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의 고민이 의외로 깊다. 버거운 라이벌인 토요타의 한국 진출을 불과 2개월 앞둔 현 시점에서 대전환이 없다면 더욱 침체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서다.
닛산은 작년 10월 국내에 야심차게 등장했다. 대중차 브랜드로서는 혼다에 이은 두 번째 진출이었다. 당시 같은 국적 회사인 혼다의 독주가 너무나 거셌기에 대항마의 하나로 닛산이 대두됐을 정도로 업계의 관심은 컸다. 그 같은 기대에 걸맞게 닛산은 엔트리 세단인 알티마(2.5 3,690만원, 3.5 3,980만원)를 가격인상 전의 어코드 수준(2.4 3,440만원, 3.0 3,870만원)에 맞추면서 부진에 빠진 어코드의 인기를 그대로 가져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다지 신통치 못했다. 수입차시장 점유율도 혼다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2009년 상반기 기준)으로 암담하다.
닛산이 고전하는 이유에 대해 업계에선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닛산차의 개성이 뚜렷하지 못하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라는 울타리가 그 원인이다. 닛산차들은 국내에 출시되자마자 르노삼성차와 비교되는 아픔을 겪었다. 양사는 모두 "비교불가"라는 입장이지만 동일한 플랫폼과 엔진, 비슷한 디자인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소비자들이 차를 설명할 때도 꼭 "OO의 형제차"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따라서 대부분의 소비자는 두 회사의 차를 "같은 차"로 본다. 이 쯤에서 닛산차의 개성은 사라지고만다. 실제 알티마와 SM5, SM7을 똑같은 차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로그는 QM5와 비교된다. 이는 수입차로서는 엄청난 손해다.
둘째, 수입차 프리미엄이라는 게 일본차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혼다가 1위를 독주했던 요인은 가격경쟁력이었다. 그러나 가격으로 경쟁할 때 맞닥뜨리는 문제점이 국산차와의 비교다. 유럽차들이 장점으로 내세우는 성능, 편의장치 등은 국산차의 그 것과 확연히 다르다. 가격도 국산차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입차 프리미엄이라는 게 생기고, 이는 소비자들에게 ‘나는 특별하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반면 일본차는 "무늬만 수입차"일 뿐 내장이나 성능이 국산차와 별 차이가 없다. 가격은 국산차보다 약간 비싸지만 유럽차에 비해선 매우 싸다. 국내 소비자들은 싼 건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인다. 결국 프리미엄은 자연스레 없어진다. 혼다가 선전했던 이유는 일본 대중 브랜드로서는 최초였다는 점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일본차를 다 알았으니 더 이상 환상은 없다. 닛산이 시기를 잘못 선택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셋째, 다양하지 못한 라인업이다. 일본에서 닛산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차종이다. 현지서 판매되는 닛산 라인업은 30종이 넘는다. 이 점이 닛산의 진정한 힘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국내에서 팔고 있는 모델은 4종이다. GT-R은 일부 마니아를 위한 차이고, 초도물량도 35대밖에 되지 않으니 이마저 제외하면 3종에 불과하다. "집중"이라는 면에서는 유리할 지 모르나 "선택"이란 면에서는 크게 불리하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처럼 여러 물건을 한꺼번에 둘러보기 좋아하는 국내 소비자 특성과는 맞지 않는다. 매장을 가봤자 단지 3종의 차만 볼 수 있는 닛산은 큰 메리트가 없다. 따라서 닛산이 보유한 매력적인 소형차들을 들여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이 역시 마진이나 환율 등을 감안하면 녹록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인피니티로 국내 무대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점이 자만심을 불러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대중 브랜드인 혼다의 성공을 보면서 인피니티에 이어 닛산도 수입만 하면 잘 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는 뜻이다.
판매부진의 이유기 무엇이든 닛산은 당장 10월부터 전통의 라이벌인 토요타와 경쟁해야 한다. 대부분의 수입차 브랜드가 토요타의 진출을 앞두고 긴장한 상황임을 감안할 때 닛산의 미래는 바람 앞에 놓인 촛불과 같다는 업계 관계자의 평가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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