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꽃세상이다. 활짝 벙글은 벚꽃이 연분홍 꽃구름을 산천에 피어 올린다. 꽃구경 인파가 소문난 벚꽃군락지에 구름처럼 모여든다. 꽃구름, 사람구름…. 봄날이 깊어갈수록 더욱 뭉게뭉게 피어나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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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변 벚꽃길. |
이 곳은 그 절정에 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그 유명한 십리벚꽃길. 맑은 화개동천을 따라 절까지 이어지는 구절양장의 길 양쪽으로 수만 그루의 벚나무가 하늘을 가려 벚꽃터널을 이룬다. 청춘남녀가 이 길을 함께 걸으면 백년해로한다고 해 ‘혼례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은 낭만의 길이다. 때를 놓칠세라, 이 곳에서는 4월3일~5일 제17회 화개장터 벚꽃축제가 열린다. 화사한 꽃구경과 함께 ‘처녀 불알’, ‘스님 상투’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화개장터의 신명나는 장구경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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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 차밭과 어우러진 벚꽃. |
화개장터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으로 시작하는 조영남의 노래로 인해 외지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으나 사실 이 곳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름이 났다. ‘섬진강 수운이 문을 열었던 그 때부터 영남과 호남을 잇던 이 곳에 사람이 모였고, 요새로 단장되어 화개관이라 불려 진 삼한시대에 장터구실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는 화개장터 초입의 유래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개장터의 역사는 유구하다. 이 곳을 무대로 한 김동리의 소설 <역마>를 보면 화개장터의 면모를 잘 알 수 있다.
‘하동, 구례, 쌍계사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오고가는 나그네로 하여, 화개장터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나 흥성거리는 날이 많았다. 지리산 들어가는 길이 고래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의 화개협 시오리를 끼고 앉은 화개장터의 이름이 높았다. 경상 전라 양 도 접경이 한두 군데일 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장터를 두고 일렀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아장수들의 실, 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족집게 골백분들이 또한 구롓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이 김, 미역, 청각, 명태, 자반조기, 자반고등어들이 올라오곤 하여 산협(山峽)치고는 꽤 성한 장이 서는 것이기도 했으나, 그러나 화개장터의 이름은 장으로 하여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김동리 <역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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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는 벚꽃터널. |
하지만 교통의 발달과 함께 장터가 쇠퇴일로하며 이 곳 또한 옛날의 흥청거림은 사라지고 겨우 이름만 유지하다가 조영남의 노래로, 벚꽃축제로 다시금 살아나기 시작했다. 1997년부터 4년동안 화개장터를 복원하는 사업이 진행됐고, 이제는 일부러 이 곳을 찾을 만큼 관광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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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개장터 초입부터 차들로 가득하다. |
장터는 대장간에 엿장수, 주막을 비롯해 녹차, 산나물, 재첩 등 이 곳 특산품을 파는 가게들까지 제법 구색을 갖췄다. 축제기간 전후에는 약장사에 여러 좌판상들까지 합류해 걸음을 옮겨 놓기 힘들 정도로 장터가 붐빈다. 음식점마다 전국에서 몰려온 손님들로 넘쳐난다. 은어회와 재첩국, 참게장을 전문으로 한다는 음식점엔 앉을 자리조차 없다. 아직 은어철이 아니건만 어디에서 은어를 구해오는지, 잠깐 의문이 든다.
장터 한쪽에 있는 옥화주막으로 들어선다. 소설 <역마>에 나오는 그 옥화네가 하는 주막일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잠시 소설의 체장수 영감을 흉내내어 봇짐을 풀어놓고 막걸리를 청해본다. 남사당패 우두머리가 주막집 홀어미와 하룻밤 맺었던 인연은 40여 년 후 다시 찾아간 그 주막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홀어미는 죽고 없었지만 그 딸인 옥화가 아들을 데리고 주막을 꾸리고 있었다. 체장수 영감은 어린 딸 계연을 그 곳에 맡기고 장삿길을 떠나고, 옥화는 자기의 아들 성기와 계연을 결혼시키려다가 우연히 계연의 귓바퀴에 난 사마귀를 보고 놀란다. 계연이는 바로 자신의 이복 여동생이었던 것이다. 서로 맺어질 수 없는 사이이기에 체장수 영감은 계연을 데리고 고향으로 떠나고, 옥화의 아들 성기는 어쩔 수 없는 역마살을 따라 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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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나는 화개장터. |
더덕과 좁쌀을 갈아 만들었다는 동동주 한 주전자가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재첩을 넣어 만든 재첩부침개는 아직 절반도 더 남았는데…. 옥화네를 불러 다시 동동주 한 주전자를 청한다. 장터쪽에서는 여전히 엿장수 가위질 소리가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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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장수도 떴다. |
*맛집
한 때 미식가들 사이에 소문난 게 섬진강 은어였다.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은어는 살에서 수박냄새가 난다고 한다. 워낙 깨끗한 고기라 한 점 버릴 것도 없어 살점만 발라 회를 뜨는 여느 생선들과 달리 은어는 머리, 꼬리부분까지 다 먹을 수 있다. 간혹 외지사람들 중에는 그래도 민물고기라면 날로 먹기를 꺼려해 은어튀김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은어 마니아들은 오독오독 씹어 먹는 은어회 맛을 좀체 잊지 못한다. 그러나 요즘은 섬진강 은어가 많이 줄어 성수기인 6~8월에도 은어회를 맛보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화개장터 여러 음식점에서 은어회를 취급하지만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50년 전통의 동백식당(055-883-2439)은 은어와 참게 전문점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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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터에 있는 역마상. |
섬진강 참게도 빼놓을 수 없다. 봄엔 은어, 가을에는 참게다. 섬진강 주변에서 많이 잡히는 민물참게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가을철이 제철이다. 된장을 풀어 팔팔 끓인 물에 깨끗이 손질한 참게와, 무, 호박, 토란줄기, 고사리를 넣고 끓인 참게탕은 담백하고 고소한 맛에 독특한 향이 일품이다.
*가는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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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 참게. |
서울에서는 경부 -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전주 - 17번 국도 - 남원 - 19번 국도 - 구례 - 구례 서시교에서 하동 방면 19번 국도 - 화개장터에 이른다. 또는 경부 - 대진고속도로 서진주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2번 국도 - 하동 - 19번 국도 - 화개장터에 도착한다. 남해고속도로를 탈 경우 하동 인터체인지 - 하동읍, 19번 국도 - 화개장터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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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첩부침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