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순수하게 일정한 시간 내 걸을 수 있는 시공간적인 범위를 "1차 모빌리티"라고 한다면, 보조수단을 사용해 행동반경을 확대한 게 "2차 모빌리티"랄 수 있다. 현실적으로 2차 모빌리티의 대부분은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에도 자동차는 2차 모빌리티를 지탱하는 수단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게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자동차도 인간과 환경을 위한 것만이 살아남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더욱 안전한 차, 타기에 편리한 차, 훨씬 경제적인 차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더불어 환경을 위해서는 배기가스가 없는 무공해차, 소음이 나지 않는 무소음차 그리고 자연생태계를 깨뜨리지 않는 에너지자원 사용이 가능한 차 등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동차 수요증가와 정비례해 늘어나는 배기가스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책은 아직 신통치 않다. 그런데다 화석연료는 연소할 때 발생하는 탄화수소 및 질소화합물같은 유독성 물질 외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이산화탄소가 온도와 기후변화에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아직까지 현대문명 그 어떤 첨단 기술도 오염된 환경문제를 단시간 내 완벽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부분적이나마 환경문제를 지연시키는 쪽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동차회사마다 친환경차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모든 친환경차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전기모터로 구동되는 전기차라는 점이다. 수소차, 연료전지차, 태양광차, 전기차 등 환경친화적인 여러 자동차는 모두 바퀴를 움직이는 데 전기모터를 쓴다. 따라서 구동방식으로 보자면 친환경차는 전기차라는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전기차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전에 시작됐다. 전기모터는 자동차가 처음 발명됐을 당시부터 바퀴를 굴리는 동력원으로, 가솔린기관의 경쟁상대로 등장했다. 낮은 모터회전수에서 높은 회전력(토크)을 얻을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어 자동차를 움직이는 데 매우 이상적이었다. 회전수 대 토크의 이상적인 분배특성 상 전기모터는 다른 동력전달장치인 클러치나 변속기 등이 필요치 않았으나 휴대의 불편함으로 인해 결국 가솔린 내연기관에게 자동차 심장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세계적인 스포츠카 포르쉐를 처음 만든 페르디난트 포르쉐도 처음에는 전기모터를 얹은 포르쉐를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에 배터리는 물론 전기모터도 효율이 지극히 낮아 출력면에서 도저히 내연기관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전기모터는 크기가 작아지면 에너지의 입력 대비 출력효율이 내연기관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문제를 지녔다. 이런 결정적 단점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쉽게 보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어떻게 공급할 것이냐의 문제였던 셈이다. 즉 휘발유나 경유와 같은 화석연료와 달리 지속적인 공급과 휴대의 자유도가 심하게 떨어져 실용화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때마침 석유 정제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기화기와 점화플러그 및 배전장치 등이 연이어 개발되면서 내연기관 효율이 크게 향상되는 바람에 피스톤 왕복기관은 자동차의 동력기관으로서 전기모터를 제치고 확고히 자리잡게 됐다.
반면 기차의 기관차와 같이 중량이 큰 이동체들은 낮은 회전수에서 높은 회전력을 내는 전기모터를 많이 사용했다. 주행저항을 내연기관보다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어 일찍부터 독점적으로 적용됐다. 흔히 알고 있는 디젤기관차는 디젤엔진이 직접 기차바퀴를 굴리는 게 아니라 디젤엔진이 발전기를 돌리고, 발전기가 만든 전기에너지가 전기모터를 구동해서 기차바퀴를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관차의 디젤엔진은 일반적으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에너지를 얻기 위한 것일 뿐, 일반 자동차에서처럼 클러치나 기어박스를 통해 직접 바퀴를 굴리는 원동기는 아니다. 예외적인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현재 유럽에서 운행되는 대부분의 기차는 전기기차, 즉 전철이다. 한 번에 많은 사람과 물자를 운송할 수 있어 기차는 자동차에 비해 전체적으로 운송효율이 높다. 그러나 정해진 선로만 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자동차에 비해 모빌리티의 자유도는 떨어진다. 그래서 기차와 자동차는 경제적, 환경적 그리고 시간적인 측면에서 상황에 따라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어쨌든 최근 전기차가 새로 조명받게 된 건 공해문제 한 가지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석유매장량이 한정돼 있다는 정보도 유가를 올리는 데 한 몫했지만 작금의 유가는 다분히 정치적인 그리고 다른 경제적인 요소로 급등하고 있어 향후 자동차연료로서 공급과 수요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당연히 수요자들은 석유를 대신할 다른 대체재를 찾게 되고, 대체재로서 전기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전기차는 여러 대안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이다.
자동차메이커들은 수요자가 원하는 대로 제품을 개발하므로 유가가 오르고, 사용자가 석유 대체재로 전기에너지를 쓰게 된다면 시장법칙에 따라 전기차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기차는 아직도 상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있다.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와 전기모터의 성능이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되긴 했지만 피스톤 왕복기관을 압도하진 못한다. 전기에너지를 전선이 없는 상태에서 손실없이 저장하고 안전하게 운반하는 문제도 아직까지는 배터리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어, 배터리의 성능과 재충전시간에 따라 자동차의 성능과 운행범위가 결정된다.
배터리가 무겁고 비싼 것도 큰 단점이다. 배터리를 재충전할 수 있는 충전소와 재활용 시스템 등 사회적 인프라가 취약한 것도 전기차 실용화의 걸림돌이다. 사회적 인프라로부터 자유로운 방식의 전기차 개발도 진행되고 있는데, 수소와 산소를 화학적으로 결합해 물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전기에너지를 얻는 연료전지 시스템이 결국 배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연료전지 시스템 역시 실용화까지는 해결해야 할 경제적, 기술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다.
현재 전기차는 생산방식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 째는 자동차생산업체가 만든 산업(인더스트리)형이고, 다른 하나는 여타 군소업체에서 수요에 따라 생산하는 비산업(논비인더스트리)형이 그 것이다. 비산업형 전기차는 기본 섀시에 플라스틱이나 합성수지 등으로 보디를 구성해 차체가 가벼워 운행범위와 출력성능은 뛰어나지만 수동안전도와 편의성 등이 결여돼 공장이나 공항 등 실내에서 주로 이용한다.
산업형 전기차는 다시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미 판매되는 자동차에서 자동차의 동력원을 전기모터로 변환한 컨버전 디자인과, 처음부터 새롭게 개발하는 퍼포즈 디자인이 그 것. 컨버전 디자인은 기존 양산차의 섀시와 보디를 그대로 쓰기에 수동안전도와 각종 편의장치 및 구성부품에 대한 연구개발비와 시간을 줄일 있는 반면 획기적인 배터리 개발이 없는 한 단시간 내 출력성능에 대한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양산을 목표로 하는 메이커는 늘 경제성을 따진다. 아직 전기차의 경제성이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우수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기에 양산회사들이 ‘보이지 않는 손’을 잡자고 불쑥 시장에 먼저 전기차를 내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양산업체보다 오히려 소규모 명품 자동차업체가 먼저 전기차시장에 불을 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출시되는 인더스트리형 전기차는 일단 고가품이 된다. 고가품이 아니더라도 배터리에 의존해야 할 상황이어서 개척자 정신 혹은 환경에 대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적인 사고방식이 없는 사용자에게는 판매가 어렵다. 따라서 양산메이커들은 일정량을 정책적 혹은 정략적 차원에서 정부 혹은 일정한 환경업체 등이 먼저 구매해 시장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 것을 시장경제 시스템에 불을 질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나 관련 단체들은 자발적인 고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자발적 고객은 남보다 한 발 먼저 타려는, 그러면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 의식과 환경의식이 철저한 상류층이나 자동차마니아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최근 독일의 슈퍼 스포츠카 제작업체인 루프나, 미래의 자동차 제작업체인 제트카 등 최고급 맞춤형 승용차나 스포츠카를 주문생산하는, 소위 명품 자동차회사들이 이미지를 높이고 매출을 위해 전기차 출시를 준비중이다. "꿈의 차"를 전기에너지로 가장 먼저 폼나게 타겠다는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마케팅이야말로 전형적인 명품마케팅이다. 이들 회사는 개발단계부터 고객들과 끊임없이 피드백을 유지하고 있는데, 시장반응은 의외로 긍정적이다. 상류층도 환경친화에 앞장설 수 있다는 솔선수범의식과 더불어 이미지 개선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는 어렵겠지만 언제나 혁신에 의한 명품 이미지를 확고히 유지하겠다는 게 이들 업체가 내세우는 공식적인 이유다. 그 이면에는 어떠한 경제지표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이미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이경섭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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