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 맞서 걷는 한국판 '산티아고의 길'

입력 2008년12월05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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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앵자산
혹독한 경제한파 속에 몰아닥친 추위가 여느 때보다 맵다. 옷깃을 단단히 여며도 시린 가슴을 가진 이가 어디 한둘일까. 가슴팍을 파고드는 칼바람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움츠리다 문득 그 바람과 맞서고 싶은 오기가 생긴다. 이럴 때 200여년 전, 모든 고난을 감수하고 묵묵히 순교의 길을 걸었던 순교자의 삶을 따라가보자.



겨울바람을 뚫고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 성지를 찾아가는 길은 한국판"산티아고의 길"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스페인어로 "산티아고(야곱의 스페인어)의 길"이란 뜻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자 첫 순교자인 야곱을 기리며 순례자들이 걷는 길을 말한다.

낙엽 위에 쌓인 눈


천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이 걸었고, 지금도 걷고 있는 이 길은 파울루 코엘류가 쓴 소설 <순례자>와 <연금술사> 덕분에 더욱 유명해졌다. 과거엔 종교적인 이유로 걷는 순수한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현재는 스페인의 문화와 자연을 즐기거나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이 길을 걷는 이들이 많다.



눈발도 녹이는 순례자의 길
경기도 광주군의 앵자산(676m)은 아름다운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산세를 가졌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심산유곡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곳 앵자봉 아래는 우리나라 천주교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천진암은 원래 단군 영정을 모시고 산신제, 당산제 등을 올리던 작은 사찰이었다.



조선 정조 2년(1779년) 신학을 연구하던 서학파 권철신-일신 형제와, 정약전-약종-약용 3형제, 이승훈 등 젊은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연구하며 강학회(講學會)를 가졌다. 그러던 중 조선천주교회 창설단원 중 한 사람인 이 벽이 합류해 북경에서 가져온 과학서적과〈천주실의〉, <성리진전> 등을 소개하면서 그들은 천주교에 눈을 뜨게 됐고, 천주교에 대한 관심이 학문적 지식에서 종교적 신앙으로 전환됐다.

다섯 성현의 묘역


그 뒤 천주교 박해로 폐허가 된 천진암은 오랜 세월 속에 묻혔다가 1962년 남상철에 의해 사지(寺址)가 확인됐다. 이후 1978년 천진암강학회기념사업회가 조직돼 본격적인 조성작업에 들어가면서 경기도 포천에서 발견된 이 벽의 무덤을 이 곳으로 이장한 데 이어 1981년 초기 한국천주교의 기둥이었던 순교자 정약종, 권철신-일신, 이승훈의 묘가 차례로 옮겨져 이 벽 곁에 묻혔다. 조선교구설립자 묘역에는 정하상, 유진길 및 한국 천주교회 창립선조들의 직계 가족인 정약전, 정지해, 이 석 등 선인들의 묘가 안장돼 있다.



대성당 건립터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시 200주년을 맞아 유적지에 대한 대대적인 성역화사업이 추진되면서 현재 이 곳에는 강학회가 열리던 천진암 계곡 입구에 강학기념비가 서 있다. 또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원, 성모경당(1,000여명 수용), 광암성당(200여명 수용) 등이 완공돼 순례단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한국천주교박물관(1,500평)은 기초공사가 완료된 상태다. 특히 한민족 100년 계획으로 짓고 있는 천진암 대성당은 건축허가가 완료돼 기둥 2개가 착공되고 있다. 30여만평 성역에 3만여평의 대성당 건립터에서는 매년 수만명의 신도들이 모여 한국 천주교회 창립기념행사를 거행한다.



매서운 칼바람도 앵자봉 계곡으로 접어들면 한결 수굿해진 느낌을 준다. 이 곳에 잠든 순교자들의 삶을 떠올리면 바람조차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것일까. 흩날리던 눈발도 녹이는 붉은 낙엽이 깔린 순례자의 길을 따라 오르면 200여년 전, 강학회 때 참석자들이 마셨다는 샘물이 지금도 솟아나고 있다.

마르지 않는 샘물


*맛집

붕어찜으로 유명한 분원리마을이 천진암 가까이 있다. 40여개에 이르는 붕어찜 전문식당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천진암 4거리에서 양평 방향 고개 넘어 왼쪽에 있는 흙토담골 퇴촌점(031-767-2855)은 외관부터 분위기가 멋진 한정식집이다. 두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이 방과 대청마루로 이어졌고, 거기에 걸맞게 잘 꾸며진 정원도 볼만하다. 간장게장, 더덕구이 등 30여 가지 반찬을 곁들이는 토담골 정식은 제대로 된 한정식 밥상을 보여준다.

천진암 가는 길목의 유원지


*가는 요령

중부고속도로 광주(경안)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45번 국도를 타고 양평 방향으로 향한다. 도마리 3거리에서 우회전해 88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광동교를 건너 도수초등학교 4거리에서 직진, 천진암에 이른다. 광동교에서 천진암까지 9km 남짓.

천진암 성지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한국 천주교발상 기념비
한적한 드라이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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