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파제로는 랠리로 유명하다. 1983년부터 2007년까지 다카르랠리를 휩쓸었던 차다. 그래서 1982년 1세대 출시와 함께 시작된 랠리 도전은 파제로에 ‘랠리의 황제’라는 애칭을 붙게 했다. 현재 4세대 파제로가 개발되기까지 25년간 다카르랠리에 참가하면서 연속 7회 우승을 포함해 총 12회 우승을 차지했다. 랠리를 통해 얻은 주행기술 및 공기역학적 디자인이 양산차에도 활용된 건 물론이다.
파제로는 과거 현대정공 갤로퍼의 전신으로 국내에서도 유명세가 높다. 현대 베라크루즈가 출시되기 전까지 판매됐던 테라칸도 파제로의 후예나 다름없다. 따라서 국내 오프로드 마니아에게 파제로는 꼭 한 번 갖고 싶은 차였고, 출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정통 오프로더 마니아들은 흥분했다. 그 차를 탔다.
▲디자인
앞모양은 지극히 남성적이다. 전형적인 오프로더 컨셉트여서 선이 굵다. 라디에이터 그릴이 두껍고, 헤드 램프도 사각형이다. 헤드 램프 디자인은 산고양이의 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직선 위주의 처리여서 누가 봐도 단단함이 느껴진다.
측면도 직선과 면이 주를 이룬다. 볼륨이 들어간 펜더와 사이드 캐릭터라인, 비교적 넓게 자리한 창문도 이 차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방향지시등은 아웃사이드 미러에 달려 있다.
뒷모양은 예비타이어가 겉으로 노출돼 오프로더의 멋을 풍긴다. 예비타이어를 트렁크나 차 아래에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경우도 있으나 오프로더라면 바깥에 돌출돼 있어야 제멋이다. 이런 이유로 리어 램프는 좌우에 세로로 조그맣게 자리했다. 제동등 크기가 작아 자칫 후방에서 추돌할 수 있음을 대비해 윈도 상단과 테일게이트에 스톱 램프를 추가했다.
인테리어는 화려하다. 4스포크 스티어링 휠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볼륨스위치, 우측에는 오토크루즈 버튼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실린더 타입의 계기판은 지침이 짧아 강인해 보인다. 로직 타입의 센터페시아는 간결한데, 공조장치만 로터리 타입의 레버로 작동된다. 변속레버는 무척 크다. 한 손에 잘 잡히지 않지만 사각형에 가까워 마치 항공기 조종레버를 움직이는 것 같다.
변속레버 옆에는 구동방식을 조절하는 또 다른 레버가 있다. 구동은 2H, 4H, 4HLc, 4LLc로 변환할 수 있다. 평소 2H(2WD)로 운행하다 다소 험로에선 4H(4WD)로 바꿀 수 있고, 거칠고 미끄러운 노면에선 4HLc에 놓으면 된다. 트랙터 못지 않은 강력한 견인력이 필요할 때는 4LLc 모드를 쓰면 된다. 험로주행에는 필수 기능이다.
오디오는 락포드 어쿠스틱 프리미엄 시스템이 적용됐다. 최대 860W의 앰프와 12개의 스피커가 어우러져 강력한 사운드를 낸다. 시승중 오디오를 켜면 음질의 명료함에 귀가 솔깃해진다. 특히 5개의 우퍼가 울려대는 중·저음이 매력적이다.
▲성능
파제로는 3.2ℓ 커먼레일 디젤엔진을 얹었다. 최고출력은 200마력(3,200rpm), 최대토크는 45.0㎏·m(2,000rpm)다. 여기에 5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돼 있다.
시동을 걸면 디젤의 밸브소리가 들리지만 개의치 않아도 될 정도다. 가속 페달을 살짝 밟으면 차가 즉시 반응한다. 스티어링 휠은 상당히 무겁다. 대부분의 일본차가 가벼움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쓰비시의 도심형 SUV인 아웃랜더도 스티어링 휠의 움직임이 무거운 편이다. 전반적으로 미쓰비시가 유럽식 핸들링을 추구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속 120㎞까지는 가뿐하게 내달린다. 그 이상도 충분한 힘이 남는다. 변속충격도 거의 없다. 근래들어 느끼는 것이지만 요즘 나오는 차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변속충격이 거의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속이 세분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시내주행에서는 2WD를 사용했다. 뒷바퀴굴림이어서 회전반경은 무척 짧다. 오프로드에선 4WD로 전환했다. 모래와 자갈이 섞인 도로에서 거침없는 모습은 다카르 랠리의 황제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시내 도로보다 험로에서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제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특히 구동방식의 전환은 시속 100㎞ 이내일 때는 주행중에도 2WD-4WD-4HLc까지 가능하다.
그렇다고 오프로드만 잘 달리는 차는 아니다. 시내 도로에서의 승차감도 상당히 안락하다. 프레임과 모노코크 타입의 차체가 어우러졌다는 점은 오프로더지만 포장도로에서도 잘 달린다는 점을 보여주는 근거다. 무게중심을 위해 보닛 패널은 알루미늄 소재를 썼다. 여기에다 엔진이 비교적 차체 중앙에 가깝게 위치해 중심이 가운데로 쏠리도록 설계했다. 덕분에 충돌 때 찌그러지는 크럼플존은 넓어졌다.
미쓰비시에 따르면 구동레버를 4LLc에 놓으면 35도의 경사도 오른다. 그래서 35도는 아니지만 30도에 가까운 흙더미에 올라봤다. 말 그대로 거침없다. 45도까지 기울기를 견뎌낼 수 있다는 설명은 45도 경사로가 없어 시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등판능력을 경험하니 경사로 능력 또한 신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도로에서의 코너링도 정통 오프로더임에 비춰 보면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ASTC 덕분에 약간 과격한 코너링도 견뎌내는 것 같다. ASTC는 코너 주행 시 오버스티어 또는 언더스티어가 감지되면 브레이크 시스템을 작동한다. 실제 코너링을 시도하면 물 흐르듯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속도가 급격히 줄면서 돌아나간다. 그러나 무게중심이 높은 만큼 이를 무시하는 과격한 코너링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선루프는 무척 넓다. 앞좌석은 물론 2열 앞부분까지 이어져 있다. 마치 파노라마루프의 느낌을 준다. 크루즈컨트롤은 기본이고, 2열 좌석은 6대 4 분리형이다. 뒷좌석은 수동으로 에어컨을 조절할 수 있고, 아웃도어를 위해 트렁크에 소켓이 있다. 어디든지 ‘떠나고 싶으면 파제로와 함께 떠나라’고 부추기는 것 같다.
▲총평
파제로를 타면서 느낀 건 역시 정통 오프로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온로드 주행성도 상당히 보강했다. 그럼에도 파제로 본연의 오프로더 성격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시승 내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적어도 파제로를 타고 간다면 깊은 계곡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밤하늘의 별을 헤는 맛이 있을 것 같았다. 6,500만원의 판매가격은 자연에 대한 로망을 이루는 데 필요한 비용이다. 연료효율은 ℓ당 10.4㎞다. 2.300㎏이 넘는 중량을 고려할 때 좋은 편이다. 오프로드와 캠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시승을 권하고 싶다.
시승 /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