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 위기냐 기회냐

입력 2009년01월19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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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이 위기라고 호들갑이다. 통상 특정 산업이 위기라는 건 시장이 붕괴되거나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21세기 자동차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든 것도 아니고, 자동차시장이 붕괴된 것도 아니다. 다만 자동차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관계가 다소 비틀어졌을 뿐이다.

오래 전부터 시장에서 수요를 초과한 자동차 생산의 과잉공급이 문제돼 왔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공급과잉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공급과잉이 됐고, 공급과잉상태가 몇 년동안이나 지속돼 왔을까. 그 것은 1차적으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탄력적인 특성에 있다. 수요가 늘면 공급이 확대된다. 그런데 공급은 수요보다 한 박자 늦다. 따라서 수요가 정체되거나 줄어들면 확대된 공급도 한 박자 뒤늦게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동차처럼 생산과 설비에 많은 자본이 투자된 경우 한 번 확대된 생산능력은 줄이기가 여간 쉽지 않다.

과거로 잠시 돌아가면, 지난 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넘기고 80년대에 들어서자 자동차산업은 역사적으로 가장 큰 성장을 시작했다. 현대 생활 및 모든 산업의 동맥 역할을 하면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었고, 그에 따라 공급도 확충해야 했다. 더불어 시장이 글로벌로 확대됨에 따라 저가격, 고품질을 위해 기술은 물론 시설과 판매망 구축에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했다. 당연히 양산체제를 갖추지 못하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퇴출될 것이라는 글로벌 톱10의 시나리오도 등장했다. 이에 따라 90년대에는 자동차메이커들이 앞다퉈 몸집 불리기에 힘을 쏟으면서 시설과 판매망은 계속 증가했다.

그 결과 공급은 곧 수요를 초과하게 된다. 쉽게 보면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자동차회사는 무이자 혹은 할부, 리스 등 새로운 마케팅기법 외에 여러 새로운 파생 금융기법과 결탁한 판매전략을 동원해 지속적 또는 강제적으로 수요를 늘리면서 간신히 명맥을 이었다. 그런데 미국 금융시장에서 시작된 소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즉 불량 주택대출에 이은 자본유동성 문제가 터지면서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렸다. 그러면 주택대출금 회수가 어려워 시작된 자본유동성 문제가 왜 자동차산업에 먼저 튀었을까.

한 마디로 그 동안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금융계에 돈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실물경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주택담보와 같은 대출, 특히 이자와 환율이 요동치는 등 금융과 통화 시스템 자체 내에서 거품이 일어났던 것이다. 부실대출로 넘쳐난 돈이 자동차 가수요를 촉발했다는 얘기다. 개인용 승용차는 신용과 할부로, 회사용 승용차는 장기 렌트와 리스 등 변형 및 파생된 각종 판매기법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이 처럼 자동차 수요가 이른바 정상적인(?) 수요를 앞지른 데서 이미 위기의 싹은 트고 있었다.

자동차라는 재화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수요변화에 공급변화가 시간상 다소 늦을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다. 간혹 새로운 차종 혹은 혁신적인 기술로 무장한 신개념 차종이 수요를 창출하는 효과도 있으나 일반적인 수요공급의 변화 현상은 소위 케인즈의 안티사이클 이론에 따른다. 굳이 비교하자면 중량이 무거워 제동거리가 훨씬 긴 대형 화물차와 가벼운 승용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란히 경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순발력이 느린 화물차는 ‘가다 서다’하는 경쟁에서 절대 승용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

지난 10여년간 글로벌 톱10이라는 전략에 따라 각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몸집을 불리면서 이미 오래 전부터 공급이 수요를 앞질렀고, 원활한 공급을 위해 미리 쌓아둔 재고물량 또한 몸집이 커진 자동차산업의 순발력을 떨어뜨리는 데 한 몫했다. 중량이 무거우면 가속도도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몸집이 커진 사람이 순발력을 키우려면 살을 빼는 방법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처럼, 덩치 커진 자동차산업도 공급을 줄이려면 구조조정이나 공장폐쇄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불똥 좀 맞았다고 공장 폐쇄하고 종업원 내보내면 수요가 늘어났을 때 짧은 시간 내에 몸집을 불리는 일이 쉽지 않다.

불똥이 어떤 종류인지 제대로 살펴봐야 하는 까닭이 그래서 중요하다. 더구나 세계 모든 자동차메이커들이 다 불똥을 맞는 것도 아니고, 세계 자동차시장이 축소 및 붕괴되거나 사양길에 접어든 것도 아니다. 단지 그 동안 과열된 금융과 부실한 통화 시스템 거품에 쌓였던 수요가 이제 거품이 빠지려는 것, 즉 정상적인 수요곡선으로 회귀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자동차 대량생산업체 한두 곳이 파산해 공급물량이 부족해지면 살아남은 업체들은 엄청난 호황을 예상하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부실금융의 불똥은 대부분 몸집이 큰 미국 빅3를 비롯한 대량생산업체에 타격을 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GM은 몸집이 너무 커 이미 여기저기 악성종양과 상처가 넘쳐났다. 이런 상황에 외부로부터 카운터 펀치가 날아왔으니 이제는 생사를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 경쟁력을 상실해 더 이상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회사는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도태되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빅3의 위기를 미국 정부가 좌시하지 않은 이유는 파산으로 당장 발생할 수 있는 엄청난 실업자문제와 산업 전반에 걸친 동반 경기침체가 두려워서다. 여기에 메이저업체의 파산 뒤 공급부족으로 인한 호황 시나리오도 무시할 수 없어서다.

그러나 세계 자동차시장의 상황과 전망을 자세히 보면 감산을 위한 부분적인 공장폐쇄나 일시적인 공장가동 중단은 있을 지 모르지만 자동차회사 혹은 전체 공장의 완전폐쇄로까지 갈 파산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고,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성이 확보되고, 수요에 따른 탄력공급 형태 등으로 바뀌면 얼마든지 회생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넘어지려는 GM을 중국업체가 인수할 의향이 있다며 미국 심기를 건드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거대 기업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거나 무너지면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고, 결국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금융 구제지원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경쟁력을 상실한 사기업을 지원해 국가경쟁력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살리는 게 최선이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GM과 연결된 독일 아담오펠의 부실함에 대한 독일 연방정부의 태도다. 미국이 만약 GM 등 빅3에 재정지원을 한다면 독일도 오펠을 비롯한 독일 자동차업체에 구제금융 지원을 하겠다고 천명했다. 엄밀히 말하면 벤츠나 BMW, 아우디, 포르쉐 등 소위 독일 프리미엄 명품업체들은 상황과 전망이 그리 나쁘지 않다. 우는 녀석에 떡주는 상황이니 비록 고프지는 않아도 일단 우는 시늉이라도 하면 떡고물이 떨어질 판이다. 따라서 아직 상황이 괜찮은 업체들도 판매감소 추세라는 상황을 발판으로 울고 보는 형국이다.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 독일업체들의 매출이 감소하기는 했지만 이런 현상은 예견돼 왔고, 독일 회사들은 오래 전부터 이에 대비해 왔다. 항상 재고물량을 최소화했고, 생산과정을 슬림화해 생산 및 원가절감도 이뤄냈다. 만약을 대비한 비장의 혁신적인 기술도 수두룩하다.

얼마 전 메르켈 독일 수상이 한 포럼에서 독일 경제 시스템은 매우 로부스트(Robust; 건실, 튼튼, 강한)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금융경제에 거품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시스템 자체가 매우 정직하기에 금융위기가 곧바로 실무위기로 번지지도 않는다는 의미다. 다만 세계경제의 기관차인 미국경제가 흔들리면서 그 여파를 맞고 있을 뿐이지 현재의 문제는 결코 내부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물론 독일도 전체적인 경기상황이 썩 밝다고 볼 수는 없으나 적어도 자동차만큼은 거품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무엇보다 공급과잉에 대비해 무리없이 감산할 수 있도록 탄력적인 생산방식을 준비해 왔고, 시장상황 적응력도 상당히 빠른 편이다. 토요타의 ‘저스트 인 타임’과 ‘린 프로덕션’은 이제 독일업체들이 오히려 더 능수능란하게 운용하고 있다. 한 마디로 청출어람이다. 생산을 줄이면서 혁신적인 기술개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현재가 아닌 항상 다음을 준비하는 셈이다. 제품만 프리미엄이 아니라 생산방식과 생산자들의 경영방식도 프리미엄이다. 호황에 불황을 대비했듯이 이제 불황에 호황을 준비하는 독일 자동차업체가 진정한 프로요, 승부사로 도약할 것이다.


베를린=이경섭 특파원 kslee@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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