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수 김경희 기자 = 정유사들의 주유소에 대한 기름 공급가격을 공개해 경쟁을 촉발하려던 정책이 정유사가 아닌 주유소들만 압박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제 석유제품가 상승에 발맞춰 정유사들의 공급가격은 계속 올라가지만, 각 정유사의 폴사인을 단 주유소들의 판매가격 상승은 공급가 상승폭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름값 공개 이후 정유사별 가격상승폭이 각 사의 시장점유율 순위와 거의 일치하는 등 "암묵적 담합"의 징후까지 나타나고 있다.
◇ 마진공개로 정유사는 멀쩡..주유소만 압박 = 14일 한국석유공사의 정유사 공급가격 및 폴사인별 주유소 판매가격 자료에 따르면 SK에너지의 경우 첫 공개대상이었던 4월 다섯째주 ℓ당 1천397.89원(세후)이었던 보통 휘발유 공급가격은 5월 넷째주 1천453.74원으로 55.85원, 3.99% 상승했다. 이에 비해 공급가격이 소매가격에 반영되는데 일주일의 시차를 가정하고 SK의 폴을 단 주유소들의 5월 첫째주∼6월 첫째주 가격 움직임을 보면 ℓ당 1천550.67원에서 1천565.82원으로 15.15원, 0.97% 오르는데 불과했다. GS칼텍스도 4월 다섯째주∼5월 넷째주 상승폭은 47.82원(3.38%)이었으나 GS칼텍스 폴 주유소의 5월 첫째주∼6월 첫째주 상승폭은 18.29원(1.18%)에 그쳤다.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 역시 같은 기간을 비교해보면 정유사들의 공급가 상승폭은 각각 3.31%, 3.13%인데 비해 두 회사의 폴을 달고 있는 주유소의 가격상승폭은 0.92%, 0.83%에 머물렀다.
결국 공급가격을 공개한 결과 주유소들은 사실상 유통마진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면서 가격인상에 제약을 받고 있지만, 정유사들은 경쟁의 압박을 그다지 강하게 받지 않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지식경제부 성시헌 석유산업과장은 "첫 공개와 마지막 공개를 비교하면 정유사 공급가와 소비자가의 차이, 즉 유통마진이 ℓ당 100원 이하로 많이 줄었다"며 "주유소나 대리점도 가격공개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 기름값 인상폭은 시장 점유율순? =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정유사 공급가의 상승폭이 시장점유율 순위와 거의 같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4월 다섯째주부터 6월 첫째주까지 정유사별 ℓ당 휘발유 공급가 상승폭을 보면 SK에너지가 90.08원, GS칼텍스가 95.36원, 현대오일뱅크 86.61원, 에쓰오일 71.47원 순이다. 이는 6월 첫째주 GS칼텍스의 공급가 상승폭이 유달리 크게 나타난 결과일 뿐, 불과 1주 전까지만 해도 각사별 상승폭은 SK에너지가 55.85원으로 가장 크고 이어 GS칼텍스 47.82원, 현대오일뱅크 47.1원, 에쓰오일 44.47원의 순이었다.
SK에너지의 1분기 보고서를 토대로 각사의 시장점유율과 유사한 정유사별 주유소 숫자를 보면 SK에너지가 4천667개(37.0%)로 가장 많고 이어 GS칼텍스(3천489개. 27.7%), 현대오일뱅크(2천317개. 18.4%), 에쓰오일(1천788개. 14.2%) 순이다. 두 항목의 순위가 일치한다. 이는 대체로 5개 이내의 사업자들이 시장을 나눠갖는 과점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가격선도업체가 먼저 가격을 설정하면 다른 업체들이 이를 유사하게 뒤따르면서 나타나는 이른바 "암묵적 담합"과 유사한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하지만 석유업계는 업계대로 "국제가격 상승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이다. 4월 다섯째주부터 6월 첫주까지 ℓ당 휘발유 가격을 원화로 환산하면 455.29원에서 585.95원으로 21.6% 상승했으나 정유사들의 국내 평균 공급가(국제가격과 비교를 위해 세전가격)는 535.08원에서 614.11원으로 10.6%만 올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주유소업계도 경쟁이 치열하겠지만 정유업계도 국제가 인상분을 다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가장 비싼 업체가 수시로 바뀌는 것은 정유업계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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