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이홍기 특파원 = 사실상 세계 최대의 자동차 그룹으로 부상한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전문경영인 시대를 접고 창업가 출신 경영체제로 복귀한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도요타는 차기 사장에 창업가 직계인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52) 부사장을 사실상 내정했다. 오는 12일 최고 간부회의와 6월말 개최되는 정기주총 의결을 거쳐 정식 취임한다. 도요타자동차에서 창업가 출신이 사장에 취임하기는 아키오 부사장의 숙부였던 도요타 다쓰로(豊田達郞·79)씨가 1995년 사장에서 퇴임한 이후 14년만이다.
도요타에서는 창업가 출신이 다쓰로 사장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76), 조 후지오(張富士夫·71),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捷昭·66) 사장 등 전문경영인이 3대째 사령탑을 맡아왔다. 이번 창업가 출신의 복귀를 놓고 언론에서는 에도(江戶)막부의 마지막 "쇼군"(將軍)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가 정국 혼란기인 1867년 통치권을 조정에 반환한 사건인 "다이세이 호칸"(大政奉還)에 비유하고 있다.
아키오 부사장은 사실상 창업자인 도요타 기이치로(豊田喜一郞)의 손자이자,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을 지낸 도요타 쇼이치로(豊田章一郞·83) 명예회장의 장남. 지난 2000년 이사로 승진한 뒤 2002년 상무, 2003년 전무를 거쳐 2005년 부사장에 올랐다. 그의 사장 취임은 시기만 문제일 뿐 오래 전부터 예고돼왔다. 그러나 부친인 쇼이치로 명예회장이 57세에 사장에 취임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몇년은 더 사장 수업을 쌓을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룹측에서는 창업 71년만에 처음으로 영업적자가 예상되는 등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미증유의 긴급사태를 맞아 창업가 출신을 전면에 내세워 재도약을 위한 결의를 내보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룹내 황제와 같은 존재인 창업자 직계로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 도요타 특유의 "마른 수건 쥐어짜기"식의 경비 절감과 생산거점 통폐합 등 각종 개혁을 단행해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급속한 위축과 엔고(高)로 오는 3월말 회계연도 연결결산에서 1천500억엔의 영업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생산 감축과 공장 신증설 보류 등 설비투자도 대폭 축소하고 있다. 도요타 그룹은 그동안 세계시장 판매 "2009년 1천만대 돌파"를 향해 매년 50-60만대의 페이스로 판매를 늘려왔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급제동이 걸리면서 지금은 "연간 생산 700만대 선에서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체질"로 급선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창업가로의 경영권 세습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자동차는 역대 도요타가(家) 출신 사장들이 한결같이 좋은 실적을 내왔기 때문에 이번 경영권 세습에 대해 이렇다 할 비판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창업자 일족이 최고 경영 포스트에 복귀하는 것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제왕적 오너"의 강력한 구심력을 바탕으로 신속한 의사결정과 사내결속을 기할 수 있는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반면에 기업통치의 투명성을 저해, 장차 경영을 불안하게 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도 있다. 도요타자동차에서 창업자 일족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2% 정도에 불과해 위기 상황에서 취임하는 아키오 사장이 경영수완을 발휘하지 못하고 실적이 더욱 악화될 경우에는 도요타가의 몰락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지적했다.
창업자 일족의 대표적인 경영실패 사례로는 산요전기가 꼽히고 있다. 창업자의 장남인 이우에 사토시(井植敏·76)가 1986년 사장 취임 후 "톱다운" 경영으로 중국 가전업체와 제휴를 결정하는 등 한때는 명경영자로 평판이 자자했다. 그러나 결과적인 경영 잘못으로 2000년 경영난에 빠진데다 배당금 분식 결산까지 들통나면서 2007년 당시 사장이었던 그의 장남(45)을 포함해 창업자 일족이 창업 60년만에 경영일선에서 쫓겨났다. 물론 경영책임으로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산요전기는 최근 주요 채권은행들에 의해 파나소닉에 팔렸다.
그에 비해 파나소닉은 창업자 출신과의 갈등으로 1990년대에 부진을 겪었으나 공채 출신인 나카무라 구니오(中村邦夫·67) 현 회장이 2000년 사장 취임 후 창업자인 고(故)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구축한 사업부제를 없애는 등 "성역없는 개혁"으로 수익을 대폭 회복시킨 뒤 2선으로 물러났다. 개혁의 바통을 이어받은 오쓰보 후미오(大坪文雄·61) 사장은 작년 10월 회사명과 브랜드에서 90년만에 창업가 성인 "마쓰시타"를 모두 지우고 파나소닉으로 통일시켰다. 파나소닉에는 현재 창업자 일족이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혼다자동차의 경우에는 창업자인 고 혼다 쇼이치로(本田宗一郞)씨가 "사원이라면 누구라도 사장이 될 수 있다"며 자식들을 회사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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