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숲길 거닐며 역사의 시간 속으로···

입력 2009년02월13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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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 땅에는 조선시대 두 임금이 잠든 왕릉이 있다. 조선조 제4대 세종과, 제17대 효종 능이다. 두 능의 이름이 모두 영릉이어서, 가뜩이나 세종대왕의 잘 단장된 영릉(英陵)에 가려진 효종임금의 영릉(寧陵)은 쉽게 떠올리는 이가 드물다.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서로 이웃한 두 능은 규모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능역 분위기가 자못 다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성군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의 능이 그 업적에 걸맞게 잘 치장되고 위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면, 효종임금의 영릉은 자연과 어우러진 호젓한 분위기가 깃들어 있다. 또 단체관광객으로 붐비는 세종대왕 영릉과 달리 효종임금 영릉은 찾는 이가 드물다. 한쪽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으면 두 곳의 영릉을 모두 관람할 수 있음에도 많은 이들이 세종대왕 영릉을 찾는 것만으로 관람을 마친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부디 그런 실수를 하지 마시길. 효종릉으로 가는 길에는 세종릉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품격있는 산책을 누릴 수 있다. 정문을 지나 만나는 재실 건물의 간결한 건축미는 물론이거니와 정자각과 능에 이르는 아늑한 숲길은 끝없이 걷고만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2007년 왕릉재실 최초로 보물 제1,532호로 지정된 효종 영릉 재실은 조선 왕릉 재실의 기본형태가 가장 잘 남아 있고,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간결하고 소박한 건물의 짜임새는 범인의 눈도 사로잡는 검박한 멋이 있다. 경내에 있는 수령 300년이 넘는 회양목(천연기념물 제495호)과 향나무, 느티나무 등의 고목은 재실의 역사와 세월을 말해준다.



재실 담장 너머로 고개 내민 구기자나무의 붉은 열매를 뒤로 하고 능으로 향한다. 호젓한 숲길을 걸어가는 동안 자연 효종임금의 생애를 떠올린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1619년(광해군 11년)에 태어나 1626년(인조 4년) 봉림대군에 봉해진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귀국 후 소현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세자에 책봉되고, 인조의 뒤를 이어 조선 17대 왕위에 올랐다. 효종은 즉위 후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해 화폐를 널리 보급하는 한편, 조선 왕조가 청나라에 당한 굴욕을 씻고자 북벌계획을 세워 군비를 정비하고 군정에 힘썼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59년 5월4일 재위 10년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했다.



숲길이 끝난 곳에 홍살문과 정자각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너머 언덕 위에 자리한 능이 보인다. 능이 둘인 쌍릉이다. 효종과 비 인선왕후 장 씨의 능이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위치를 하고 있다. 두 능이 좌우로 나란히 조성된 게 아니라 앞뒤로, 그 것도 인선왕후릉이 앞쪽에 자리하고 뒤로 비스듬히 효종릉이 위치하고 있다. 그 까닭은 원래 영릉은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 태조 건원릉 서쪽의 위치에 조성했는데, 석물에 틈이 생겨 누수 염려가 있다고 해 현종 때 이 곳으로 천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풍수설에 따라 왕성한 산 혈맥의 생기를 모두 받게 하려다보니 현재와 같은 특이한 위치로 조성됐다고 한다.



간간이 이름 모를 산새가 적막을 깨뜨릴 뿐 더없이 고요한 효종능역.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득한 역사 속으로 흐르는 시간의 소리가 들린다,



*가는 요령

영동고속도로 이천이나 여주 인터체인지에서 국도 42번이나 37번을 따라 접근하면 영릉으로 이어진다. 이정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서쪽에 위치한 게 세종대왕 영릉, 동쪽에 효종임금의 영릉이 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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