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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야코 전경 |
뽕나무밭이 바다로 바뀐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보리밭이 하루아침에 바위산으로 변했다니!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체크하다가 속으로 픽 웃었다. "이거, 뻥 좀 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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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곳곳에 이런 들판이 펼쳐진다 |
노보리베츠와 함께 시코츠토야국립공원(支笏洞爺國立公園)의 대표적 관광지로 손꼽히는 토야코(洞爺湖)를 비롯해 주변의 쇼와신잔(昭和新山), 유슈잔(有珠山), 요테이잔(羊蹄山) 등이 남은 목적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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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밭이 바위산으로 |
홋카이도 남서부에 위치한 토야코를 찾아가는 길에는 빗줄기가 오락가락했다. "이런 궂은 날씨에 호수가 보이기나 할까"했던 우려는 적중했다. 사이로(サイロ)전망대에서 마주한 토야코는 안개 때문인지 소문난 그 위용을 가늠할 수 없다. 흡사 우리나라 충주호나 소양호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토야코가 일반 호수가 아니라 화산이 폭발한 분화구 자리에 물이 고여 생겨난 칼데라호수임을 감안하면 둘레 45km의 크기는 놀랍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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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폭발의 현장 |
유슈잔의 기생화산인 요소미산((四十三山)의 분화활동으로 1910년 온천이 솟아나와 1917년부터 온천지로 개발된 이 곳은 홋카이도 3대 경관 중 하나다. 4계절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 온천리조트였던 이 곳이 일약 세계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건 지난해 7월 G8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다.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내 정상회담 개최지는 규슈·오키나와였으나 2008년 이 곳에서 열리면서 현지의 아름다움을 널리 세상에 알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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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로가 이어지는 니시야마 분화 |
일본을 대표하는 산인 후지산과 닮았다고 해서 "에조후지"(蝦夷富士)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요테이잔이 눈 앞에 펼쳐지고, 지금도 화산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주변의 산들과 온천수, 고급 리조트시설 등을 갖춘 이 곳은 앞으로 더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질 듯하다. 운행중인 유람선을 타면 호수 중간에 떠 있는 나카시마(中島)의 삼림박물관도 찾을 수 있는데, 야생동물의 낙원이 된 원시림의 숲은 놀라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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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활동을 기록한 우체국장동상 |
토야코 인근의 쇼와신잔으로 발길을 옮겨 가면 또 다른 놀라움이 기다린다. 화산연기를 뭉게뭉게 내뿜고 있는 해발 420m의 바위산이 바로 보리밭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1943년말부터 1945년 가을 사이에 빈번히 지진과 분화, 융기가 반복되면서 보리밭이 있던 이 곳에 바위산이 생겨났다. 쇼와신잔이란 이름 또한 "쇼와시대에 새로 생긴 산"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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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야코 불꽃놀이 |
당시 2차 세계대전중이었던 일본은 전쟁에 매달리느라 학자들의 연구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현지 우체국장이었던 미마츠 마사오 씨는 이 새로운 화산의 탄생을 그냥 지켜봐선 안된다고 생각해 홀로 고군분투하며 화산활동의 변화를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겼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화산을 보호하고, 화산으로 인해 집과 밭을 잃은 농민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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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약수 |
쇼와신잔 아래 공원에는 망원경을 앞에 놓고 화산을 관측하고 있는 동상이 있다. 바로 미마츠 마사오 씨의 동상이다. 그의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으로 인해 쇼와신잔이 자연 모습 그대로 오늘날까지 남을 수 있었음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묵묵히 서 있는 말없는 그 동상 앞에서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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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야코를 볼 수 있는 사이로전망대 |
쇼와신잔과 이웃한 유슈잔으로 장소를 옮기면 더 생생한 화산현장을 체험할 수 있다. (가는 길에 유슈잔에서 내려오는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후키다시공원의 약수도 놓치지 말것). 20~30년 간격으로 분화가 계속되는 활화산인 유슈잔은 2000년 3월 분화를 일으켰다. 정확한 분화 예고로 신속히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주위의 넓은 땅이 화산재로 뒤덮였다. 용암이 흘러 마을을 덥쳤고, 3층 병원건물이 1층처럼 보일 정도로 아래층을 다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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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적한 도로 |
니시야마분화구(西山噴火口)는 당시 유슈잔 서쪽에 생겨난 화구군이다. 지각변동으로 돌출되거나 갈라진 도로, 무너진 건물과 쓰러진 나무들, 파손된 차들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복구"라는 명목으로 깨끗이 정비했을 이 곳을 일본인들은 보기 좋게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니시야마 화구군 주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가면 분화연기가 솟아오르는 화구와 붕괴된 건물, 도로 등이 화산 폭발 당시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과학문명의 발달도 대자연의 힘 앞에는 더없이 무기력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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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키다시약수공원 |
로프웨이로 유슈잔 정상에 오르면 연기와 유황냄새가 가득하다. 한쪽으로 토야코와 쇼와진잔을 볼 수 있는 토야코전망대가, 다른 한쪽으로는 긴누마대화구와 분화만의 절경을 접할 수 있는 유슈잔화구원전망대가 있다. 전망 망원경에 눈을 대고 하얗게 피어오르는 화산연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 세상이 아득하게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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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게소에 재현해놓은 아이누족 거처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