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춥다. 지난 며칠 갑자기 추워진 날씨처럼 수입차시장에 불어닥친 한파는 상상 이상으로 매섭다. 고환율에 경기침체까지 겹쳐 수입차업계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들 "죽겠다"는 말이 입에 붙어버린 요즘이다.
평일, 벤츠를 판매하고 있는 서울 강남의 A전시장을 찾았다. 이 곳은 11월들어 판매실적이 30~40% 급감했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BMW의 B전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들 전시장 관계자는 "고가 차종이 많은 벤츠나 BMW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며 자위했다. 경기불황을 크게 타지 않는 구매층이 일정 수 있어서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얘기다. 주력 판매차종이 3,000만~5,000만원대인 모 브랜드는 판매실적이 60% 이상 떨어졌다.
올들어 수입차시장 판매 1위를 달리는 혼다코리아는 얼마 전 전국 딜러들을 모아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10월 판매실적이 전월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서다. 마라톤회의 결과 나온 대책은 뾰족한 게 없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무슨 수가 있겠느냐"며 "대대적인 할인 프로그램을 선보여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나타난 현상이다. 돈을 빌려줘야 할 금융업체들이 자금이 부족하다보니 현금확보를 이유로 대출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대출이용자들의 신용등급 요건을 대폭 강화하거나, 아예 할부금융 자체를 중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래서 차를 사고 싶은 사람은 많아도 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출시한 아우디 뉴 A4를 구입할 계획이었던 김경룡(39) 씨는 "새 차가 마음에 들어 구입을 결정했지만 대출이 안된다고 해 황당했다"며 "그렇게 신용도가 나쁘지 않은데도 대출을 거절당하니 기분도 나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새 차를 사려면 타던 차를 처리해야 하는데 중고차시세가 너무 떨어져 새 차 사는 일을 아예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자체 캐피탈업체를 보유한 벤츠, BMW, 렉서스, 인피니티는 그래도 어려움이 덜했다. 반면 전적으로 외부 캐피털업체를 이용해 온 아우디, 폭스바겐, 볼보, 혼다, 푸조, 포드 등은 된서리를 맞고 있다. 자체 캐피탈업체를 가진 브랜드들마저 시간이 지날수록 대출이용자의 신용을 까다롭게 심사하기 시작했다. 다른 수입차 브랜드 구입자에 자금을 빌려줬던 BMW파이낸셜코리아마저 이제는 자사 브랜드 중고차 구입자에 대해서까지 대출을 중단했다.
한 회사의 고위 임원은 "차를 파는 일보다 대출이 되는 업체를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며 "예전엔 캐피탈업체들이 서로 자기네 돈을 쓰라며 로비를 벌였는데 이제는 그들이 갑이 됐다"고 허탈해했다.
현재는 신용도가 뛰어나게 좋지 않을 경우 자동차를 현찰로 구입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금방 경기가 살아나 대출이 활성화되는 상황을 바라는 건 바보같은 일이 됐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까. 딜러들 중 일부는 경기 회복시기를 내년 상반기로 보는 희망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딜러들은 내년 하반기 또는 내후년 상반기를 회복기로 보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그 때까지 허리띠 잔뜩 졸라매고 버텨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한 수입차 영업사원은 “우리는 판매실적이 있어야 수입이 생기는데 거래 자체가 끊겼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3일동안 매장을 방문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라고 걱정했다. 그는 그러나 “몇년그 동안 수입차시장은 르네상스라고 말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며 "세계 금융위기로 불황이 찾아오기는 했으나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열심히 뛰다 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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