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자동차가 최근 출시한 대형 세단 베리타스를 탔다.
라틴어로 "진리"라는 의미를 이름에 담고 있는 베리타스는 이전 실패를 경험한 대형 세단 스테이츠맨의 후속모델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불리는 것처럼, 스테이츠맨의 뼈아픈 교훈 덕분에 베리타스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실제 GM대우는 베리타스의 주력 개발처인 호주 홀덴의 대형 세단 프로젝트에 일찌감치 참여했다. 드넓은 평원에 익숙한 호주의 자동차문화와 달리 주차장 하나 확보하기 쉽지 않은 국내는 차원이 너무 달라서다. 그 결과 베리타스는 스테이츠맨이 지닌 "국내 대형 세단으로는 유일하게 전동접이식 아웃사이드 미러가 없는 차"에서 탈피했다. GM대우 개발진이 처음부터 참여해 한국에 들여 올 베리타스의 각종 편의품목을 담아냈다는 얘기다.
▲스타일
외관은 베리타스의 가장 큰 변신이다. 스테이츠맨이 지나치게 역동성이 부각된 모양이었다면 베리타스는 중후함이 녹아 있다. 특히 좌우 펜더의 볼륨은 직선을 사용한 앞모양과 어울려 강인함을 보인다. 앞으로 돌출된 범퍼가 든든한 느낌마저 준다. 대형 세단이 갖춰야 할 중량감과, 보는 이를 압도하는 품격이 제대로 표현됐다는 생각이다.
측면은 유려하다. 앞에서 시작된 선이 물 흐르듯 뒤로 흘러넘어간다. 지나치게 유려할 수 있는 모습을 짧은 오버행이 역동적 개성으로 이끌어낸다. 대형 세단의 오버행이 점차 짧아지는 추세를 적극 따른 듯하다. 사이드 캐릭터 라인도 크게 튀지 않고 은은해 보여 잔잔함을 풍긴다. 펜더 위 LED 타입의 방향지시등은 고급스러움에 정점을 찍었다. 마치 인품 높은 최고경영자의 날카로운 분석력을 보는 것 같다. 뒷모양은 무난하다. 그러나 번호판 부착 부분까지 크롬처리한 건 거슬린다. 지나친 기교가 오히려 품위를 떨어뜨리는 느낌이다.
인테리어도 고급스럽다. 물론 요즘에는 경차도 실내 고급화가 추세인 만큼 대형 세단이 고급스럽다는 건 기본이다. 특히 4개로 분리된 계기판은 고급스러움과 역동성을 동시에 표현한다. 하지만 맨 우측에 자리잡은 연료계는 스티어링 휠 가장자리에 살짝 가려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크게 신경쓸 부분은 아니지만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은 간섭이 별로 없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감안할 때 약간 운전석쪽으로 기울여 놓았으면 더 좋았겠다.
스티어링 휠에는 GM대우가 아닌 베리타스 로고가 새겨져 있다. 엠블럼과, 뒤에도 베리타스 로고가 붙어 있다. 브랜드 차별화를 위한 노력인데, 적절한 선택이다. 물론 베리타스가 GM대우차라는 건 알려져 있으나 국산 대형 세단 모두가 제조사보다 해당 차종의 브랜드가 더 강조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업 브랜드와 제품 브랜드가 반드시 같아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이다. 단적인 예로 쌍용차와 체어맨W의 브랜드 이미지가 일치하는 건 아니다.
계기판 중앙에 위치한 푸른 조명의 트립컴퓨터 모니터는 눈에 잘 들어온다. LCD 모니터를 중심으로 좌우 로직 타입의 스위치 배열이 가지런한 센터페시아도 흠잡을 데 없다. 로터리 타입의 공조 조절레버와 함께 간결함이 돋보인다. 물론 외관과 인테리어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영역이지만 운전석에 앉아 손을 뻗었을 때 스위치가 잘 조작되는 지, 레버와의 거리는 멀지 않은 지도 매우 중요한 기능적 측면임을 고려하면 베리타스의 실내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다만 호주가 개발을 주도한 탓에 국내 다른 대형 세단과 달리 조작스위치의 배열이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창문을 열고 내리는 버튼은 도어가 아니라 변속레버 뒤에 있다.
뒷좌석에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있다. 천장에 LCD 모니터로 DMB TV와 DVD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조작도 뒤에서 직접 가능하다. VIP를 위한 배려인데, 덕분에 베리타스의 성격이 운전자 중심의 하이오너 세단과, 뒷좌석 VIP를 편안히 모시고 가는 쇼퍼 드리븐의 퓨전임을 알 수 있다. 즉 하이오너에 기반을 둔 쇼퍼 드리븐 겸용이라는 얘기다. 모든 게 운전자 중심으로 배열돼 있음을 보면 하이오너 세단이지만, 프라이버시 글래스와 2인승 전용 뒷좌석 그리고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쇼퍼 드리븐의 요건이기 때문이다.
▲성능
베리타스에는 호주 홀덴이 개발한 V6 3.6ℓ 얼로이텍 엔진과 5단 자동변속기가 결합돼 있다. 최고출력 252마력과 34.0㎏·m의 최대토크를 낸다. 국내 동급 대형 세단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 대형 세단에서 중요한 건 주행할 때의 가속감과, 엉덩이로 느껴지는 승차감 등이다. 더불어 차값과 직결되는 각종 편의기능도 따져봐야 한다.
먼저 주행성능은 무난하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묵직한 반응이 전달된다. 반응이 늦기는 하지만 일단 움직이면 배기량에 어울리는 힘을 낸다. 그러나 가속할 때의 엔진소리는 약간 거칠다. 국내 개발진의 조언이 엔진쪽에선 잘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 반면 핸들링과 승차감은 뛰어나다. 묵직한 핸들링을 통해 차를 움직이면 앞뒤 서스펜션이 즉각 반응하면서 차를 제어한다. 약간 단단하게 세팅된 서스펜션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칭찬해주고 싶다. 특히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의 충격흡수능력은 인상적이다. 뒷바퀴가 방지턱을 넘은 뒤 발생하는 2차 충격을 거의 잡아낸다. 국내 대형 세단 소비자도 점차 단단함쪽에 무게를 두는 추세에 비춰 적절한 판단이다.
▲경제성
베리타스와 같은 대형 세단은 가격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차종이다. 그러나 GM대우는 호주 내 판매가격보다 오히려 국내 판매가격을 더 낮췄다. 국내에서 많이 팔아보겠다는 전략적인 가격정책인 셈이다. 최근 비싸지는 자동차가격 트렌드에 비춰 보면 의외다.
여기에다 넓은 실내공간과 트렁크룸은 분명 장점이다. 물론 대형 세단에 8단 변속기가 탑재되는 세상에 하필 5단이냐는 불평이 있지만 대형 세단 소비자 입장에선 아직은 구입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아니다. 타는 사람 입장에선 얼마나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잘 표현해하는 스타일과 브랜드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몇 가지 개선 여지가 있지만 베리타스의 스타일은 일단 합격점이다. 누가 봐도 중후함이 느껴진다. 우측 핸들인 호주의 자동차문화가 일부 담겨 있어 생소한 부분도 있으나 기본적인 제품력은 스테이츠맨에 비해 훨씬 강해졌다.
이런 이유로 베리타스의 성공 여부는 기업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 스테이츠맨으로 추락한 GM대우의 대형 세단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4,650만원(디럭스), 5,410만원(프리미엄), 5,780만원(럭셔리)의 돈을 쓸 때는 제품력 외에 여러 가지를 동시에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시승 /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사진 / GM대우자동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