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계절, 맥주의 도시가 부푼다

입력 2009년08월14일 0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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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맥주 부스.
바야흐로 맥주의 계절이다. 일찍이 철학자 헤겔은 입에 맞는 음식과 많은 책과 좋은 맥주가 인생의 삼락(三樂)임을, 그의 어떤 철학사상보다 가슴에 콱, 와 박히는 멋진 말을 날렸다. 뭐 굳이 헤겔 옹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더위와 갈증과 피로에 지친 여름날 저녁에 마시는 한 잔의 시원한 맥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하물며 맥주의 본고장 삿포로에서 마시는 맥주라니! 삿포로 시내 한복판, 오도리공원에서 펼쳐지는 맥주축제와 마주하자 푸하하하…감격에 겨운 웃음이 맥주 거품처럼 넘친다.



삿포로는 독일 뮌헨, 미국 밀워키 등과 함께 맥주의 본고장으로 유명하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북위 43도선에 위치한 물맛 좋은 동네라는 것. 그래서 모두 세계적인 맥주산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산토리맥주 부스.
맥주축제 때면 오도리공원은 1.5km에 이르는 전역이 거대한 맥주광장으로 변한다. 삿포로 TV탑을 기점으로 니시 1초메(西 1丁目)에서 니시 12초메(西 12丁目)까지 산토리, 아사히, 기린, 삿포로 등 일본을 대표하는 맥주회사들이 부스를 차린다. 서울로 치면 종로 1가에서 종로 5가에 이르는 구역이 온통 맥주부스로 꾸며진 것과 마찬가지다. 꽃과 분수와 초록 잔디가 어우러진 공원에서 펼쳐지는, 말 그대로 "비어가든"이다.



저마다 좋아하는 맥주회사 부스를 찾아간다. 삿포로에 왔으니 역시 삿포로, 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대부분 관광객이다. 산토리, 기린, 아사히 부스쪽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붐비고 분위기도 더 부푼다.



4ℓ짜리 피처.
일본 내 판매 우위에 있는 맥주는 아사히와 기린. 기린에 뒤졌던 아사히맥주가 야심차게 내놓은 카라구치(매운맛, 자극적인 맛)의 선전으로 시장판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일본 남성들이 가장 많이 마신다는 아사히 슈퍼드라이는 20년 연속 1억 케이스를 넘기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는 2위를 차지한 기린맥주의 이치방시보리 나마비루가 3,566만 케이스를 판매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판매량이다.



일본사람들이 독일사람들 못지 않게 맥주를 즐긴다는 사실을 현지에 와서야 알았다. 이곳 에선 모든 술자리가 "토리아에즈 비루(とりあえずビル)"다. 즉 "우선 맥주부터!" 어떤 술자리에서든 입가심으로 맥주를 시킨다고. 심지어는 샴페인을 마실 때도 "토리아에즈 비루!"를 외친다나 어쩐다나!



맥아즙을 자비하는 솥.
일본인에게 맥주는 술이라기보다 음료수다. 거리에 맥주 자판기가 놓였고, 맥주의 질과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도시마다 독특한 맛의 지방맥주(地ビル 지비루)도 있다. 삿포로맥주도 따지고 보면 지방맥주가 글로벌 브랜드화한 것이다.



이치로(경쟁 치열한 맥주시장에는 최고스타가 항상 광고모델로 등장한다)가 1잔을 권하는 기린맥주 포스터를 뒤로 하고 삿포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삿포로맥주 부스로 향한다.



간판의 변천사.
각 맥주회사 매표소에서 쿠폰을 사 손님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스탭(젊은 알바생들)에게 맥주와 안주를 주문하면 된다. 안주는 메뉴판이 테이블마다 놓여 있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된다. 현란한 자태로 "잡아잡슈" 유혹하는 안주들을 두 눈 질끈 감고 외면한다. 우리나라에선 마른 멸치나 김 정도의 기본안주쯤 되는 에다마메(枝豆: 풋콩 삶은 것)와 홋카이도 한정판매의 삿포로 클래식을 청한다. 소문난 삿포로 비루엔의 양고기 칭기즈칸이 기다리는 내일을 위해서다.



높이 솟은 굴뚝에 붉은 별이 새겨진 개척시대의 벽돌건물. 삿포로 맥주박물관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홋카이도 유산에 선정된 박물관 건물은 메이지시대에 만들어진 관영 보리주 양조소가 전신인 일본 최초의 맥주양조장이다. 박물관에는 삿포로의 역사를 중심으로 일본 맥주의 산업사 등이 전시됐다. 삿포로맥주의 로고와 간판, 포스터 변천사는 100년 넘는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비루엔을 대표하는 개척사홀.
관람이 끝나면 신선한 생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바가 마련돼 있다. 품질 좋은 홋카이도산 치즈를 안주 삼아 이 곳에서 마시는 오리지널 삿포로맥주의 참맛은 놓칠 수 없는 코스다.



그 것만으로 영 감질나는 이들은 박물관 옆에 자리한 삿포로 비루엔으로 자리를 옮긴다. 100년 역사가 깃든 빨간 벽돌 건물 2, 3층에 위치한 개척사관은 비루엔을 대표한다. 520석에 이르는 대규모 홀은 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이다. 홀을 가득 메운 손님들과 연기를 피어 올리는 그릴에서 지글지글 굽히는 양고기 칭기즈칸, 성에가 채 가시지 않은 유리잔에 보기 좋은 거품을 가득 품고 담긴 맥주. 이 것이 진짜 삿포로 나마비루다.



삿포로 비루엔 양고기 칭기스칸.
심호흡을 하고 잔을 들이킨다. 잡맛이 없는 생생한 맛! 공장에서 직송해 온 살아 있는 맥주의 맛이다. 쭈욱~ 잔을 비운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짜릿한 쾌감에 부르르 몸을 떤다. 입가에 묻은 거품을 핥으며 헤프게 웃는 사람들. 현실로 돌아가면 당장 부딪히게 될 여러 고민들도 이 순간만은 다 잊는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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