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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 만개한 모양성. |
전북 고창만큼 화사하고 황홀하며 눈부신 봄날 정취를 두루두루 간직한 곳도 찾아보기 드물다. 이 맘 때면 모양성을 뒤덮는 화사한 벚꽃과, 선운사의 황홀한 동백, 공음면 일대에 펼쳐지는 눈부신 청보리밭은 고창을 대표하는 봄날 정취다.
여기에 봄날 서정을 더욱 무르익게 하는 또 다른 고창의 자랑거리가 있다. 신재효고택과 판소리박물관이다. 모양성 바로 앞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뜨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고택과 박물관은 동리국악당과도 한걸음에 연결된다. 화사한 벚꽃 그늘 아래, 판소리 가락 아래 몸을 맡기고 무르익는 봄날 서정을 만끽해보자.
동리 신재효 선생은 우리 민족 고유의 소리인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후학을 길러 판소리를 널리 발전시킨 이다. 1812년 이 곳 읍내리에서 신광흡의 1남3녀 중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애초 소리꾼이 아니라 재산이 넉넉한 중인 출신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많은 땅을 물려받은 그는 스무 살 무렵 고창 관아의 이방을 맡으면서 당시로는 광대라 불리던 소리꾼을 동원해 관청의 행사를 치르면서 판소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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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재효 생가. |
넉넉한 부를 가졌던 그는 판소리 광대들을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와주면서 소리꾼으로 키우는 데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치·박만순·전해종·정창업·김창록같은 명창들이 그의 지원과 이론적 지도를 받았다. 진채선·허금파와 같은 최초의 여류 명창을 길러내기도 했다.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판소리가 그에 의해 모아지고 책으로 묶여졌다. 그는 장단에 충실하고 박자의 변화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동편제와, 잔가락이 많고 박자의 변화가 많은 서편제에서 각기 장점을 취해 판소리 이론을 정립했다. 당시 판소리는 열두 마당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여섯 마당을 정리해 <토끼타령> <박타령>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가루지기타령> 등 6마당의 판소리 사설을 편술했다. 이 중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은 너무 음탕하다고 해 부르기를 꺼려 왔던 바람에 그 가락이 잊혀지고, 오늘날 다섯 마당만이 전수되고 있다.
봄꽃이 화사한 신재효 고택에 들어서면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지어진 사랑채와 오동나무, 우물 등이 남아 있다. 선생은 말년까지 여기에 살면서 노래청을 두고 수많은 명창을 길러냈다.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된 고택은 1850년경에 지었으며 1979년 보수, 정화했다. 원래는 박물관터가 고택이 있던 자리였으나 사랑채만 복원시켜 이 곳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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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박물관. |
고택 뒤에는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동리국악당이 자리하고 있다. 고창군에서 운영중인 이 건물은 신재효 선생을 기념하고 국악 발전을 위해 건립한 곳으로 가야금, 판소리, 민요, 농악 등을 교육하고 있다.
이들과 바로 이웃한 곳에 있는 고창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의 이론가이자 개작자, 후원가였던 신재효 선생과 진채선·김소희 등 다수의 명창을 기념하고 판소리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01년 개관했다. 대지 5,525.5㎡, 건물 1,433㎡의 2층 규모로, 신재효의 유품과 고창지역의 명창, 판소리 자료 등 총 1,48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은 소리마당과 아니리마당 등 모두 5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소리마당에는 판소리의 기원과 판소리 시연 모형, 판소리 계보 등을, 아니리마당은 고창군 소개와 신재효·진채선·김소희 등 이 지역 출신 명창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 가사집과 국악관련 음반·서적 등 희귀한 전시물도 많다. 체험방에서는 <춘향가〉와 〈수궁가〉〈적벽가〉 등 각종 판소리를 들으면서 북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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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장단 체험. |
*맛집
고창읍내 조양식당(063-564-2026)은 50여년을 한정식만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다. 옛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밑반찬과 청국장찌개, 토화젓 등이 밥상에 오른다.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 고창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고창읍내로 들어간다. 또는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인터체인지 - 15번 지방도 - 석정온천 - 고창군청 - 신재효고택에 이르거나 호남고속도로 정읍 인터체인지 - 22번 국도 - 흥덕면소재지 - 23번 국도 - 고창군청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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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안 산책.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