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문화컨텐츠에 눈을 떠라

입력 2008년04월06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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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6일부터 30일까지 닷새동안 독일 에센에서 ‘테크노 클래식’이 성대하게 개최됐다. 클래식카와 영 타이머(young timer), 프레스티지카 그리고 꿈의 차라 불리는 슈퍼 스포츠카 등이 출품되는 이번 전시회에는 38개국에서 1,500여 업체가 참가했다.



이 행사가 처음 개최된 1989년만 해도 6곳의 전시장은 단순히 클래식카 부품을 모아 놓은 벼룩시장 정도였는데 20년만에 명실공히 세계적인 클래식카 박람회로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이제는 테크노 클래식이라는 이름 외에 ‘디 클래식 벨트메세(Die Klassik Weltmesse : 클래식 국제박람회)’라는 부제도 붙었다. 지난 90년대 ‘유럽 최대 규모의 올드타이머 메세’였던 부제가 2000년대들어 ‘세계 최고 규모’로 바뀐 셈이다. 클래식카라는 한정된 아이템으로 닷새동안 방문자가 무려 20여만 명에 육박한 것만으로도 이제 에센의 클래식카 박람회는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행사가 됐다.



클래식카 박람회는 일반 다른 자동차전시회 및 모터쇼와는 다른 점이 꽤 많다. 우선 일반 관람객의 평균나이가 높다. 튜닝카와 스포츠카 발표 그리고 각종 이벤트 등으로 쇼의 성격이 강한 에센모터쇼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데 반해 ‘테크노 클래식 메세’는 비록 ‘테크노’라는 단어가 들어갔음에도 관람객 연령이 젊지 않다. 대부분 경제력에 여유가 있어 보이는 40대 후반이며, 자동차에 대한 열정은 물론 오랜 세월 다져 온 자동차에 대한 지식 내공이 깊은 사람들이 많다.



또 클래식카 박람회에는 대개 클래식카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들이 나온다. 물론 박람회에 100% 클래식카만 선보이는 건 아니지만 이름이 그러하듯 클래식카가 주를 이룬다. 클래식카는 일단 자동차 나이가 최하 30년을 넘어야 한다. 20년은 넘었으되 30년이 채 안된 영 타이머도 최근 클래식카시장에 활발히 나오지만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얻기에는 너무 젊다. 말하자면 현재 30대나 40대가 어렸을 적 뒷좌석에 앉았던 추억이 있는 자동차로, 조만간 정식 클래식카가 될 준비된 차다.



따뜻한 봄날, 불현듯 불혹을 넘긴 자신을 돌아보며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매개체가 바로 이런 영 타이머다. 또 경제력있는 40대에게 추억을 파는 마케팅전략으로 나온 게 바로 영 타이머라는 개념이다. 업체는 전통과 역사를 팔고, 개인 방문객은 어릴 적 추억을 산다. 추억과 젊은 시절의 문화가 자동차에 실려 거래되는 장소가 바로 클래식카 전시장인 셈이다.



클래식카를 소유한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부품 구입이다. 요즘은 인터넷 상거래나 경매가 발달해 좀 쉬워졌으나 오래된 자동차의 부품을 구하기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잘 모른다. 클래식카 메세는 각 자동차에 따른 클럽과 동호회들, 아마추어 수집가 그리고 부품중개상들이 모여 벼룩시장과 같은 규모로 시작됐다. 긴 겨울이 지나 따뜻하고 한가한 봄날 주말에 벼룩시장처럼 열린 클래식카 부품시장에 나가 서로 정보교환도 하고, 부품도 구입하고 하던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최근에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는 메세기간 내에 이뤄진 클래식카의 거래만도 1,500여대에 이르렀다. 클래식카시장의 규모가 90년대말부터 엄청나게 커지자 기존 메이커들이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체에 30년 이상된 소위 ‘역사적인’ 자동차는 150만대가 넘게 굴러다니고 있다. 이는 물론 정식으로 등록된 숫자이고 등록하지 않았거나, 박물관에 있거나, 개인 차고에 있는 소장품까지 따지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의 연간 클래식카의 시장규모는 약 50억 유로(한화 약 8조 원), 유럽 전체는 약 160억 유로다.



해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매주 유럽의 각 나라 각 도시에서 펼쳐지는 각종 클래식카 전시회는 물론 올드 타이머 그랑프리, 클래식카 이벤트 등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비용, 클래식카의 유지·보수·부품거래·복원 등에서 파생하는 경제적인 효과는 결코 만만치 않은 액수다. 자동차메이커들이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2000년대들어 폭스바겐, 아우디, 오펠 등 유명 메이커들도 ‘테크노 클래식카’에 공식 등록하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그들의 ‘역사’와 ‘전통’을 마케팅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벤츠가 무려 4,000㎡에 달하는 공간을 확보해 클래식 벤츠의 모든 진수를 보여줬다. 시트로엥과 푸조, 르노 등 프랑스업체들도 참가해 4번홀 전체를 프랑스 클래식판으로 꾸몄다. 아마추어 클럽에서 시작한 벼룩시장 규모의 클래식 모터쇼가 이제 유럽의 유수 자동차산업체들이 본격 참여하는, 바야흐로 자동차판매에 새로운 시장으로 형성되는 중이다.



이탈리아 알파로메오는 올해 제네바에서 선보인 ‘8C 스파이더’ 의 본래 모델인 알파 8C2300 밀레 미글리아(이탈리아 북부지방의 1,000km를 도는 클래식카 랠리)와 알파 2900 룽고를 전시, 전통 클래식과 최신 모델을 함께 녹여 놓았다. 폭스바겐 역시 ‘시로코’라는 모토 아래 폭스바겐이 지난 74년부터 81년까지 생산한 스포츠 쿠페의 다양한 시로코 차종을 전시하며 제네바에서 발표한 신형 시로코 스포츠 쿠페와 연계시켜 소개했다. 소위 전통을 바탕으로 한 신형 마케팅 전략이다. 110마력짜리 시로코 GTI는 80년대 후반 독일 대학생들에게 꿈의 차였는데, 74년 데뷔할 때 스포트라이트와 기자들의 플래시를 받더니 34년만에 클래식 모터쇼의 스테이지에서 또 다시 스포트라이트와 플래시를 받았다. 시로코도 감격스러울 테지만 이를 지켜 보는 사람들 또한 감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벤츠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업체다. 특히 1993년 설립한 클래식센터와, 2006년에 문을 연 메르세데스 자동차박물관도 클래식카문화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이런 이유로 이번 쇼에는 1888년 세계 최초의 자동차를 만든 칼 벤츠의 부인 베르타 벤츠 여사가 오이겐과 리하르트 두 아들을 태우고 남편이 만든 벤츠차로 만하임에서 포르츠하임까지 100km를 문제없이 왕복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자동차가 비로소 교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했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강조한 셈이다.



자동차메이커만 클래식카 메세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클래식카 전문 부품업체는 물론 세계적인 자동차부품업체인 보쉬도 클래식 메세에 나왔다. 클래식카부품시장 역시 점점 커지는 추세여서 역사가 오래 된 보쉬로서도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비록 오래된 클래식 부품 매출액보다 문화컨텐츠 전략에 따른 미래의 이미지 구축에 더 관심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클래식 모터쇼는 단순히 오래된 중고차를 거래하는 장터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전통과 역사도 함께 거래하고 있다. 최신 모델의 이미지도 함께 구축한다. 바야흐로 자동차시장에도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시간을 공유하면서 같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자동차문화컨텐츠시대(CT)가 온 것이다. 역사가 깊은 벤츠나 포르쉐, 오펠, 폭스바겐, 시트로엥, 르노 등은 오래된 모델이 있으니 당연히 그렇다해도 창립된 지 30여 년이 조금 안된 스페인의 세아트나, 동구권이 개방되기 무섭게 폭스바겐에 합병된 체코의 스코다 등도 클래식 메세에 참가한 건 아무래도 신모델과 자사에 대한 미래 이미지를 구축하고 선전하기 위한 문화컨텐츠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클래식카는 단순히 지나간 구형 혹은 구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전통과 역사가 스며들어 인간의 추억과 함께할 때 더 높은 가치가 부여된다. 나아가 예술품이나 소장품 혹은 문화상품이 되고, 이러한 자동차문화상품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국내 자동차회사들은 이런 자동차 문화컨텐츠(ACT) 전략을 알고나 있을까.



이경섭 베를린 특파원 kslee@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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