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성호 최윤정 기자 = 한국소비자원이 1일 발표한 주요 생활필수품의 국내외 가격 비교 결과는 이들 품목의 가격 수준이 선진국이나 아시아 주요국에 비해 얼마나 높은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구매력 지수(PPP.Purchasing Power Parity)를 기준으로 따진 물가는 모든 품목에서 비교 대상 국가를 상회했다. 그 폭도 최대 119.8%에 달해 가격 차가 두 배 이상인 경우도 있었다.
◇수입車, G7보다 두 배 이상 비싸
조사 결과 선진 7개국(G7)에서 팔리는 수입자동차의 평균 가격(구매력 지수 기준)과 국내 판매가를 비교할 경우 국내 가격이 119.8%나 비쌌다. 구매력 지수를 기준으로 한 가격 비교는 쉽게 말하면 환율과 무관하게 실질 화폐 가치로 상품 가격을 비교한 수치다. 119.8%에 달하는 가격 차는 우리나라에선 수입차가 G7 국가보다 두 배 이상 비싸게 팔린다는 의미다. 휘발유 역시 G7과 비교할 때 구매력 기준으로 95.3% 비쌌고, 경유도 63.2% 비쌌다. 또 세탁용 세제는 77.4%, 수입 종합비타민은 70.2% 국내에서 비싸게 팔렸다.
이런 가격 격차는 평균 환율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대부분 크게 떨어졌다. 원화가 외화에 비해 평가절하돼 있는데다 G7에 들지 않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산출한 구매력 지수가 존재하지 않는 대만, 싱가포르, 중국, 홍콩 등의 가격이 포함되면서 변동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례로 수입차의 경우 평균 환율을 기준으로 가격을 비교하면 격차는 26.4%로 좁혀진다. G7에서 빠진 싱가포르 등 자동차 수입국의 비싼 수입차 가격에 환율 요소가 추가로 반영된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 대상 품목의 가격은 국내 물가 수준을 기준으로 할 때 크게 높은 것이다. 지난해 OECD 국가들의 평균 소비자 물가와 비교한 한국의 소비자 물가 지수는 76에 불과했다.
소비자원 정윤선 책임연구원은 "바꿔 말하면 국내 물가가 OECD 평균의 76% 수준인 게 정상이란 얘기"라고 말했다.
◇ 왜 비싼가
조사 대상 품목 11개 가운데 상당수는 수입품이다. 수입품의 경우 유통 마진 외에도 관세 등 각종 세금이 가격에 변수가 된다. 그러나 소비자원은 제조.수입업체들의 독점 또는 과점 구조도 한몫했다고 보고 있다. 이번에 조사 대상으로 된 품목들 중 일부는 최근 2년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이나 부당한 공동 행위 등으로 과징금 등 시정 명령 이상의 처벌을 받은 것들이다. 또 나머지도 국내외에서 가격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 있는 것들을 추렸다.
수입 자동차의 경우 한국의 세금이 비싼 것이 사실이다. 배기량 2천㏄를 기준으로 관세 8%에 소비세 24.3%를 합쳐 32.3%가 붙는다. 홍콩(0%)이나 미국(2.5%), 일본(5%)은 물론 프랑스(29.6%), 독일(29.0%), 이탈리아(30.0%), 영국(27.5%)보다도 비싸다. 여기에 고급 외제차를 선호하고 비쌀수록 좋은 차라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고가 마케팅을 조장한다. 유통 구조상 독점 수입권을 가진 수입업체가 딜러를 상대로 가격을 통제하기도 쉽다. 소비자원은 수입차의 유통 마진이 20∼45%이며 50%를 초과하는 경우도 있다고 분석했다.
휘발유.경유 등을 생산하는 정유업계도 SK, GS, 현대정유, S-오일 등 4개사 점유율이 98%에 달하는 과점 체제다. 세금도 차이가 있어 경유의 국내 세금(ℓ당 632원)은 G7 평균(ℓ당 559원)보다 높다. 최근 정부가 폐지키로 밝히긴 했지만 정유사-주유소 간 전속거래 등 유통 단계의 폐쇄성도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다.
◇ 가격 낮출 수 없나
이날 발표에 대해 당장 공정위가 칼을 빼들었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는 품목의 유통 및 판매업체는 별도로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다. 조사에서 담합 혐의를 적발하면 과징금이나 시정 명령.권고 등을 내려 간접적으로 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담합 혐의를 포착하지 못하면 이런 수단조차도 쓸 수 없다.
소비자원은 이에 따라 제조.판매업체 간 경쟁을 유발하거나 세금을 낮추는 방안을 해당 부처에 건의할 계획이다. 예컨대 종합비타민이나 화장품처럼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일반의약품은 여러 수입업체가 들여와 파는 병행수입제를 활성화하면 업체 간 경쟁 과정에서 가격이 인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유류, 골프장 그린피, 수입 자동차 등 외국에 비해 높은 세금이 붙는 품목들은 세율을 낮추고 설탕처럼 완제품을 수입할 때만 높은 관세를 물리는 품목도 합리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제품의 정유사-주유소 간 유통 장벽을 없애 가격 경쟁을 활성화하고 종합비타민의 판로를 약국 외 슈퍼마켓, 편의점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관련 부처에 건의하기로 했다.
박명희 한국소비자원 원장은 "독과점 시장과 수입 자동차, 수입 골프채 시장 등의 불공정 거래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시를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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