧돼지고기를 전문으로 선보인다. 갈비숯불구이, 소금구이, 곱창전골, 찌개 등 멧돼지고기를 이용한 다양한 메뉴가 있다.
*가는 요령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IC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안동시내를 통과해 진보·청송 방면으로 달린다. 진보를 지나 황장재고개를 넘으면 영덕까지 복사꽃길이 이어진다. 신돌석 장군 유적지는 영덕읍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울진 방면으로 향한다. 14㎞쯤 가다가 도곡리에서 2㎞ 정도 좌측으로 들어가면 장군의 생가가 나타난다. 유적지도 멀지 않은 거리에 이웃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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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된 생가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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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사한 복사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