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지루하고 팍팍할 때 이 곳에 가면 영화 속 세상이 펼쳐진다. 조선시대 왁자지껄한 장터와, 은밀한 눈짓과 낭자한 웃음이 오가던 홍등가며, 날 선 긴장감이 오롯이 느껴지는 판문점까지. 금방이라도 영화배우 송강호와 이병헌이 나타날 것만 같고, 지금 바로 천재화가 장승업으로 분한 최민식이 술병을 든 채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이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남양주종합촬영소다. 시나리오 한 권만 있으면 한 편의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는 이 곳은 2000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40만 평 부지에 3만 평 규모의 야외세트, 규모별로 다양한 6개의 실내 촬영스튜디오, 녹음실, 현상실, 디지털시각효과팀 등을 갖춘 이 곳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제작시설이다. 이곳의 첨단 디지털장비와 전문인력, 국제인증을 획득한 기술력은 한국영화를 세계적인 영화로 만든 숨은 주역들이다. <서편제>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취화선>… 등 한국영화 대표작들이 이 곳의 시설과 장비, 기술로 만들어졌다.
볼거리, 체험거리가 가득한, 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게 기다리는 이 곳에 연간 40여만 명의 관람객이 찾으면서 남양주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잡았다. 관람객들에게 공개되는 관람체험시설은 오픈세트와 실내에 위치한 전시시설이 있다. 야외 오픈세트는 총 3만 평 규모로 조성됐고 현재 판문점세트, 민속마을세트Ⅰ, Ⅱ 그리고 산 위에 있는 운당세트 등 총 4개다. 촬영소에는 커다란 공터 겸 주차장이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주차장으로 보이지만 이 곳에서도 수많은 영화세트들이 지어진다고 한다.
야외 오픈세트에서 가장 인기코스는 2000년 개봉해 한국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웠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무대가 된 판문점 오픈세트. 실제 판문점 크기의 85%로 축소한 이 세트를 제작하는 데 총 9억여 원이 들었다고 한다. 판문점은 크게 판문각, 회담장, 팔각정(자유의 집)으로 구성됐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외국인 관광객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군사분계선을 넘어 떨어지자 송강호가 먼지를 털어 건네주자 사진사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사를 이병헌이 막는 장면을 사진으로 재현하고 있다.
민속마을세트로 가면 19세기말 종로에 있던 저자거리를 재현해 놓았는데 기와집 26채, 초가집 35채로 총 61채의 가구가 세트라기보다는 하나의 마을처럼 구성됐다. 철저한 고증을 토대로 짓기 위해 5,000여명의 스태프와 한옥에 대한 문화재 기능보유자가 참여해 만든 이 세트는 영화 <취화선>을 찍기 위해 20여억 원을 투자해 짓게 됐다. <취화선>은 한국영화의 거장인 임권택 감독의 작품으로, 조선후기 천재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렸다. 이 밖에도 이 세트는 <토지> <다모> <해신> 등의 TV 사극을 비롯해 <왕의 남자> <스캔들> 등 여러 사극을 찍었다.
촬영소 산 정상에는 전통한옥세트 운당이 있다. 운당은 예전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던 ‘운당여관’으로, 바둑의 대국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지난 94년 이 곳 촬영소에 옮겨져 와 복원작업을 거친 후 정통 사대부들이 살았던 가옥으로 재탄생했다. 본채, 안채, 사랑채, 행랑채(2동), 별당, 문간채 등의 건축물과 우물, 장독대, 굴뚝 등의 부속 건물로 구성됐다.
실내 전시실로 자리를 이동하면 영화문화관, 영상원리체험관, 영상체험관, 의상소품실, 미니어처체험전시관, 법정세트 등의 관람체험시설과 매점, 식당, 사무실 등의 부대시설이 있다. 촬영소 전체를 관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30분 내외. 주말에는 최신영화 1편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031-579-0605
*맛집
남양주종합촬영소 안에는 식당이 없고 매점에서 라면과 빵류만 제공된다. 그러나 인근에 여러 음식점이 줄지어 이어진다. 추어탕 전문집인 개성집(031-576-6497)은 가마솥에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장작을 지펴 24시간 이상 조리, 진한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함경도동치미국수(031-591-4632), 종갓집(031-576-1101), 기와집순두부집(031-576-9009) 등은 모두 소문난 맛집들.
*가는 요령
서울에서 양평 방면으로 달리면 팔당대교 지나 양수대교 앞 진중 3거리에 이른다. 3거리 검문소에서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면 양평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가면 대성리 가는 길이다. 왼쪽으로 진입해 10분 정도 달리면 오른쪽에 대형 한식집 "종가집"이 나오고, 맞은 편 왼쪽으로 진입로가 있다. 왼쪽으로 진입해 약 2km 달리면 된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