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이 불면 그를 기억하리라

입력 2009년01월09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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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
오늘따라 아랫목이 유난히 뜨끈뜨끈하다. 손돌은 온몸으로 퍼지는 온기를 즐기며 뜨거운 아랫목에 이리저리 몸을 지진다. 소설은 지났지만 아직 한겨울 매서운 추위는 닥치기 전이다. 그래도 해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는 한겨울이 따로 없다. 더욱이 마지막 뱃길을 오갈 때면 하루종일 파도에 젖은 바짓가랑이가 해풍에 얼어붙어 서걱대는 바람에 삿대질을 하기가 더욱 고통스럽다. 그런 까닭에 지금 이 아랫목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달콤하다.



"에그머니나! 뉘....뉘시요?"



얼핏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군불을 떼고 있던 늙은 어미의 소스라치는 목소리에 손돌은 깜짝 잠이 깼다. 요근래 몽고군이 출몰해 재산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끌고 간다는 풍문이 돌긴 하지만 설마 이 외진 곳까지 쳐내려 오진 않았을 터인데. 손돌은 왈칵, 여닫이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심상찮은 차림새의 일행이 좁은 마당을 꽉 채우고 있었다.



"니놈이 강화만을 오가는 사공놈이냐?"

포대 너머 강화만
"그...그런댑쇼"

"지금 당장 배를 띄우거라"

"예엣? 지금 배를 띄우라굽쇼? 나으리, 무슨 일인진 모르오나 오늘밤은 절대 아니 되옵니다. 바람이 거세 자칫하단…"



순간 서늘한 기운이 목덜미에 와 닿았다. 기골이 장대한 사내의 장도가 어느 틈에 칼집을 빠져나와 그의 목덜미를 겨냥하고 있었다.



"어허! 칼을 거두시오. 지금 저 사공의 목을 자르면 누가 삿대를 잡을 것이오?"

손돌묘


눈썹까지 하얗게 센 늙은이가 막아서자 사내는 마지 못해 장도를 거둬 칼집에 넣었다.



"이 근방에선 자네가 강화만의 물길을 가장 잘 다룬다고 들었네. 화급한 일이니 앞장서게"



더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음을 알았다. 군졸 둘이 다가와 손돌의 양팔을 포박하듯 낚아채어 앞장섰다. 허우적거리며 잡혀가는 아들의 손에 늙은 어미가 쫓아와 바가지 하나를 건넸다.



전시관
캄캄한 밤바다는 파도가 칠 때마다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는 듯했다. 손돌은 미친 말처럼 날뛰는 파도를 피해 삿대를 저어 나갔지만 배는 심하게 흔들렸다. 황금빛 옷을 입은 사내와 장옷을 덮어쓴 여인이 비명을 질러대자 주변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머릴 조아려대며 어쩔 줄 몰라했다. 파도는 더욱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 파도를 뚫어야만 무사히 강화도에 도달할 수 있다. 손돌은 어금니를 물고 파도 속으로 배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저 불경스러운 놈! 파도 속으로 배를 몰아넣다니. 저 자는 분명 나를 없애려는 놈이 틀림없다. 저 자의 목을 당장 베어라!!"



황금빛 옷을 입은 사내가 분기탱천한 얼굴로 소리치자 무리 중 하나가 쏜살같이 손돌에게로 향했다. 순간 손돌은 자신의 목덜미에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감을 느꼈다. 그 와중에 허리춤에 차고 있던 바가지를 바다로 던지며 손돌은 말했다.



"제가 죽더라도 저 바가지를 따라 배를 몰아가시면 무사히 강화도에…"

불씨 보관하던 파수청


손돌이 띄워 놓은 바가지를 따라 파도 속을 뚫고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한 일행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그 일행은 바로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피난간 고려 고종의 행렬이었다.



덕포진 끄트머리, 강화만을 바라보는 곳에 있는 한 구의 무덤을 보며 혼자 떠올려 본 생각이다. 손돌의 무덤이다. 뒷날 고종은 후하게 그의 장사를 치르게 하고 사당을 세워 억울한 그의 넋을 위로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의 넋은 위로가 됐을까.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인적 드문 덕포진에 서서 손돌의 그 심정을 헤아려본다.



후세 사람들은 손돌의 목이 베인 뱃길목을 "손돌목"이라 부르고, 또 손돌의 기일(음력 10월20일)이 되면 그의 원혼이 바람을 일으킨다 하여 "손돌바람"이라 부른다. 조선시대말까지 손돌의 넋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다가 일제강점기동안 중단됐으며, 1970년부터 다시 지냈다. 1989년부터는 김포문화원이 주관해 손돌의 기일인 음력 10월20일에 진혼제를 지낸다.



입구 맛집
김포시 대곶면에 있는 덕포진은 조선시대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때 서구 열강과 치열하게 맞서 싸웠던 격전지다.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손돌목은 천혜의 지형을 이용한 군사의 요충지로 역사적 가치와 유물사적 의의가 크다. 1980년에 발견해 옛모습대로 복원했다. 당시 탄약고 및 포대에 불씨를 공급하기 위한 불씨 보관장소 파수청지를 발굴했고 소포, 중포, 포탄 및 상평통보를 출토했다. 당시 발굴한 6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5문, 덕포진 전시관에 1문을 보관중이다.



*맛집

가까운 대명포구로 나가면 싱싱한 해산물 요리가 기다린다. 덕포진 진입로 좌우에도 간장게장, 꽃게탕을 전문으로 하는 소문난 음식점이 즐비하다. 하얀 함선 모형의 라이브 카페 ‘바다향기’는 덕포진의 이정표 구실을 하기도.



*가는 요령

서울에서 공항동 4거리나 행주대교 남쪽 올림픽대로가 끝나는 인터체인지에서 강화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48번을 탄다. 혹은 올림픽대로 끝에서 우회도로인 지방도 352번(제방도로)을 이용한다. 강북에서는 강변북로와 자유로를 타고 가다가 김포대교를 건너면 쉽게 48번 국도를 만난다. 김포시내 누산리에서 좌회전하면 올림픽대로와 연결되는 352번 도로와 만난다. 이 길을 따라 강화 초지대교 방면 또는 대곶 방면으로 계속 달리면 초지대교 초입, 대명포구 못미쳐 오른쪽으로 덕포진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따라 1.5㎞쯤 길을 따라 가면 된다.

입구 음식점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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