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을 출발해 중국 장춘공항 도착까지는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장춘에서 백두산 아래 송강하(松江河)까지 가는 데는 버스로 6시간 넘게 걸린다. 일반적인 백두산 관광코스는 이도백하를 베이스캠프로 하지만 서파-북파 종주를 계획하거나 남파코스를 찾는 이들은 송강하를 기점으로 움직인다.
우리가 잡은 일정은 남파 코스에서 천지를 먼저 알현하고, 그 다음 날 본격적인 서파-북파 종주 트래킹에 나서는 것이었다. 남파 코스는 작년 7월 개방돼 아직 관광객이 많지 않고, 주변 정리도 덜 된 어수선한 분위기다. 관광버스가 남파 산문까지 들어가고, 산문에서 또 1시간 정도 셔틀버스를 타고 가면 거의 천지 높이에 있는 산상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평지에 가까운 길을 100~200m 남짓 걸어가면 4호 경계비가 있는 천지와 만난다.
남파 산문에서 출발 때부터 우리 차를 휙휙 앞지르며 가파른 길을 시속 120km가 넘는 속도로 달려대던 중국 공안차가 얼마 후 결국 길 아래로 나뒹그러진 모습을 보여줬다.
“어휴, 저런. 많이 다치진 않았어야 할 텐데”라고 걱정하는 우리 일행과 달리 가이드와 운전자는 "고거 쌤통"이라는 표정이었다. 이유인즉슨, 공안들이 평소 너무 설치고 지독하게 굴기 때문에 어떤 응징이든 "니들도 한 번 당해보라"는 것. 푸훗, 얼마나 지독하게 굴었으면.
쾌청한 날씨 속에 모습을 드러낸 천지는 역시나 압도적인 모습이었다. 사진으로 보는 천지와 실제 모습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수치로 표현되는 천지의 규모는 둘레 18.7km, 호수폭은 남북으로 4.85km이고 동서로 3.35km, 면적 21.4㎢(수면 면적 9.8㎢)에 평균수심 213.3m의 호수다.
이런 수치로 막연하게 그 규모를 짐작해보는 것과 달리 눈 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천지의 모습은 상상을 넘어선다. 생각해보라. 해발 2,500m 이상의 산봉우리가 한둘도 아닌, 무려 16개나 되는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거대한 호수의 모습을.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의 푸른 물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이 끌어당기는 듯한 착각마저 인다.
천지에 대한 한국인들의 남다른 정서를 극도로 싫어하는 중국인들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천지에서 갖는 크고 작은 이벤트를 철저히 금지시킨다. 크고 작은 깃발이나 플래카드 한 장도 가방에서 꺼내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는 천지에서 좀 오랜 시간 머무는 것도 허용치 않고 ‘앉아 버티기’를 금지한다는 팻말을 세워 놓았을 정도다.
아직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인지 남파 코스 천지 조망대에는 경계를 서는 군인들의 간섭이 심하지 않고, 한쪽에 향을 피우는 제단도 조촐하게 마련돼 있다. 내일 서파-북파 종주 트래킹을 부디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빈 후 천지를 내려오는 길에 압록강 대협곡이 발길을 잡는다. 기묘한 용암지역이 협곡을 이룬 건너편은 북한땅이다. 저지대로 내려오면 나무가 땅에 묻혀 숯이 된 탄화목(炭化木)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아직 서파나 북파 코스에 비해 볼거리가 부족해서인지 남파 코스는 압록강 래프팅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었다. 압록강 상류에 해당하는 물줄기를 타고 남문까지 내려가는데, 이 물줄기가 북한과의 국경선인 셈이다. 2인용 고무보트가 강안(江岸) 이쪽저쪽을 부딪치며 내려오게 되니 중국과 북한을 왔다갔다하는 형국이다.
이튿 날, 종주 트래킹의 기점이 되는 서파 주차장에 도착했을 땐 암담했다. 비바람과 안개로 인해 1,236계단을 올라 5호 경계비가 있는 천지까지 가는 일도 힘들었다. 한쪽에서는 산행을 포기하자는 말이 나왔고, 여기까지 왔으니 죽든살든 가보자는 의견도 많았다. 바람에 비옷이 찢길 듯 부풀어 오르는 5호 경계비 앞에서 결국 마천우 - 청석봉 - 백운봉 - 녹명봉 - 용문봉으로 이어지는 트래킹 코스로 발길을 옮겨 놓았다.
서파는 완만한 구릉지와 고산지대를 이루고 있어 최적의 트래킹 코스로 손꼽힌다는데 우리에겐 최악의 상황이었다. 광활한 초원지대에 지천으로 폈다는 야생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개는 그 모든 걸 다 덮어버렸고, 줄곧 앞사람의 엉덩이만 보며 혹시나 일행을 놓치지 않을까 기를 쓰고 걸어야 했다. 그나마 농담을 주고받던 여유는 백두산 종주 코스 중 가장 힘든 코스라 손꼽히는 백운봉을 오르며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누구도 입을 여는 이가 없었고, 거센 바람에 몸이 날아갈까 최대한 공기저항을 줄인 자세로 산을 기어올랐다.
어떻게 그 봉우리들을 거쳐 왔는지 몰랐다. 10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조선족이 운영하는 길가 매점에 들어섰을 땐 온몸의 감각이 모두 얼어붙은 듯했다. 입이 얼어붙어 말을 못하고 덜덜거리는 일행에게 매점 주인은 따뜻한 커피와 컵라면을 내놓았다. 무려 다섯 잔의 커피를 마시고서야 겨우 입이 떨어지는 우릴 보고 매점 주인은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른 등산로에서 산사태가 나 등산객 2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게 아닌가. 그 말에 겨우 녹는 듯하던 몸이 다시 얼어붙고 말았다. 불과 좀전까지 우리가 벌였던 그 혼미한 사투가 떠올랐기에.
하지만 북파 주차장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할 때 누군가가 살며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우리 내년에 꼭 다시 백두산에 옵시다. 그 땐 달문에 가 천지물에 손도 담그고”
그렇게 백두산은 여전히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