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백두산 천지에 올랐던 건 1996년이었다. 아니, ‘올랐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관광’을 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백두산 북쪽 관문인 북파지구에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폐차 직전의 토요타 SUV를 타고 천지 턱 밑까지 올라간 후 5분 남짓 걸어 올라가면 바로 천지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북파의 인접도시인 이도백하(二道白河)는 백두산 관광의 베이스캠프와도 같은 곳이다. 이 곳에서 북파로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조선족 처녀 가이드는 뛰어난 언변으로 우리 일행을 쥐락펴락했다.
“선생님들, 오늘 날씨가 무척 화창하지만 그래도 천지를 볼 수 있다고 장담은 못함네다”
천지를 본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던 우리 일행이 긴장하는 기미를 보이자 처녀 가이드는 씨익 웃음을 날리며 입을 열었다.
“3대가 공덕을 쌓아야만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기 때문임다. 중국의 주석 지앙제민(江澤民)이 세 번 백두산을 올랐지만 결국 천지를 못보고 하산한 일은 아직도 우리 연변서 회자되고 있슴다. 천지는 1년에 맑은 날이 30일 정도에 불과함다. 오늘 만약 선생님들이 선명한 천지를 보게 되면 그 30일 중에 하루를 빼내 쓰는 겁니다”
순박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그야말로 ‘구라빨’이 10단인 그녀는 좌중의 웃음이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의미심장한 퀴즈를 냈다.
“선생님들, 문제 하나 내겠슴다. 우리나라, 그러니까 남북한을 통틀어 5대 명산으로 손꼽는 산이 어디어딘 줄 아십니까?”
버스 안 여기저기서 대답이 쏟아졌다.
“백두산 한라산 금강산 설악산 지리산!!!”
피식 처녀가 웃었다.
“설악산은 감히 낄 수 없슴다.”
“아 그럼, 설악산 빼고 태백산!”
연변처녀는 제법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며 읊어나갔다.
“한반도 5대 명산은, 금강산, 한라산, 지리산.....구월산....그리고 묘향산임다.”
남한의 산들을 숙지하고 있던 일행에게 구월산, 묘향산의 등장은 묘한 감동을 주었다. 일행은 뒤늦게 아하, 감탄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한순간 연변처녀를 향해 소리쳤다.
“아니, 그런데 백두산이 왜 빠졌죠? 백두산이야말로 한반도의 첫째가는 명산 아닙니까?”
누군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백두산이 그 새 중국땅이 되었나?”
술렁거리는 우리 일행을 둘러보던 연변처녀가 근엄한 표정으로 일갈했다.
“백두산은 절대 명산이 아닙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임다!!!”
전율했다. 어떤 말로 이 보다 더 백두산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팔뚝에 오소소하게 돋는 소름을 문지르며 마침내 대망의 천지와 마주했을 때 호연지기(浩然之氣)란 바로 이 것이구나,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찬 넓고 큰 정기"라는 사전적 설명은 그야말로 사족이었다.
새파란 천지의 물빛을 보며 꼭 이 곳을 다시 찾겠노라, 다짐했던 그 날의 결심이 10년이 지나 뒤늦게 이뤄졌다. 이번에는 관광코스가 아니라 백두산 종주 트래킹으로 잡았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에 자리한 백두산은 서쪽과 북쪽은 중국 길림성에 속하고, 동쪽과 남쪽은 북한의 양강도에 속한다. 북한땅은 아직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중국땅인 북서쪽만 등정할 수 있다. 백두산 중국지역은 크게 북파와 서파로 나뉜다(파(坡)는 중국말로 "언덕"을 말한다).
지금까지 주된 코스는 북파(얼마 전 KBS 예능프로 <1박2일>도 이 곳에서 올랐다)로, 대부분 차로 이동하게 되는 관광코스 중심이다. 그러나 서파 코스는 중국측이 트래킹 코스로 개발하고 있다. 1995년부터 개발에 착수했던 중국 당국은 생태계 및 등산 전문가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접근을 허용하다 지난 98년부터 일반 관광객을 받기 시작했다. 16억8,000만 위안을 투입해 남파 코스까지 등산로 3곳을 모두 개발, 개통한 중국 당국은 최근 공항과 순환도로를 속속 완공하며 백두산 개발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아직까지 많은 관광객이 여전히 북파코스로 몰리고 있지만 백두산 종주 트래킹에 도전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백두산 종주 트래킹은 서파로 올라 북파로 하산하는 약 13km의 코스다. (계속)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